반성에 시효 없다..아우슈비츠 간 메르켈은 달랐다
[경향신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자행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찾아 “책임을 인식하는 것은 독일의 국가 정체성의 일부”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가 이곳을 찾은 것은 2005년 총리 취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현직 총리로는 세 번째다. 독일 언론 베를리너차이퉁은 “아우슈비츠의 교훈은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소중하다”고 했다.
dpa통신 등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지난 6일(현지시간)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방문해 “범죄에 대한 기억은 끝나지 않은 우리의 책임이다. 이것은 우리 국가와 분리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독일인이 이곳에서 저지른 야만적 범죄에 대해 마음 깊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떤 말로도 여기서 비인격적 처우를 받고 고문당하고 살해당한 많은 사람의 슬픔을 달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1940년 설립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는 나치가 세운 강제수용소 중 최대 규모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서는 약 11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됐다. 메르켈 총리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재단 설립 10주년을 기념해 이곳을 찾았다. 메르켈 총리는 전날 연방정부와 주정부 재원을 합쳐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의 시설 보존을 위해 6000만유로(약 791억원)를 수용소 박물관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는 연설에 앞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의 안내를 받아 수용소의 유대인들이 처형당했던 ‘죽음의 벽’ 앞에 헌화하고 묵념했다.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는 메르켈 총리가 모라비에츠키 총리와 함께 묵념을 끝내고 돌아선 후에도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고 전했다.
1970년 당시 빌리 브란트 총리가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이후 독일 총리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거사를 반성하고 희생자를 추모해왔다. 메르켈 총리를 비롯해 이제껏 세 사람의 독일 현직 총리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방문한 바 있다.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가 1977년, 헬무트 콜 전 총리가 1989년과 1995년 두 차례 이곳을 찾았다.
메르켈 총리는 2008년 3월 현직 독일 총리 최초로 이스라엘 의회 연설을 하면서 “쇼아(히브리어로 ‘홀로코스트’)는 독일인에게 가장 큰 수치”라며 고개를 숙였다. 2009년에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독일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를 찾아 헌화했다. 2015년에는 최초의 강제수용소인 다하우 수용소를 방문해 “희생자, 우리 자신,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해 결코 역사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방문은 독일 내의 반유대주의에 대해 분명한 경고음을 알리는 상징적 행동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독일에서는 1646건의 반유대주의 범죄가 발생해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극우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은 지난 9~10월 옛 동독 지역 세 곳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2위를 기록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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