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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증권맨도 당했다..'먹튀' 전까지 모르는 '가상거래'

이진석 입력 2019.12.0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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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보이스피싱' 가상거래의 늪] <상>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 비극
10년 경력 前증권맨 "실제 거래인 줄 알았는데.."  
출처=픽사베이

[파이낸셜뉴스] 가상거래는 비유하자면 ‘꿈속의 거래’다. 매수·매도 주문을 눌러 수없이 거래를 성사시켜도 실제 시장과는 상관없는 ‘눈속임’에 불과하다. 꿈속에서 깨어난 뒤에야 모든 것이 가짜였다는 것을 깨닫지만, 사라진 돈은 돌아오지 않는다. 파이낸셜뉴스는 기획 보도를 통해 신종 보이스피싱으로 떠오른 가상거래의 피해 사례와 제도적 문제점들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1.과거 10년간 증권사 직원으로 근무했던 황모씨(49)는 지난 9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회원가입 시 주식 10배 레버리지(주식매입자금의 10배까지 대출)를 해주겠다”는 상담원의 말에 김씨는 업체에서 제공한 홈트레이딩(HTS)프로그램을 설치한 후 총 3000만원을 입금해 주식을 매수했다. 그러나 주가가 하락하자 황씨가 사들인 주식은 자동으로 로스컷(손절매) 당했고, 현재 남은 돈은 수 십 만원뿐이다.
#2. 병원에서 근무 중인 김모씨(48)는 지난해 전화로 “주식매입자금의 10배까지 자금을 빌려준다”는 상담원의 말에 업체가 제공한 HTS를 설치하고, 총 1억7000만원을 입금해 주식매매를 시도했다. 그러나 매수할 수 있는 종목은 한정됐다. 또 그마저도 실제거래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돼 원금반환을 요청했으나 해당 업체는 HTS를 차단한 후 잠적했다.

주식 및 선물옵션 거래가 되는 것처럼 속이는 ‘가상거래 프로그램’을 활용해 투자자들의 돈을 가로채는 금융범죄가 활개를 치고 있다. 인터넷 방송 진행자들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회원들을 모집하고, 꼬리가 잡히더라도 상호만 바꿔가며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수법이다. 피해자들이 '가짜 거래'라는 사실을 깨달을 무렵에는 이미 해당 업체는 잠적한 뒤다.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당국에 허가받지 않은 비인가 금융투자업체의 적발건수는 2016년 209건에서 2017년 305건, 지난해 788건으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가상거래 프로그램(왼쪽)의 실행 화면과 불법 스탁론 업체의 광고 내용. 사진제공=제보자
■손실액 챙기고 수익나면 '먹튀'
최근 비인가 금융투자업체에 의한 피해사례를 보면 가상거래 프로그램을 매개로 하는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들 업체의 영업행태는 주로 선물계좌 대여와 주식매입자금대출(스탁론) 등이다.

우선 국내에서 선물이나 옵션 투자를 하려면 각각 3000만원과 5000만원의 증거금이 필요하다. 불법 선물옵션 업체들은 증거금이 부족해 거래를 못하는 개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증거금 없이도 사용가능한 계좌를 대여해준다는 식으로 현혹한다.

불법 스탁론 역시 과감한 조건을 내걸고 투자자들을 끌어들인다. 제도권 스탁론의 경우 주식매입대금의 최대 4배까지 담보 대출을 해주지만, 이들 업체는 10배까지 대출해주겠다는 광고로 투자자들을 모집한다.

이들 업체는 투자자들에게 홈페이지 가입 후 자체 제작한 HTS를 설치하라고 한 뒤 지정한 계좌로 입금한 만큼 사이버 머니를 충전해준다. 투자자들은 사이버 머니를 통해 거래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증권시장 시세만 연동된 채 계약체결은 이뤄지지 않는 ‘가짜 거래’다. 그러나 HTS상에선 마치 매수거래가 이뤄진 것처럼 보이기에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불법 업체들이 돈을 떼먹고 달아나서야 뒤늦게 사기였음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업자들이 거래수수료와 회원들 투자손실액을 챙기고, 회원들이 큰 이득을 보면 계좌를 폐쇄한 뒤 ‘먹튀’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불법 스탁론을 이용했던 전직 증권맨 황씨는 “이용한 업체가 금융당국에 인가받지 않은 회사인지 몰랐다”며 “HTS상 주식거래가 실제론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한탄했다.

한 증권전문가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 전화번호를 남기는 조건으로 회원가입을 하자 금융투자를 권유하는 광고가 빗발쳤다. 사진=이진석 기자

■"현직 증권사 직원까지 회유"
이들 업체는 인터넷 방송이나 주식정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브로커 등과 공모해 신규 회원을 확보해왔다. 방송이나 증권 정보를 얻기 위해 회원가입을 유도하고 그 정보를 업자에 팔아치우는 방식이다. BJ들은 급여를 받거나 유치한 회원들로부터 받은 수수료 중 일부를 받아 챙겨 억대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심지어 증권사 직원을 회유해 고객정보를 빼내는 업체도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본지가 실제로 한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자 불과 하루 만에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가입을 권유하는 연락이 빗발쳤다. 접촉 중인 투자자가 관심을 보이면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으로 초대해 "연락처를 남겨주면 VIP방에서 좋은 종목을 무료로 추천해주겠다"며 HTS 설치를 유도한다.

불법 선물옵션 업체의 콜센터 직원으로 근무했던 홍모씨(50)는 “증권방송 BJ들이 투자 강좌를 운영하면서 유료방송에 대해선 ‘선물옵션 대여계좌를 사용하면 무료’라고 권유해 회원들이 가상거래 프로그램을 쓰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업체들의 경우 현직 증권사 직원을 회유해 거래실적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주는 조건으로 고객명단을 넘겨받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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