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쥐·지네·곰팡이.. "벌레집에 우리가 세 든 것 같아요"

안규영 기자 입력 2019.12.09.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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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빈곤아동] 혹독한 겨울나기 <상> 스무살 누나와 10년째 한 방 써
한 중년 여성이 지난 5일 서울 구로구의 상가 지하창고에 앉아 있다. 텐트와 휴대용 버너, 보온병, 간이식탁, 옷걸이도 보인다. 초등학생 자녀 둘과 함께 세 사람이 지내는 지하창고는 한겨울에도 난방이 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주거빈곤층에게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다. 윤성호 기자


초등학교 4학년인 은지(가명)는 겨울이 가장 싫다. 집에 들어서면 ‘나까지 까매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지하 13평 남짓한 은지네 집은 날씨가 추워지면 바닥과 천장에 곰팡이가 까맣게 피기 시작한다. 은지는 “그래도 여름에 매일 나오는 바퀴벌레, 구더기가 뜸해서 좋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은지네 집을 찾았다. 공공임태주택의 한 종류인 전세임대주택이다. 공공임대주택 사업 중 전세보증금을 지원받아 민간주택을 임차하는 형태다.

기자가 지난 5일 방문한 서울 성북구 지하층의 은지(가명)네 집. 방바닥과 천장에 곰팡이 자국이 가득하다. 방에는 벌레를 잡기 위한 부채와 파리채가 널려 있다. 안규영 기자


은지네 지하 집으로 향하는 통로 옆은 쓰레기장이다. 초입부터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집 안에 들어서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풍겼다. 보일러를 틀었는데도 집에는 찬 기운이 돌았다. 은지 할머니는 “단열 기능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낡은 벽지는 누렇게 바래거나 여기저기 찢겨 있었다. 곰팡이 자국이 심한 바닥 구석엔 세제 용기가 세워져 있었다. 할머니는 “방이지만 락스를 뿌린 다음 드라이기로 말리면 곰팡이가 좀 낫다”고 말했다. 기자가 방을 둘러보는 사이 할머니는 곰팡이 자국이 난 바닥에 애꿎은 걸레질만 했다.

은지는 6년 전 8500만원 전세임대 지원을 받아 이곳으로 이사 왔다. 할머니는 “월세 없이 세 식구가 살 만한 집을 구하려면 이 정도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쫓겨날까봐 할머니는 집주인 눈치를 본다. “배관이 고장나서 물이 항상 줄줄 새요. 테이프로 막아놨는데도 냄새가 말도 못하죠. 그래도 주인한테 말 못해요.” 딱 한번 주인에게 수리를 부탁한 적이 있는데 ‘그러면 나가라’는 답만 들었다. 허리가 좋지 않은 할머니는 가끔 밤 청소를 나가 빠듯한 생계를 유지한다.

“정부에서 전세금을 지원해준 건 말도 못하도록 고맙죠. 고맙긴 한데, 집값이 워낙 비싸서….”

할머니는 그래도 ‘남들이 들으면 염치없다고 욕한다’며 말을 아꼈다.

은지네는 할머니와 은지 남매 등 식구가 셋이다. 쓸 수 있는 방은 하나다. 방 하나는 겨울이 되면 곰팡이와 냉기가 너무 심해져 쓸 엄두를 못 낸다. 오빠가 방에서 자고 은지와 할머니는 부엌에서 잔다. 난방비 부담으로 평소엔 보일러를 틀지 않는다. 최대한 이불을 많이 꺼내 덮고 자지만 추위와 곰팡이 때문에 은지와 오빠는 감기, 천식을 달고 산다.

지난해 겨울엔 자다가 천장에서 물이 새 깜짝 놀라 깬 적도 있다. 할머니는 “윗집 보일러가 터져서 물이 폭포수처럼 내려왔다. 전기에 감전될까봐 너무나 걱정됐다”고 했다.

은지네 집 현관문에 붙은 성범죄자 신상 알림 고지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벌레 집에 세들어 사는 것 같아요”

날씨가 풀려도 걱정은 풀리지 않는다. 봄이 오면 쥐, 지네 등 각종 벌레가 나온다. 할머니는 “쥐가 변기를 타고 올라와요. 올봄엔 지네가 옷 속에 들어가 물었어요”라며 “오죽하면 우리가 벌레집에 세 들어 산다고 애들끼리 농담을 해요”라고 했다.

남매의 안전도 걱정이다. 집 현관에는 올해 1월 받은 ‘동네 성범죄자 고지 정보서’가 붙어 있었다. 할머니는 “이 근처에서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 애들 키우기가 무섭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골목에서 여자아이가 납치될 뻔한 적도 있었다.

할머니는 은지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가자’고 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은지가 한번 친구를 집에 데려왔었는데 친구가 ‘너네 집은 왜 이러냐’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애가 기가 죽어 있어서 저 혼자 방에 들어가 울었습니다.” 은지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으냐’는 질문에 쑥스러워하면서도 거침없이 답했다. “쓰레기가 없는 집이요. 또 벌레가 없는 집…화장실에 욕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인천 부평구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민서(가명)네의 두 평 남짓한 방. 안규영 기자


“나만의 공간은 꿈도 못 꿔요”

인천 부평구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민서(가명·18)는 ‘나만의 공간’을 알지 못한다. 민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방 하나짜리 임대아파트에서 할머니, 사촌오빠, 동생, 언니와 함께 커왔다. 민서 할머니는 임대아파트 지원을 받기 전엔 인천 간석동에서 더 많은 식구와 살았다. 할머니는 “남편이 매일 술을 마시고 와 가족을 힘들게 했다. 연탄을 때면서 겨울을 버텼는데 그때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라고 했다.

하지만 민서는 ‘여기 살게 된 걸 항상 감사해 하라’는 할머니 말이 싫다고 했다. 민서는 침대 하나 들어가는 작은 방을 네 살 터울 사촌오빠와 함께 써 왔다. 초등학생이던 사촌오빠는 어느덧 성인이 됐다. 민서는 “중학생 땐 오빠와 한방 쓰는 게 싫어 일부러 밤늦게 들어왔다”고 했다. 오빠는 성인이 된 후 주로 밖에서 생활하다 최근엔 군대에 갔다. ‘집이 바뀌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에 민서는 “집에 더 빨리 들어가고 싶을 것 같다. 삶이 행복해질 것 같다”고 답했다.

인천 중구의 국민임대아파트에 사는 우성(가명·19)이도 10여년간 한 살 위 누나와 한방을 같이 썼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남은 방 하나를 쓴다. 우성이 할아버지는 “옷도 편하게 갈아입고 각자 방을 꾸미고 싶을 텐데 어렸을 때부터 형편이 어려운 걸 알아서인지 아무 불평 없이 지내는 걸 보면 마음이 더 아프다”고 했다. 할머니는 초등학생이던 우성이가 ‘중학생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누나랑 방을 따로 써야 한다’고 했던 걸 잊을 수 없다. “‘누나가 임신할 수도 있다’고 하는 거예요. 내가 깜짝 놀라서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쳐줬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커서 남매랑은 방을 각자 써야 한다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항상 맘을 졸인다. 우성이가 사는 국민임대는 영구임대와 달리 보증금이 2500만원이고, 월세도 있어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기초수급비 외에 따로 수입이 없어진 지 7년째다. 할아버지는 “2년마다 재계약하는데 항상 마음에 돌덩이가 얹힌 기분”이라고 말했다. 보증금 대출 이자와 월세만 매달 30만원이 돼 대출 원금은 아직 손도 못 댔다. “애들한테 맛있는 것도 잘 못 사줘요. 전단지만 엄청 붙여놔요. 먹고 싶으니까.”

공공임대주택도 13%는 주거빈곤

공공임대주택에 살지만 최저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환경에서 사는 아동가구 비중이 13.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8일 입수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임대주택 최저주거 기준 미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인천 경기도 내 10개구의 공공임대주택(매입임대 기준) 아동가구 1598곳 중 213곳은 최저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최저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곳에 사는 아동 30가구를 만나 그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심층 조사했다. 국민일보는 이 중 7가구를 방문해 아동과 보호자를 대면·서면 인터뷰했다.

공공임대주택 거주 가구를 대상으로 최저주거 기준 미달 여부를 조사한 건 처음이다. 정부의 최저주거 기준은 가구 구성별 최소 주거면적, 용도별 방의 개수, 부엌·화장실 등 필수설비 등이 정해져 있다. 부부와 두 자녀의 최저주거 기준은 주거면적 43㎡(약 13평)에 방 3개이고 노부부와 부부, 두 자녀 6명은 55㎡(약 16평)에 방 4개 식이다. 하지만 이런 기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주거빈곤층은 227만 가구, 아동가구도 57만여 가구(2015년 통계청 조사)에 달한다.

공공임대주택 유형에는 전세임대, 매입임대(LH공사 등이 임대주택을 산 뒤 주거빈곤층에 빌려주는 제도), 영구임대(주택 설립부터 영구임대 단지로 만들어 빌려주는 제도), 국민임대(매입임대의 한 종류로 입주 조건이 조금 더 완화된 주택) 등이 있다. 보증금이 500만~3000만원으로 일반 주택보다 저렴해 많은 주거빈곤층에겐 ‘꿈의 집’이다. 영구임대 입주 대기자만 4만5000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정부로주터 주택을 지원받는 가정도 주거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개인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정부가 지원을 해주는 건데, 최저주거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게 지원해주는 아이러니”라며 “정부가 최저주거 기준을 갖고 무얼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김승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아동옹호센터 소장은 “정부가 전세금, 주택 물량을 지원한 뒤 사후 관리에는 손을 떼 결국 주거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김 소장은 “전세임대 지원금으로 실제로 방을 구할 현실적인 액수를 지급해야 한다”며 “국민임대의 경우 관행적으로 받는 전세금을 없애 빈곤의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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