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70년대 미니스커트 입고 활보".. 유럽·미국 아닌 아프간 얘기

이재은 기자 입력 2019.12.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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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그 나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여성인권 ②] 탈레반 이전 시대, 자유로웠던 아프간 여성들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1972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걷고 있다. 이 사진은 탈레반 이전 아프간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사진으로 쓰인다. /사진=Amnesty.org


지난달 28일 추수감사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주재 미군 부대를 깜짝 방문했다.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이 중단된 지 2개월여 만의 아프간 방문이었다.

앞서 미국과 탈레반은 지난 9월 아프간이 테러세력을 지원하는 곳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전제로 주둔 미군을 일단 8600명 규모까지 줄이는 내용을 포함한 평화협정 초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탈레반의 테러로 미군 1명이 사망하고, 9·11테러 18주기를 사흘 앞두고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탈레반 지도자를 초청한 사실에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이번 방문을 통해 미국 등에선 다시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다는 안도의 목소리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추수감사절을 맞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인근 바그람 공군기지 주둔 미군 부대를 깜짝 방문해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장병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프간을 찾아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과 회담하고 바그람 공군 기지에서 미군 장병들과 추수감사절 식사를 함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아프간 방문은 안전 문제를 이유로 철저하게 비밀리에 이뤄졌다. 2019.11.29. /사진=AP=뉴시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아프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모양새다. 카불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여성 사업가 라일라 하이다리는 뉴욕타임스(NYT)에 "우리는 탈레반과의 평화협정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프간 국민은 혹시나 협상이 잘 이뤄져 탈레반이 권력을 다시 쥐는 게 아닐까, 다시 최악의 상황을 맞아야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탈레반이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아프간 국민은 이들의 권력 회복을 우려하는 것일까.

탈레반은 아프간 남부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파슈툰족에 바탕을 둔 부족단체에서 출발한 반군테러조직이다. 본래 뜻은 전통식 이슬람 학교(탈리브, 마드라사-Madrasa) 등의 학생들을 가리키는 말로, '학생 조직'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탈레반은 1990년대 중반 활동을 시작,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를 중심으로 결속해 1997년 정권을 장악했으며 이후 2001년 미군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탈레반 정권이 붕괴되기까지 아프간을 통치했다.

미국과 탈레반의 협상 진전으로 아프가니스탄 내전 종식 기대감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 뉴욕타임스(NYT)가 27일(현지시간) 여성 인권 퇴보를 우려하는 현지 목소리를 모아 보도했다. 사진은 아프가니스탄 여성 자한타브 아마디(25)가 지난해 5월16일 다이쿤디에서 아이를 안고 대입시험을 치르는 모습. 2019.01.28./사진=AP=뉴시스

탈레반이 집권하게 된 초기만 해도 미국은 옛 소련의 영향력에서 아프간을 빼낸다는 쪽에 무게를 둬 경계를 하지 않았다. 당시 탈레반 정권은 민주적 투표로 집권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당성(legitimacy)이 있는 정권으로 인정을 받았다. 아프간 내 지지율이 60% 이상이라는 조사 결과가 외신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 같은 인기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약탈을 잡는 데서 비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탈레반은 이슬람 원리주의적 성격을 서서히 드러내며 과도하게 국민을 억압했다. 대표적인 게 가지 스타디움 처형식이다. 가지 스타디움은 카불시의 유일한 종합운동장으로, 탈레반 시절 악명 높은 처형장소였다.

이곳에선 이슬람법률을 집행한다는 이유로 매일 기도시간인 오후 3시30분에 교수대가 차려지고, 투석대가 설치되고, 저격수가 등장했으며 가죽 채찍과 몽둥이로 체벌이 가해졌다. 손목과 발목이 잘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죄목은 보통 이슬람식 전통 복장과 터번을 입으라는 탈레반의 지시를 어기고 수염이나 머리를 깎았다는 것이었다. 탈레반은 스포츠를 금지했기 때문에, 가지 스타디움은 처형장으로만 기능했다. 가지 스타디움은 피로 젖어 잔디가 자라지 않는 불모지가 됐다.

2001년 8월26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거리에서 탈레반 종교 경찰이 여성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있다. /사진=위키커먼스

하지만 이는 약과였다. 여성들에겐 더 가혹한 규율이 드리워졌다. 탈레반은 집권 기간 여성의 사회활동과 여성 대상의 교육을 전면 금지하고 부르카(얼굴과 온몸을 가리는 검은 옷) 착용을 의무화했다. 발목 등을 보였다는 이유로 공공장소에서 채찍질 당하는 일이나, 매니큐어를 발랐다고 손가락 발가락을 절단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집 밖에 여성이 혼자서, 혹은 여성들끼리 외출하는 것도 막았다. 남성이 특정 여성을 간통했다고 지목하기만 하면 여성을 유죄판결에 돌로 때려죽이게 하는 끔찍한 사형제도 유지됐다. 여성들을 상대로 강간이나 강제결혼 등도 자행됐다.

기존에 사회생활을 해와 사회적 지위가 있는 여성들 역시 이 같은 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NYT에 따르면 국회의원 라히마 자미는 1996년 여성 교장이었지만 탈레반 집권 이후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부르카 착용이 강제된 후 무더운 날씨에 시장에서 발을 내보였다는 이유로 공공장소에서 채찍질을 당했다.

1920년대 아프간 여성들의 모습. 서구식 복장에 단발머리가 인상적이다. /사진=위키피디아

국회의원 수크리아 파이칸은 탈레반 집권 시절 대학 교수직을 잃었다. 그의 딸이 다니던 학교는 폐쇄됐다. 파이칸은 집에서 비밀리에 공부방을 차려 소녀들을 가르쳤지만, 겉으로는 쿠란과 의류제작을 지도하는 척을 해야 했다.

이처럼 최악이었던 아프간에 그나마 숨통이 트인 건 2001년 미군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뒤다. 2001년을 기점으로 여성을 향한 '공식적' 억압이 모두 해제되면서, 첫 여성 의원, 첫 여성 시장이 나오는 등 아프간의 여성 권익은 신장되고 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아프간의 지금은 이전 시대와 비교해 여전히 좋지 않다. 191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1979년 옛 소련의 침공 이후 내전에 휘말리기 전까지 아프간은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조금 더 서구화된 국가로 여성 교육에도 앞장선다는 평을 받았다.

1950년대 카불 시내 여성들의 모습. 여성들이 부르카가 아닌 히잡을 쓰고 짧은 치마와 구두를 신고 대중교통을 타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당시 아마눌라 칸 국왕(1919~1929년)은 "종교는 여성의 손, 발, 얼굴을 가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의지를 강제해선 안된다"며 여아 전용 학교를 열고 조혼을 없애고 일부다처제를 제한하는 등 개혁을 단행했다.

조금씩 변화는 있었지만 비이슬람적 사회주의 성향 모하마드 나지불라(1987~1992년) 정권의 공산주의 교육정책으로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았고 사회활동도 다른 이슬람권 국가들보다 훨씬 활발하게 벌일 수 있었다. 당시 카불에는 교육받은 여대생만 8000명이 있었고, 아프간 내 의사들의 40%, 공무원들의 50%, 교사의 70% 가량이 여성이었다.

이 같은 호시절은 1990년대 중반 탈레반이 정권을 잡으며 한번에 무너졌다. 호리아 모사디크 엠네스티 아프간 조사원은 2013년 "내가 어린 소녀였을 때 어머니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영화관에 데려갔다. 이모는 카불에 위치한 대학을 다녔다"고 회상했다.

탈레반 사례는 종교가 현실을 어디까지 규제할 수 있을지, 또 종교의 이름으로 인권을 탄압하는 이들을 종교의 자유라고 보아 방치해둬도 될지 여러 생각을 들게 한다.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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