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호의 시시각각] 미군 철수, 이러다간 못 피한다

남정호 2019. 12. 10.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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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담금, 철군은 별개" 믿기 어려워
미국 내 한국 주둔 지지 주는 추세
철군 가정 속 플랜 B도 준비해야
남정호 논설위원
지금 우리는 국운이 걸린 중차대한 물음 앞에 서 있다. “방위비 분담(SMA) 협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뺄 것인가.”

이에 대한 미 행정부 고위층의 대답은 한결같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주한미군 철수는 별개”라는 거다. 한국이 분담금 5배 인상 요구를 받지 않으면 주한미군 1개 여단을 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국내 보도가 지난달 나오자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은 펄쩍 뛰었다. 에스퍼 장관은 ‘가짜 뉴스’라며 “우리는 그런 걸(미군 철수)로 동맹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이어진 미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도 똑같았다. 지난 5일에는 존 루드 국방부 차관이 방송에 나와 “(미군 철수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고 미 합참 제프리 앤더슨 해군 소장은 그 전날 “국방부 내엔 그런 논의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 측에서도 미국 주장을 거드는 발표가 거듭됐다. 정은보 SMA협상대사는 지난 3일 “방위비 협상 과정에서 미군 철수 이야기는 나온 적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이 철수 카드로 몰아세우진 않는다는 뉘앙스다.

미 외교관들이 즐겨 쓰는 표현 중 이런 게 있다. “미 행정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순간의 이익을 위해 한 번이라도 속이면 누가 미국 말을 믿겠느냐는 논리다. 그렇다면 이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어도 좋을까. 슬프게도 그간의 역사와 한·미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절대 그래선 안 된다. 과거부터 들춰보자. 지난해 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시리아 철군 방침을 내비치자 그의 최측근 참모들은 하나같이 이를 부인했다. 그해 9월 당시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시리아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없어질 때까지 미군은 남아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매티스와 늘 다퉜던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마저 “이란군이 국경에 있는 한 시리아 철수는 없다”고 못을 박았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참모들의 거듭된 공언을 비웃듯, 두 달 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서의 완전 철군을 발표했다.

트럼프는 늘 오락가락한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그의 정책은 무섭도록 일관돼 있다.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쌓은 게 대표적인 예다. 주한미군 철수도 마찬가지일 게다. 트럼프는 지난 30년 동안 “주한미군은 미국 국익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114번이나 주장했다고 한다. 게다가 참모들의 거듭된 부인에도 그는 지난 3일 런던에서 “(주한미군을 유지하려면) 한국이 방위비를 더 공정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니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시기 문제일 뿐,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은 기정사실로 여기고 대비하는 게 현명하다.

미군의 한국 주둔을 지지하는 미국 내 여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 9월 미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 조사 결과, 주둔 지지율은 지난해 74%에서 올해 69%로 5%포인트 떨어졌다. 더 중요한 건 문재인 정부가 미군 철수에 괘념치 않는 듯하는 분위기다. 1976년 당시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였던 지미 카터가 주한미군을 빼겠다는 공약을 내걸자 박정희 정부는 난리가 났다. 기밀 해제된 외교문건에 따르면 중앙정보부는 북한과의 대치 상황과 관련된 문건을 만들어 카터 후보 진영에 전달했고 주일대사는 그의 정치 참모가 일본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만나 철군의 위험성을 호소했다. 철수 저지를 위한 전방위 총력전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완전히 딴판이다. 심지어 핵심 외교 책사라는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지난달 25일 “(주한미군을) 5000~6000명 감축해도 한·미동맹이나 대북 억지력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갈 테면 나가라는 식이다. 이러니 주한미군이 붙어있겠는가. 차라리 주한미군 철수를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으로 여기고 플랜 B를 준비하는 게 현실적이고 현명한 처사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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