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율 14%' 한방 난임치료 논란, 英 학자도 뛰어들었다

황수연 2019. 12. 1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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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 난임사업 국가지원 둘러싸고 갑론을박
"유효성·안전성 입증 실패"vs"병행치료 가능성 제시"
최근 한방 난임 치료를 둘러싸고 양·한방의 갈등이 다시 불붙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동국대학교 일산한방병원 한방여성의학과 김동일 교수의 연구 결과가 있다. ‘한방 난임치료가 인공수정 시술의 효과와 비슷하다’는 내용의 이 연구 결과가 한방 난임치료의 국가 지원 논의를 두고 맞서는 양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각각 활용되면서 양·한방 제2라운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방 난임치료를 둘러싼 양 한방 갈등이 불붙고 있다.[중앙포토]


갈등, 왜
발단은 김동일 교수가 지난달 발표한 ‘한약 투여 및 침구 치료의 난임 치료 효과규명을 위한 임상연구’다. 보건복지부에서 예산 6억2000만원을 지원받아 2015년 6월 1일부터 올해 5월 31일까지 4년간 진행됐다. 김 교수는 이 연구에서 원인불명의 난임으로 진단받은 만 20세 이상 44세 이하 여성 100명 중 중도 탈락자를 제외한 90명에 한방 난임 치료를 했더니 임신율이 14.44%로 나왔다고 밝혔다. 대상자에 한약과 침구 치료를 병행했더니 90명 중 13명이 임신했고 이 가운데 7명이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인공수정 임신율이 13.91%로 나왔던 ‘2016년 난임부부 지원사업 결과보고서’를 인용하면서 한방 난임치료가 인공수정의 유효성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의과 치료 통계와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한의약 난임 치료가 보완적 치료 수단으로서 유의미하다”고 밝혔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달 ‘한의약 난임지원사업 성과대회’를 열고 “한의 난임치료의 뛰어난 성과를 재확인했다. 정부 차원에서 한의 난임치료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잭 윌킨슨 영국 맨체스터대 보건과학센터 연구원이 지난 4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 김동일 동국대 일산한방병원 한방여성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한 저널에 투고한 연구 논문이 "터무니없고 비과학적"이라며 심사를 거절했다고 썼다. [트위터 캡처]


“비과학적” 집중포화
의료계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근거로 이 연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한방치료를 하지 않은 같은 조건의 환자(대조군)와 비교하는 게 연구의 기본인데, 이런 기본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또 연구 대상자가 90명에 불과해 임상적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바른의료연구소는 “거액의 세금이 투입된 임상연구임에도 대조군이 전혀 없는 비(非)대조군, 비(非)무작위 배정, 비(非)맹검 임상시험이었다. 이런 연구 디자인으로는 한방난임 치료의 유효성을 입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역시 “인공수정 시술 주기당 임신 성공률을 한방 난임 치료 7개월간의 누적 임신 성공률과 비교하는 치명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무런 치료를 시행하지 않고 6∼8개월 동안 자연임신시도를 하더라도 20∼27%의 자연임신율이 보고됐다. 오히려 열등한 결과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한 영국 학자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이 연구를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영국 맨체스터대 보건과학센터의 연구원 잭 윌킨슨은 지난 4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 연구 결과가 “터무니없고 비과학적이며 임상 연구도 아니다”라면서 본인이 한 학술지에 제출된 이 논문의 심사를 거절했다고 썼다. 평가 거부 이유를 적은 리뷰어(심사위원) 페이지를 사진으로 함께 올리면서다. 댓글로 논문 심사의 비공개 원칙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데 대해서도 “커리어를 위해 비윤리적 연구를 하는 사기꾼을 더 걱정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재반박
김동일 교수도 연구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난임 연구에선 대조군이 있기가 힘들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정책연구이다 보니 주어진 예산 안에서 대상자 규모를 디자인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간 한의학 쪽에서 이런 연구조차 없었기 때문에 이번 연구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연구를 진행한 것이라고도 밝혔다.

김 교수는 “모든 한의 치료가 우수하다는 게 아니고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한방·양방 별도로 난임치료를 진행하기보다 가능하다면 협진해 통합의료를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향후 후속 연구를 통해 난임 환자에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고 병행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하자는 게 이 연구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SNS에 연구를 공개 비판한 윌킨슨에 대해선 “리젝(심사탈락)은 흔한 일이지만 (SNS에 관련 내용을 올리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이라며 “연구윤리에 위반되는 사항이다. 학술지 에디터(편집자)에게 유감 e메일을 보냈다”고도 말했다. 또 “이미 2017년 연구방법과 관련된 프로토콜(연구계획서) 논문이 같은 학술지에 게재됐다. 다른 심사자에 의해 연구 방법론에 논란이 생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국가지원 분수령 될까
한의계는 한방 난임치료가 여러 치료 사례를 통해 효과가 검증됐다며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복지부는 그러나 국가 지원을 논의하려면 치료에 쓰이는 침술이나 한약을 표준화할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주영 복지부 한의약산업과장은 “한의학의 과학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이번 연구는 향후 논의를 위한 다양한 연구 결과 중 하나일 뿐”이라며 “국가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보다 많은 연구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돼야 하며 표준진료지침이 제정돼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현재 대한의사협회와 한의협 측은 토론회 개최를 논의하고 있다. 김 교수는 “양측의 이권 다툼이 벌어지는 게 아닌, 건설적 토론의 장이 열릴 수 있다면 언제든지 찬성한다”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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