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곳 없는 북한이탈 청소년 대안학교..빛 잃은 배움의 꿈

강재구 2019. 12. 1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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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살 이민수(가명)씨는 지난 8월 늦깎이 고등학생이 됐다.

이씨는 북한에서 넘어와 2017년 4월 부푼 꿈을 안고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이씨와 같은 북한 이탈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이 흔들리고 있다.

2004년에 개설된 여명학교는 2010년 서울시로부터 북한 이탈 청소년 대안학교 중 처음으로 학력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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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탈 청소년 대안학교 '여명학교'
은평뉴타운 이전 추진하자
일부 주민 "동네 질 떨어져" 반대 목소리
은평구청마저 '이전 보류' 검토
서울시 중구에 있는 여명학교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스물여섯살 이민수(가명)씨는 지난 8월 늦깎이 고등학생이 됐다. 이씨는 북한에서 넘어와 2017년 4월 부푼 꿈을 안고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 사회를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20대 중반인 이씨를 받아주는 학교는 없었다. 생계라는 냉정한 현실도 그를 가로막았다. 부산에선 5톤 트럭을 몰았고 인천에선 프레스기 앞에서 그릇을 찍어냈다.

그를 받아준 건 북한 이탈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다. 이씨는 8월 여명학교 고등과정 2학년으로 입학했다. 정규 수업과 기숙사를 모두 무료로 받는다. 법대를 졸업한 뒤 경찰이 되어 “약자를 지켜주고 싶다”는 이씨에게 여명학교는 “꿈이고 희망”이다.

이씨와 같은 북한 이탈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이 흔들리고 있다. 서울 중구에 있는 여명학교가 2021년 이전을 앞두고 서울 은평뉴타운에 새 터전을 마련하려 하자, 일부 뉴타운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서다.

2004년에 개설된 여명학교는 2010년 서울시로부터 북한 이탈 청소년 대안학교 중 처음으로 학력 인정을 받았다. 교사 16명이 17~26살 학생 89명을 가르친다. 학생 절반은 서울 은평구, 구로구 등에 빌린 연립주택에서 기숙생활을 한다. 현재 사용 중인 건물의 임대계약이 2021년 2월에 끝나 3년 전부터 새로운 학교 용지를 찾아 나섰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나선 끝에, 은평구 진관동의 편익시설 부지를 추천받았다.

새 둥지를 찾은 기쁨도 잠시였다. ‘은평뉴타운 내 주민 의견을 무시한 여명학교 신설·이전 추진을 막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는 등 지역 주민들의 반대 여론이 불거지자 자치단체인 은평구가 ‘이전 보류’까지 검토하고 있어서다. 주민들은 △주민들에게 사전에 충분한 공지가 없었다는 점 △용도변경 특혜 의혹 등을 이전 반대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10일 서울시와 은평구 관계자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여명학교 이전에 절차적 문제는 없다. 은평구 관계자는 “공람공고, 구의회 의견 청취, 주민 공청회 등 정상적인 절차대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에스에이치공사 관계자도 용도변경 특혜 주장에 대해 “편익용지는 민간 매각 등을 통해 성격에 맞는 사업자를 들이는 부지”라고 선을 그었다. 게다가 여명학교의 이전 부지는 지난 10여년 동안 활용되지 않은 땅이다.

주민들의 반대 이면엔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를 ‘기피시설’로 언급하는 등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편견이 뚜렷이 작동하고 있다. 은평뉴타운 주민이 이용하는 네이버의 한 카페에는 여명학교 이전 소식에 “민원 넣으러 갑시다. 은평뉴타운에 더 이상의 기피시설은 용납할 수 없어요”, “동네 질 엄청 떨어집니다. 우리 모두 목숨 걸고 저지해야 됩니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편견 어린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남북을 잇는 가교를 꿈꾸며 여명학교를 지켜온 청소년들의 실망감은 크다. 간호사가 꿈이라는 박연지(가명·17)양은 “교감 선생님이 그 소식을 전하면서 엄청 울었다. 후배들이 지낼 공간이니까 저도 기대가 컸는데 이전을 못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길 듣고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이민수씨도 “주민들에게 나쁜 일이라면 저희도 원치 않지만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단 기대를 가지고 너그럽게 봐주실 수는 없으실까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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