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기습표결한 文의장, 野 "화장실서 '의사봉' 넘기고 국회 떠나"

김동하 기자 2019. 12. 1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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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일방처리]
예상 깨고 예산안을 '1번 안건'으로 상정, 野의 저지 무산시켜
한국당 "아들 공천 대가냐" 항의하자 野수정안 토론까지 차단
의장 측 "몸 상태 좋지 않아 내실로 들어간 것, 본회의장 나오며 사회권 이양"

문희상 국회의장은 10일 더불어민주당과 범여 군소 정당들의 이른바 '4+1 협의체'가 만든 내년도 예산안 수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전격 상정했다. 통상 예산부수 법안을 먼저 의결한 뒤 예산안을 처리하는 관행을 깨고 예산안을 먼저 상정한 것이다. 문 의장은 또 자유한국당이 제출한 예산안 수정안에 대해선 토론 종결을 시키면서 무산시켰다. 야당에선 "의장이 중립은커녕 여당 편만 들었다" "중립적으로 사회를 봐야 할 국회의장이 여당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문 의장은 이날 밤 속개된 본회의에서 예상을 깨고 내년도 예산안을 '1번 안건'으로 올렸다. 당초 한국당은 안건 목록상 예산안 앞에 위치한 예산부수법안에 대해 수정안을 줄줄이 제출하며 사실상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효과를 낼 계획이었다. 문 의장이 관행을 무시하고 상정 순서를 바꾸면서 무산시켜 버린 것이다.

문 의장의 예산안 상정에 한국당 의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함을 지르며 항의했다. 한국당 의원들의 구호는 "이게 민주주의냐" "의회 독재 문희상은 사퇴하라"에서 점차 "공천 세습" "아들 공천" "공천 대가" 등으로 바뀌었다. 문 의장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문 의장이 지역구(경기 의정부갑)를 아들 석균씨에게 물려주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민주당에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던 석균씨는 작년 11월 당 지역위원회 상임부위원장에 임명됐었다.

고성이 이어지자 문 의장은 한국당이 제출한 예산안 수정안 토론을 위해 단상에 오른 조경태 의원에게 "토론을 포기하시는 겁니까"라고 말했다. 심재철 신임 원내대표는 문 의장에게 "제안설명 할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 의장은 곧장 토론 종결을 선포했다.

문 의장은 곧이어 '4+1 협의체'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기금운용계획안 수정안을 곧바로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문 의장은 예산안 통과 후 정회를 선포한 뒤 퇴장했다. 문 의장은 이후 본회의 사회권을 주승용 국회부의장에게 이양하고 국회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문 의장이 '몸이 불편하다'며 화장실에 간다고 했는데 화장실에서 전화로 (본회의) 사회권을 이양했다"며 "비열한 꼼수 국회의장에게 전 세계가 혀를 찰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회 관계자는 "의장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내실에 들어간 것이지 화장실에서 사회권을 이양했다는 심 원내대표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사회권은 문 의장이 본회의장을 나오며 이양했다"고 반박했다. 문 의장이 퇴장한 뒤엔 주 부의장이 사회권을 받아 편법으로 순서가 뒤바뀐 예산안 부수 법안 처리를 이어갔다.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인 송언석 한국당 의원은 "세입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법적인 날치기 예산이 처리되는 데 국회의장이 합심한 것"이라고 했다.


문 의장의 이날 모습은 그간 여야 간 합의를 중시하며 의회주의자를 자처했던 과거 그의 행보와는 대비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문 의장은 작년 7월 20대 후반기 국회의장에 취임하며 "대화와 타협, 협치를 통한 국정 운영은 20대 국회의 숙명"이라며 "남은 2년은 첫째도 협치, 둘째도 협치, 셋째도 협치가 최우선"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 의장이 정국 고비 때마다 여당 편을 들면서 중립성 시비를 자초했다. 지난 10월엔 문 의장이 해외 순방 중 "(내년 총선에서) 과반이 아니라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어느 당이든 몰아줬으면 한다"고 했던 발언이 논란이 됐다. 문 의장은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공수처 설치법 등에 대해 "지금 검찰 개혁은 시행령 등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는데, 입법을 하지 않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된다"고도 했다. 노골적으로 청와대와 여당 편을 든 것이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에선 "문 의장이 선거법과 공수처설치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에서도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다 해줄 것이 뻔하다"며 "국회의장이 이런 식으로 정쟁의 중심에 선 것은 처음 본다"는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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