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중국의 黑역사 '흑사병'

박영서 2019. 12. 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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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라는 흑사병이 중국에서 꿈틀대고 있다.

지난달 말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우란차부(烏蘭察布)시에서 폐 페스트 발병이 추가로 확인됐다.

리훙장이 모스크바에 오기 직전 중국에선 흑사병이 발생해 수만명이 사망했었다.

이전의 사스나 지금의 흑사병 사태를 보면 아직도 123년 전의 풍토가 중국에 엄존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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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논설실장
박영서 논설실장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라는 흑사병이 중국에서 꿈틀대고 있다. 지난달 말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우란차부(烏蘭察布)시에서 폐 페스트 발병이 추가로 확인됐다. 벌써 4번째 확진 사례다. 이 환자는 페스트 균 출처가 확인된 지역을 방문한 뒤 병에 걸렸다고 한다. 현재 격리된 상태에서 치료 중이다. 새 환자가 발견된 우란차부는 이전 3명의 페스트 환자가 발견된 네이멍구 시린궈러에서 500㎞ 이상 떨어져 있는 곳이다. 이러다간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폐 페스트 발생 후 네이멍구 보건당국은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쥐 박멸에 나섰다. 133㎢ 넓이의 땅에 헬리콥터 17개를 동원해 14만t이 넘는 쥐약을 살포했다. 흑사병이 쥐벼룩을 매개체로 전염되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로 이 지역에서는 당분간 양을 방목할 수 없게 됐다. 수도 베이징도 대대적인 쥐 잡기 활동을 펼쳤다. 쥐 소탕 중점 지역을 선포하고 각 직장과 주민위원회가 협동해 쥐약을 투여하고 쥐덫을 설치했다.

흑사병이란 명칭은 이 병에 걸리면 피부가 검게 변한다는 데서 따온 것이다. 흑사병은 14세기 유럽에서 창궐해 수 많은 사망자를 낳았다. 당시 유럽 인구의 30% 이상이 숨졌다고 한다. 흑사병은 19세기 들어 프랑스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발병 원인과 치료법이 밝혀졌다. 이후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치료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21세기에도 흑사병 환자가 발생한다. 아프리카 지역에 많다. 중국에서는 2014년 3명, 2016년, 2017년에 각각 1명이 사망했다.

일반적으로 중국에선 전염병이 한번 돌면 급속히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원인 중의 하나로는 비싼 의료비를 꼽을 수 있다. 빈곤층은 병에 걸려도 병원비가 비싸 병원에 갈 엄두를 못낸다. 대신 별 효과 없는 한약이나 민간요법 등으로 나름대로 치료한다. 만약 그 병이 전염병이라면 결국 주위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정보의 통제다. 흑사병 첫번째 환자가 발생한 사실은 발병 20여일이 지난 뒤에야 공개됐다. 그 사이 얼마나 이 병이 확산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러다 보니 흑사병 괴담이 돌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병 때도 보안에 급급하다가 걷잡을 수 없이 병을 키운 사례가 있다.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오른다. 1896년 5월 73세의 북양대신(北洋大臣) 리훙장(李鴻章)이 모스크바에서 열린 니콜라스 2세의 대관식에 참석했다. 대관식을 축하해 시민들에게 기념품과 선물을 나눠주는 행사가 있었다. 이를 받으려고 수십만명의 군중이 몰려들면서 1389명이 압사하고 1300여명이 다쳤다. 엄청난 사고였다. 리훙장은 당시 러시아 총리였던 빅토르 백작에게 "이번 사고를 당신 황제에게 모두 알렸냐"고 물었다. 빅토르 백작은 "모두 알렸다. 황제는 모두 알고 계신다"고 답했다. 그러자 리훙장은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황제에게 불안감을 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런 사건은 숨긴다"고 말했다.

리훙장이 모스크바에 오기 직전 중국에선 흑사병이 발생해 수만명이 사망했었다. 리훙장은 이를 언급하면서 "역병이 발생한 일도 황제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빅토르 백작은 훗날 회고록에 "리훙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러시아가 청나라보다 훨씬 발전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어 자랑스러웠다"고 적었다.

이전의 사스나 지금의 흑사병 사태를 보면 아직도 123년 전의 풍토가 중국에 엄존하고 있는 듯하다. 관리들이 자신들만의 '하고 싶은 방법'으로 일을 처리해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민과 법을 경시하는 행태가 숨어있다. 전염병 확산은 의료기술의 미비가 아니라 통제와 은폐의 결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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