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페터 한트케, 나는 당신의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2019. 12. 12. 20:5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지난 10일 스톡홀름에서 노벨상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는 마냥 축하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77·오스트리아) 때문이었다.

지난 10월 노벨상 발표 때부터 한트케를 수상자로 선정한 데 대해 말이 많았다. 한트케는 소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소망 없는 불행> 등과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대본을 썼다.

문학상 선정기관인 스웨덴 한림원은 한트케의 작품이 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었다고 평했다. 한트케는 1980년대부터 큰 인기를 얻은 작가로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갖췄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정치적 행보가 논란이 됐다. 한트케는 밀로셰비치와 가까운 사이로 학살을 부정하고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서 직접 추도사를 읽기도 했다.

밀로셰비치는 1989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세르비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유고슬라비아 전쟁, 크로아티아 전쟁, 보스니아 전쟁에서 소위 비(非)세르비아인에 대한 ‘인종청소’라 부르는 학살을 자행했다. 반대파 정치인의 암살을 지시하고, 알바니아인 80만명에게 강제이주를 명령했다. 이를 피해 1990년대 수많은 동유럽 주민이 스웨덴으로 정치적 망명을 했다. 보스니아와 유고슬라비아계는 지금도 스웨덴 이민자 중 큰 숫자를 차지하는 그룹 중 하나다.

한트케의 노벨상 수상 발표 이후 유족협회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인종주의, 증오와 폭력의 옹호자에게 노벨문학상을 주는 것을 반대한다며 수상 철회 청원을 조직했고 노벨상 시상식장 앞에서 시위를 했다. 시위를 조직한 아드난 마흐무토비치 스톡홀름대 교수는 한트케가 노벨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과거의 학살이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 되는 것과 같다고 일갈했다. 피해국인 알바니아와 코소보, 크로아티아, 터키 등의 스웨덴 주재 대사는 노벨상 시상식을 보이콧했다.

1980년대 무렵까지 한트케는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 중 하나였으나 1990년대 이후부터 후보군에서도 이름이 빠졌다. 그런 그가 어떻게 2019년 화려하게 복귀해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을까? 2017년 스웨덴 한림원의 ‘미투’ 파문으로 한림원은 외부 심사위원을 초빙해 새로운 선발팀을 꾸렸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는 외부위원이 중심이 되어 선정했고 한림원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한림원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페터 엥글란드는 과거 발칸 전쟁을 취재했던 기자로 과거 동유럽의 비극에 동조한 한트케의 시상식에 참여하는 것은 위선이라며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또 한 명의 심사위원은 자진 사퇴했다. 1988년 유엔 평화유지군의 회원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스웨덴 언론인 크리스티나 독타르는 한트케의 수상에 반대한다면서 금메달을 반납했다.

논란은 유럽을 넘어 번졌다. 당시 동유럽의 잔인한 현장을 목격했던 기자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BosniaWarJournalists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자신이 쓴 기사와 경험을 공유하며 한트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뜨거운 문제 제기에도 한림원은 노벨문학상은 정치적인 상이 아니며 문학적 우수성을 정치적 관점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시대의 주류 의견을 반영해 심사했다고도 했다.

글은 그 사람의 말과 생각,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작품과 작가를 분리해서 볼 수 없다. 시대와 동떨어진 순수한 문학이라는 것도 존재하기 어렵다. 한트케의 수상은 내가 별 의심하지 않고 믿어온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보스니아와 비슷한 역사를 가진 나라의 사람으로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한트케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스웨덴 한림원의 ‘용기 있는 결정’에 감사한다고 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한트케가 한림원의 선정 이유처럼 현실과 문학의 경계를 모호하게 여기고 있다면 부디 현실로 돌아와 사과하기 바란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