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사설] 文 의장, 의원직 아들 주려 대통령 수족 노릇 하는가

입력 2019.12.14.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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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 아들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아버지 지역구인 경기 의정부갑에서 출마하겠다는 얘기다. 그는 "세습 논란을 알고 있다"면서도 "억울하다"고 했다. 국회의원의 아들이 아버지 지역구에서 출마한 것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 있어도 아버지 사망 이후 출마한 경우였다. 문 의장 아들처럼 현역 의원이자 국회의장인 아버지의 배경을 업은 게 아니었다.

문 의장은 여야를 떠나 후배 정치인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모나거나 지나친 말과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야당에도 문 의장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런 문 의장이 올 초부터 노골적인 국회 편파 운영을 시작했다. 그러자 "아들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려고 정권에 아부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평생을 민주화를 위해 살아왔다고 자부해온 문 의장이 설마 그럴까 싶었는데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문 의장은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초당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할 국회의장이 아니라 무리한 강행 처리의 선봉장을 맡았다. 예산안 부수 법안부터 처리해서 세입을 확정한 후 세출 예산을 통과시키는 당연하고 확립된 절차조차 무시했다. 문 의장은 야당이 제출한 수정안에 대한 토론도 무산시켰다.

예산안뿐이 아니다. 논란이 큰 법안을 집권당이 강행 처리하려 할 경우 역대 의장들은 여야 합의를 종용했고 그래서 여당 쪽 불만을 사는 것이 보통이었다. 문 의장은 정반대였다. 집권당이 각 정당 내 소그룹들과 야합한 '4+1' 연대를 통해 문제 법안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문 의장이 각종 편의를 제공하며 사실상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 문제 법안들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국가 기본 제도인 선거법과 공수처설치법이다. 문 의장은 지난 4월 선거법,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면서 야당의 항의를 받자 '저혈당 쇼크'가 왔다며 입원하더니 말썽 많은 사·보임 건을 병상 결재해서 야당의 방어막을 뚫었다. 이번엔 예산안을 기습 통과시킨 후 화장실에서 의사봉을 부의장에게 넘기고 사라졌다.

대통령과 지지 세력 눈에 들어 아들의 당내 공천에 도움을 받겠다는 계산이 아니라면 입법부 수장이 이런 수법까지 써가며 대통령과 정권의 손발 노릇을 할 수 없다. 문 의장은 취임사에서 "정치의 중심은 청와대가 아니라 국회"라면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협치가 최우선이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고 했다. 문 의장이 지금이라도 약속을 지켜 한국 정치사에 몇 안 되는 정치가(政治家)로 남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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