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기울어 보이는 '정경심 법정'

양은경 사회부 법조전문기자 2019. 12. 16.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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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경 사회부 법조전문기자

"재판장이 결론을 정해놨다거나 특정 성향을 가졌다는 것은 판사 개인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자 재판 독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3일 기자단에 이 같은 문자를 보냈다. 정경심 교수의 공소장 변경을 허락하지 않은 형사 25부 송인권 부장판사에 대한 일부 언론 비판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법리적인 검토를 거친 결정이라고 했다. 법원이 특정 사건에 대해 입장을 내는 일은 좀처럼 없다.

문제가 된 지난 10일 재판을 돌아봤다. 변호인 측이 "개인 정보를 지우느라 재판 기록 복사가 늦어지고 있다"고 하자 송 부장판사는 "그걸 왜 변호인이 하나, 검찰이 해야지"라며 "이렇게 늦어지면 보석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형사사건 기록은 통상 변호인 측이 개인 정보를 지우고 이를 검찰에 확인받아 복사한다. 기록이 방대하면 늦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송 부장판사가 변호인도 꺼내지 않은 '보석' 얘기를 하며 검찰을 압박한 것이다. 당황한 검찰이 "신속하게 준비해서 복사할 수 있게 했다"고 했지만 송 부장판사는 단호하게 "이번 주까지 하라"며 "천천히 하는 걸 원하시면 보석 청구하게 해서 천천히 하겠다"고 했다.

그는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에 대해 "일시, 수법, 범행 장소 등이 다르다"며 허락하지 않았다. 먼저 기소된 동양대 표창장 위조 사건과 지난달 11일 기소된 입시 비리에 드러난 표창장 위조 사실관계가 달라 같은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타당성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나름의 법리적 검토를 거친 것은 맞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검찰이 항의하자 송 부장판사는 정씨 변호인에게 "감기에 걸렸으니 대신 읽어 달라"며 변호인 의견서를 읽게 했다. 검찰이 공소사실을 변경하면서 그에 따른 증거도 내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이 재판부에 항의했는데 재판부가 상대편인 변호인의 입과 논리를 빌려 응대한 것이다. 재판부가 직접 "검찰이 증거도 안 내지 않았느냐"라고 하면 될 일이었다. 심판인 재판부가 변호인과 한편이 돼 검찰과 싸우는 식이었다. 검찰이 계속해서 공소장 변경 필요성을 주장하자 "재판부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퇴정 요청하겠다"고 했다. 방청석이 술렁거렸다. 퇴정은 난동을 부리는 피고인에게나 내리는 조치였다.

재판장의 소송지휘권으로 검찰이나 변호인에게 시정을 요구할 수는 있다. 문제는 재판장이 결론을 정해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실제 공정한 것 못지않게 공정하게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어떤 결론이 나든 과정은 공정했다고 믿을 수 있다.

공정하지 않아 보이는 재판을 지적하는데 '재판 독립' 운운하며 반발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대응이다. 언론 비판으로 재판 독립이 훼손될 법원이라면 더 이상 재판을 맡을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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