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누더기 된 연비제..민주당 '의석 지키기'에 개혁 취지 퇴색

박홍두 기자 2019. 12.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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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민주당, 한국당과 협상 가능성 이유로 연동형 비례 의석 ‘마지노선’ 그어
ㆍ정의당·평화당 등 반발…“대기업이 하청업체에 단가 후려치듯 밀어붙여”

“선거법 개정안, 합의대로 통과시켜라” 천막 농성 정의당(위 사진)과 민주평화당(가운데), 바른미래당(아래) 관계자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4+1 협의체’ 합의대로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며 15일 국회 본청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선거제도 개혁이 ‘기로’에 섰다. 여야는 비례성 강화를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협상을 거치면서 도입 취지는 무색해졌고, 선거법은 정치적 셈법에 따라 수정을 거듭하면서 ‘누더기’가 됐다.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반대를 우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군소야당들과 힘을 합하는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상을 이끌어온 민주당의 막판 ‘변심’으로 선거제 개혁이 아예 좌초될 위기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3월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지역구 225석+비례대표 75석’에 연동률 50%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담은 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한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겠다고 나섰다. 유권자가 던지는 한 표로 1등만 당선되고 나머지 표들은 버려지는 선거제에선 거대 양당만 살아남고,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데 여야가 합의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쉬운 수준이지만 ‘비례성 강화’를 위한 작은 전진”이라며 환영했다.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오르게 되자 한국당은 “민주당과 정의당이 안정적 과반을 만드는 법”이라고 반대하며 육탄전을 벌였다.

이후 한국당을 제외한 정당 간 논의에서 합의안은 수정을 거듭했다. 원안대로 지역구를 225석으로 줄이는 것에 대해 현역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여당 내에서부터 “지역구 감소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 결과 ‘240+60’ 안이 나왔다.

‘240+60’ 안으로 지역구 감소폭은 다소 줄었지만 다음엔 지역구가 통폐합될 가능성이 큰 호남·영남 지역구 의원들의 반대가 잇따랐다. 결국 ‘250+50’ 안이 지난달 말부터 새로운 수정안으로 등장했다. 현행보다 지역구는 단 3석만 줄어들고 비례대표는 3석만 늘리는 안으로 재차 후퇴한 것이다.

‘250+50’ 안은 지난 13일 한 단계 더 후퇴했다. 민주당의 ‘변심’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50석의 비례대표 의석 중 30석에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는 이른바 ‘연동률 캡(cap)’을 씌운 안을 띄운 것이다. 연동률을 낮춰 군소정당으로 배정되는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겠다는 민주당의 입장이 반영된 안이었다.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50% 연동률은 비례대표가 75석이라는 원안을 전제했을 때 합의했던 것”이라며 “(비례대표가 50석이라면) 8석밖에 비례 의석을 못 얻게 된다. 우리 당이 지금까지 운영해온 비례대표 제도가 위협받는다”고 수정 이유를 설명했다.

협상 막판에 와서야 ‘비례 의석 확보 가능 범위’가 자신들의 예상보다 적어진다면서 다시 제도를 고치고 나선 것이다. 당 내부에선 내년 총선 비례대표에 포진할 인재영입 전략 차원에서라도 비례대표 가능 의석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가 작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군소정당들은 반발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14일 민주당을 향해 “오만하다”며 “민주당은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단가를 후려치듯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 수를 더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거제도 개혁 취지를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논란이 일었지만 민주당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민주당은 오히려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225+75’ 원안대로 표결할 수도 있다”고 정의당 등 반대정당들을 압박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15일 이를 “민주당의 최저이익”이라고 표현했다. 4+1이 합의를 이룬다고 해도 향후 본회의 상정 전까지 한국당과의 막판 담판 협상 가능성도 있는 만큼 “이 정도 수준에서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정의당의 요구를 ‘개혁 알박기’에 비유하며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후려치는 것이란 발언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결국 비례성을 높이자고 합의했지만 여당의 막판 의석 챙기기로 누더기 수정안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야의 이익 챙기기와 민주당의 뒤통수치기까지 맞물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법안이 됐다는 것이다.

국회의장 직속 선거제도 개혁 국민자문위원을 지낸 최태욱 한림대 교수는 통화에서 “‘비례 30석 연동률 적용’까지 후퇴한 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결국 다양한 민의가 반영되도록 하는 대의민주주의 완성이라는 비례대표제 취지는 잊어버린 채, 여든 야든 의석을 떼어주고 받는 식의 협상만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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