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반만의 한·일 정책대화..분위기는 바꿨지만 '깜짝 성과'도 없었다

김형욱 2019. 12. 16.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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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지속 합의..빠른 시일내 서울서 8차대화 열것"
24일 한·일 정상회담 앞두고 협상 진전 가능성 타진
日 수출규제 중단 위한 핵심쟁점 놓고 '평행선' 유지
"시발점 된 강제징용 해결 없인 교착 장기화할수도"
이호현(오른쪽 2번째)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국장을 비롯한 우리 대표단이 16일 일본 도쿄 경제산업성(경산성) 회의실에서 열린 한·일 국장급 수출관리 정책 대화에서 이다 요이치(飯田陽一)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장(왼쪽 1번째)을 비롯한 일본 대표단과 인삿말하고 있다. 산업부 제공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분위기는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평행선은 좁히지 못했다.

한·일 양국이 16일 일본 도쿄 경제산업성(경산성) 회의실에서 제7차 한·일 국장급 수출관리 정책 대화를 열었다. 2016년 6월 이후 중단되며 일본의 대 한국 수출규제 강화의 빌미가 됐던 양국 전략물자 수출통제협의회가 3년 반 만에 다시 열린 것이다.

일본이 핵심 소재에 대한 대 한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당장 해제하는 등의 ‘깜짝 성과’는 없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우호적인 분위기로 협상 진전 여지도 남겼다. 한·일 모두 갈등 장기화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고 오는 26일 한·일 정상회담을 전후로 눈에 띄는 성과를 내리란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당분간 현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리란 전망이 아직은 우세하다. 이번 갈등의 시발점이 된 우리 대법원의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를 풀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양국 대표단 우호적 분위기 속 “빠른 시일 내 서울서 8차 대화”

산업통상자원부는 회의 직후 “양측은 양국 수출관리제도와 그 운용에 대해 다양한 개선상황을 업데이트하고 현안 해결을 위한 수출관리 정책 대화와 의사소통을 계속해 나갈 것에 합의했다”며 “가까운 시일 내 서울에서 제8차 수출관리정책대화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대표단을 맞이하는 일본 측 태도도 사뭇 달라졌다. 일본 당국은 수출규제 시행 직후인 지난 7월12일 경산성에서 열린 한·일 과장급 실무회의를 창고처럼 보이는 작은 회의실에서 열어 홀대 논란을 낳았다. 양국 대표단은 회의 시작 전 인사는커녕 서로 쳐다보지도 않는 냉랭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날 회의는 정상적인 회의실에서 열렸다. 일본 측 대표인이다 요이치(飯田陽一)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장은 우리 측 대표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국장을 웃으며 악수로 맞이했다.

회의시간도 예상보다 길어졌다. 원래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 동안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훌쩍 넘긴 저녁 8시를 넘겨서까지 논의를 이어갔다.

이호현(왼쪽)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국장이 16일 일본 도쿄 경제산업성(경산성) 회의실에서 열린 한·일 국장급 수출관리 정책 대화에서 이다 요이치(飯田陽一)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장의 안내로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산업부 제공
양국 모두 이번 사태 장기화에 부담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은 올 7~10월 3대 수출국인 대 한국 수출액이 1조6433억엔(약 17조5600억원)으로 전년보다 14.0% 줄었다. 우리의 대 일본 수출액 감소율(7.0%)의 두 배다. 우리의 경기 둔화로 일본산 소재·부품·장비 수요가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술·옷·자동차 등 소비재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일본산 불매운동 여파도 적지 않다.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일본에는 부담이다. 일본은 내년 방일 관광객 4000만명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던 한국인 방문객 급감으로 ‘빨간불’이 켜졌다.

우리도 갈등 장기화가 부담인 것은 마찬가지다. 아직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피해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 우려는 여전히 크다. 일본 정부가 만에 하나 핵심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수출 규제 칼을 꺼내 든다면 우리 산업계는 막대한 피해를 피할 수 없다. 정부와 산업계가 소재·부품·장비 자립화와 공급처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반도체 생산에 필수인 초고순도 불화수소 등 핵심 소재·부품·장비는 일본산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양국 시각차 여전…교착 장기화할수도

그러나 현 수준의 교착 상태가 장기화하리란 부정적 전망이 아직은 더 우세하다. 이번 갈등의 근본 원인인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뾰족한 해법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현실적인 피해를 본 일본도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동안 강력히 주장해 온 강제징용 문제 해결 없이 ‘양보’를 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일본이 당분간 수출규제는 유지하되 실제 개별 건 허가는 정상적으로 내 주는 현 상태가 길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는 24일 중국 청두에서 열릴 예정인 한·일 정상회담이 분수령이 될 수 있지만 이 역시 결과를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 구 교수는 “현 일본은 (양국 기업·국민의 기부금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주자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겠지만 우리 국민의 반대가 큰 안인 만큼 우리가 이를 선뜻 시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아직까진 정상회담 때의 성과도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지난 1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 약 10분 동안 환담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일본 외무상 간부의 발언을 인용해 강제징용 문제 해결의 중요성에 대해 양국이 인식을 같이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일본 수출규제의 조속 철회 필요성을 제기했다고 했을 뿐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우리 대법원 판결에 대해 우리가 어떤 조치를 하느냐에 따라 일본의 대응도 달라질 것”이라며 “우리 측의 뚜렷한 태도 변화가 없다면 획기적인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16일 일본 도쿄 경제산업성(경산성) 회의실에서 열린 한·일 국장급 수출관리 정책 대화 모습.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김형욱 (n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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