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5·18 계엄군 장교 "무장시민 없었다"
[경향신문] ㆍ전남도청 집단발포 당시 공수부대원 첫 법정 증언
ㆍ“자위권 차원 발포” 주장한 전두환 측 진술 뒤집어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를 했을 때 “무장한 시민들은 없었다”는 공수부대 장교의 법정 증언이 처음으로 나왔다. 그는 “5·18 초기 강경진압은 잘못이었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이 같은 진술은 “무장한 시민들이 공격해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가 이뤄졌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의 주장을 뒤집는 것이다.
지난 16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전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에 5·18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됐던 최모씨(65)가 증인으로 나왔다. 최씨는 5·18 때 11공수여단 61대대 2지역대 중대장으로 5월18일부터 5월27일까지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됐다. 5·18 때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전 전 대통령 측이 최씨를 증인으로 세운 것은 그를 통해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최씨는 5월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현장에 있었고 5월27일 도청과 전일빌딩 등에 대한 유혈진압작전에도 특공조로 참여했다.
최씨는 재판에서 전 전 대통령 변호인 신문에 “5월21일과 27일 작전 도중 전일빌딩을 향한 계엄군의 헬기 사격 등이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하지만 이어진 검찰의 증인신문에서 전 전 대통령 등 신군부의 주장을 뒤집는 증언을 했다.
검찰이 “1994년 군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을 때 ‘5월21일 도청 발포 직전 시민들이 무장한 것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맞느냐”고 묻자 최씨는 “네”라고 답했다. 당시 그의 발언은 공개되지 않았다. 경향신문이 확인한 당시 군 검찰 조사에서도 “(도청 앞에서 시민들과 대치했을 때) 맨 앞에 서 있었는데 그들이 칼빈이나 M1 소총으로 무장한 것을 본 사실이 없다”고 2차례 진술한 바 있다. 또 “도청에서 철수할 때까지 무장한 시위대를 보지 못했다”고도 했다. 시종일관 ‘무장한 시민들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공수부대가 5·18 초기 시민들을 강경진압한 사실도 시인했다. 최씨는 “지금까지 느끼는 한 가지는 초기 강경진압은 잘못됐다고 인정한다”고 증언했다. 이는 신군부의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진술이다. 전 전 대통령은 <전두환 회고록>에서 “시위대와 계엄군 간 충돌이 유혈사태로 번지며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시위대가 무장을 하게 된 데에서 찾을 수 있다”면서 “지시가 없더라도 당연히 ‘정당방위권’을 행사할 수 있어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전 전 대통령 등의 주장이 거짓임을 밝힌 의미 있는 진술”이라며 “계엄군이 5·18 초기 강경진압을 인정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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