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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내 생애 마지막 점

입력 2019. 12. 18. 20:56 수정 2019. 12. 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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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문예지 공모 낙선 이어지던 암흑기
동료 작가와 용하다는 점집 간 나
공모전에 곧 당선될 운세 나와
당선되는 바람에 점 보는 습관 생겨
또 다른 곳에선 맥락 없이 "무조건 탄탄대로~"
그날 밤 30대 이후 처음 야식 생각 없이 잘 자
일러스트 윤수훈

에세이를 연재한 지 어언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일간지 연재를 통해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이 나오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내 이름을 알리는 것이 첫 번째요, 두 번째는 다이어트 에세이를 쓰며 정말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강연이나 행사에 갔을 때 에세이를 통해 나를 알게 됐다고 하는 독자들이 왕왕 있는 것을 보면 첫 번째 목표는 어느 정도는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두 번째 (그러니까 진짜) 목표, 다이어트는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1년 새 더욱 체중이 불어 매일 최고 몸무게를 경신하고 있는 와중이다. 친구들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니 근육이 찐 게 분명하다고 위로를 해주지만…나도 눈이 있으니까….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점을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뜬금없이 왜 점? 비과학적이고도 비합리적인 선택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사실은 누구보다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다소 광신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모태신앙’을 강요당하며 자라난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모든 종교 활동을 거부하게 되었으며,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일종의 유물론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 그중에서도 사주를 보러 가게 된 것은 워낙 벼랑 끝에 몰리기 시작해서였다.

때는 2016년, 문예창작 대학원을 수료한 습작생이었던 나는 그야말로 패배감에 젖어 있는 상태였다. 2년 반 동안 필사의 노력으로 소설을 쓰고 50군데도 넘는 신춘문예와 문예지 공모전의 문을 두드렸으나 모두 낙선하고 말았다. 당초에 목표로 했던 등단 대신에 학자금 대출과 카드빚을 떠안은 채 대학원을 수료한 나는 빚을 갚기 위해 생각해본 적도 없던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고 있었고, 그때의 그 상태는 뭐랄까…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은 마음. 인생에 퇴로가 완벽히 차단된 기분. 답답해하는 나를 보던 친한 형이 자신의 지인이 철학원을 운영한다며, 사주라도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당시에도 지금도) 절친한 작가인 송지현에게 그 말을 전했고, 지현은 당장 그곳에 가자고 했다. 지현의 어머니는 사주 카페를 열 목적으로 긴 시간 동안 명리학을 공부해왔고, 가게 오픈 조건이 맞을 때를 기다려왔으나, 그런 때는 오지 않았고 이 때문에 아직까지도 준비만 계속하고 계시는 중이다. 지현 역시도 그런 영향으로 사주 명리학의 준전문가가 다 됐으며, 시장 조사(?)의 명목으로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다니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찾아간 철학원, 내 또래의 젊은 역술인과 지현이 식신이며 편관이며 겁재며,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전문가들만의 소통을 이어나갔다. 둘의 논의(?)가 끝난 후 내가 점을 보게 되었는데 역술인은 내가 7월 즈음에 아주 운이 좋다고 공모전에 도전해보라고 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했다.

“언제쯤 살을 뺄 수 있을까요?”

“그건……제가 아니라 병원에 물어보셔야…….”

옆에서 듣던 송지현은 숨도 쉬지 못하고 웃었다.

아무튼 그 이후 7월, 나는 정말로 공모전에 당선돼 등단이라는 것을 해버렸고, 나의 등단을 맞힌 철학원은 신세가 좋지 않은 습작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전해진다. 당연히 살은 여태까지 빠지지 않았고, 대신에 나는 연말마다 점을 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물론 재미로.

올해도 어김없이 기존에 다니던 철학원에 들러 신년 운세를 보았다. 특히 내년에는 에세이집 출간(그러니까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에세이를 묶은 책)과 이사를 가야 하는 문제가 있어 그 부분에 대해 꼼꼼히 물어보았다. 그리고 얼마간은 그 내용을 잊고 있었다. 얼마 뒤 홍대에 놀러 갔을 때, 친구를 따라 용하다는 사주 카페에 가게 되었는데, 이전에 내가 봤던 것과는 완벽히 다른 점괘를 내놓았다. 특히 이사에 대한 의견이 그러했다. 이사하기에 방향도, 시기도 다르게 말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찝찝했다. 애초에 그냥 재미 삼아 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주인데 어느새 내가 종교에 가까우리만치 맹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슬그머니 기분이 불편해졌다. (얼마간은 종교에 투신해 있는 엄마의 확신에 찬 표정도 떠올랐다.) 나를 사주의 세계로 이끈 송지현에게 이러한 혼란한 마음을 말하자 그녀가 명쾌한 해답을 내주었다. “한 번 더 사주를 보고 난 다음에 더 많은 표가 나온 곳으로 이사해. 그리고 다시는 사주 안 보면 되지.” 나는 팔랑귀답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탁 쳤다. 마침 송지현이 동료 소설가에게 아주 용하다는 철학원 정보를 알아 놨다며 (역시나 시장 조사 차원에서) 함께 가보자고 했다.

송지현과 나는 사주원정대를 결성해 그 유명한 철학원에 도착했다. 오래되고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안에는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소파에 앉아 목소리를 낮춘 채로 한참 동안 어떤 것들을 물어볼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이 역술인을 검증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했다. 30분 남짓 기다리고 나자 우리의 차례가 됐고 내가 먼저 점을 보러 들어갔다.

머리숱이 다소 소박한 원장님께서 아주 사무적인 말투로 나의 생년월시를 물어보셨다. 나의 정보를 들은 그는 책을 뒤지더니 흰 종이에 알 수 없는 글씨들을 계속 적어나갔다. 그리고 뚫어지게 종이를 바라보던 그는 단호히 결론을 내렸다.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쥘 탄탄대로 사주로군!”

“네?”

더 볼 것도 없다며 책을 덮어버린 그. 이대로 나가기는 뭔가 아쉬워 나는 2020년 운세가 어떠냐고 물었다.

“2020년에는 무조건 성공한다. 무엇을 하든 뜻하지 않게 대박을 치게 돼 있어.”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것 같다.

“뭐 하는 분이신데?”

“저요? 음, 작가요.”

“작가라고? 잘했네. 성격에 딱 맞는 직업을 구했어. 2020년 운세 정도면 신춘문예에 무조건 응모해야 해. 그런데 응모하면 무조건 된다고 보면 돼.”

“선생님 그런데요, 저…….”

“응?”

“제가……이미 신춘문예 같은 거에 당선됐거든요……더 응모할 데가 없는데…….”

“그럼 이제 영화 나와? 언제 나와? 책은?”

“영화 쪽은 아니고……내년에 에세이집을 내기는 하는데 그걸 내년 언제쯤 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아무 때나 내.”

“아무……때나요?”

“언제 내도 무조건 돼.”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이토록 모호한 점은 처음이었다. 이사를 어느 동네로 가면 좋을지 묻자 역시나 그 어떤 곳에 가도 상관이 없으며 부동산 투자를 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언제쯤 살을 뺄 수 있을지 물어도 내년에 모조리 다 빠진다고 하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대답도 않고 있는 나를 보며 원장님이 새로 종이를 빼 들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선분 두 개를 나란히 그리던 그는 구불구불한 선분의 끝에 32라는 숫자를 썼다. 그리고 이어서 갑자기 바깥으로 넓어지는 직선 두 개를 그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 구불구불한 길이 지금까지의 삶이라면, 앞으로의 인생은 10차선 도로야. 내년부터 42살, 52살……82살까지 재물과 명예가 쭉 뻗어 있어.”

연달아 그는 내게 배우자 복과 자식 복(?)이 있다며, 자제를 낳을 시에는 반드시 법관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약간 뭐라고요?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실은 기분이 좋았다. 문을 열고 나니 고작 15분 남짓의 시간이 지나 있었고 대기실 소파에 앉아있던 송지현이 웃고 있는 게 보였다.

“너 배우자랑 자식 복 얘기하는 거 들려서 웃겨 죽을 뻔했어.”

도통 방음이 되지 않는 곳이었다.

송지현 역시 나와 비슷한 시간 동안 점을 봤고, 역시나 나와 같은 그림을 받아든 채 밖으로 나왔다. 다른 점을 꼽자면 내게는 2020년부터 쭉 뻗어 나간 운세라고 했다면, 그녀에게는 2022년부터 재물이 쏟아진다고 했던 것 정도? 죽는 그날까지 돈 걱정 없이 살 것이라고 한 것은 같았다. 어쩌면 그가 우리의 행색(?)을 보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해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철학원 건물 근처, 3900원짜리 안주를 파는 실내 포차에 갔다. 맥주 네 잔을 시키면 감자튀김 한 그릇이 무료라고 해서, 계속 넉 잔을 시키면 끊임없이 감자튀김을 무료로 줄까? 만약에 그게 안 된다면 계산을 한 뒤 다른 테이블로 옮겨서 메뉴를 시키면 될까 같은 궁상맞은 논의를 하다 헤어졌다.

집에 오는 길, 나는 결심했다. 사주팔자 다 맞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기분 좋은 말을 듣기 위해 가는 것이니 이제부터 내 인생은 탄탄대로라고. 더불어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점은 없다고. 그러니까 오늘 나는 내 인생 마지막 점을 본 것이라고. 나란 인간이 얼마나 얄팍한지, 그렇게 다짐을 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침대에 누워도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습관처럼 치받아 오르던 식욕조차 들지 않았다. 그날 나는 삼십대가 된 이후로 거의 처음으로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박상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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