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 칼럼] '문재인의 경험 못한 나라' 종착지는 어디인가

박보균 입력 2019. 12. 19. 00:33 수정 2019. 12. 19.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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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묻는다, 문 대통령 답해야
국가 개조의 운동권적 실험은
민심 불안과 불길함 퍼뜨려
DJ·노무현 유산에 대한 거부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문재인 시대는 딴판이다. 다름은 헌정 궤도에서 과격한 이탈이다. 그것은 역대 정권과의 단순 차별화가 아니다. ‘문 대통령과 권력 이너 서클’은 대담하다. 그들의 국정 설계는 세상 뒤집기다. 이너 서클의 중심은 386 좌파 출신이다. 그들의 국가 개조는 운동권적 실험이다.

문재인 정권은 과거 진보 정부들과도 다르다. DJ(김대중)와 노무현 대통령은 장사꾼 논리에 충실했다. IMF 외환위기 극복 때다. DJ의 개혁은 시장경제의 건전성 다지기였다. 한·미 FTA 협상 때다. 노무현은 시장의 개방과 실용을 외쳤다.

지금은 장사꾼의 실사구시가 밀려났다. 국가 개입의 좌파경제 원리가 들어섰다. 낡은 사회주의 정책이 소환됐다. 반(反)시장적 변종들이 득세한다. 소득주도 성장은 고수된다. 한국 경제는 혼란과 후퇴다. 민생 현장은 울분이다. 기업인은 좌절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시각은 고집이다. “우리 경제에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16일 발언).” 그 말은 경제 질서 변경의 집념이다.

DJ와 노무현은 남북문제에 집착했다. 그때 국가 정체성 관리에 논란은 있었다. 하지만 지켜야 할 것은 지켜졌다. 문 정권의 대북 자세는 판이하다. 거기에는 비굴함이 넘친다. 나라의 정체성은 상처투성이다. 그런 경제·남북 상황은 민심 불안과 불길함을 퍼뜨린다. 그런 장면은 DJ·노무현 유산에 대한 거부이고 탈선이다.

문 정권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문 대통령 말 속에 단서는 있다. 그것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만들기”다. 그는 ‘그런 나라’의 구체적인 형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정의·평등의 어휘에 머무른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그 모습을 ‘미지수(未知數) 정권’으로 지적한다. 그는 “임기 절반이 지났어도 문 대통령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의 지향·종착지가 불분명하다.” 모호함은 전략적인 뻔뻔함이다. 그것은 좌파적 후안흑심(厚顔黑心)이다

문 정권의 욕망은 도발적이다. 그 속에 장기 집권, 권력 향유, 체제 변혁의 집념이 얽혀 있다. 그것의 실천은 대부분 은밀하게 이뤄졌다. 이제 그 작업은 노출로 바뀌었다. 조국 사태가 분기점이다. 김병준 전 한국당 비대위원장(노무현 청와대의 정책실장)은 이렇게 간파한다. “조국 사태로 정의·공정은 위선·탐욕으로 들통났다. 그러자 문 정권은 가면을 벗어던지고 전체주의로 가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 의지는 국회에서 실감난다. 연동형 선거법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은 욕망 실현의 발판이다. ‘4+1(네 개 군소정당+민주당)’ 협의체는 공개적인 야합이다. 집권 민주당의 수법은 교묘한 변칙이다. 좌파 정당과 호남 정당에 권력의 일부를 나눠준다. 그것은 인사(유리한 선거법)와 돈(예산 나눠먹기)풀기다.

‘경험 못한 나라 만들기’는 동시다발적이다. 작업의 출발은 대중 동원이다. 무대는 직접민주주의와 광장이다. 적과 동지 나누기는 상투적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진보파가 이해하는 직접민주주의는 전체주의와 동일한 정치체제”라고 했다. 적개심은 악성 진화한다. ‘정치적 반달리즘’도 표출된다. 386 집권세력에게 보수의 성취·기억, 역사적 인물은 타파 대상이다. 그 속에 이승만·박정희도 있다.

통계지표의 기묘한 왜곡은 계속된다. 고용지표의 아전인수 해석이 뒤따른다. 그들은 주술(呪術)의 반복 효과를 믿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관료들은 거기에 앞장선다. 다수 국민은 그런 장면에서 ‘영혼 없는 공무원’의 초라함을 본다. 규제는 권력이다. 그것은 비장의 통치 무기다. 그것으로 기업과 사람을 압박·통제한다. 문 정권의 부동산 대책은 강경하다. 규제가 쏟아진다. 세금 거두기도 총력이다. 집 한 채 가져도 세금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세금의 속성은 저항이다. 권력의 세금 폭격에 민심은 분노로 맞선다.

문 정권은 그런 상황을 상쇄하려 한다. 공짜 복지의 심리를 퍼뜨린다. 현금복지 대상 가구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그것은 국가 개입 경제와 포풀리즘의 결합이다. 그 의도 속에 정부 의존형 사회 만들기가 있다. 하지만 인간 심리는 이중적이다. 공짜는 좋다. 과도한 세금은 참지 못한다.

국정의 몽타주가 나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묘사됐다. 다수 국민의 작품이다. ‘문 정권 사람들’의 말과 정책이 포착됐다. 몽타주는 그 속에서 목격과 기억, 분석으로 작성됐다. 그 그림은 충격적이다. 국가 개입 경제, 좌파 사회주의, 역사관 혁파로 차 있다. 해외 시각도 그런 쪽이다. 블룸버그통신 칼럼은 ‘문재인 정부는 사회주의자(Socialist)정부’라고 했다.

한국인의 학습능력은 탁월하다. 광화문 광장의 경험은 보수우파에 투쟁력을 주입했다. 한국 현대사의 작동 요소는 쟁취와 투혼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투쟁의 산물이다. 그것은 한국인 삶의 족적에 새겨져 있다. 대다수 국민은 묻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정체가 무엇이냐. 종착지는 어디인가.” 문 대통령은 대답해야 한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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