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현장에서] "그게 왜 문제냐" 시장 무시하다 꼬인 부동산 대책

정용환 2019. 12. 1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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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찾은 시민이 인근 아파트 단지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당장 10억원으로 15억원 초과 급지 갈아타는 방법." "앞으로 15억원 초과 아파트 전세 낀 매물은 매우 품귀해집니다."

지난 16일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 직후 한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는 새 대출규제의 구멍 활용법에 대한 글이 여러 건 올라왔다. 시가 15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전세 끼고 구매(갭투자)하면 금지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금융위가 시가 15억원 이상 초고가 아파트에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면서 전세금 반환 목적의 대출은 허용했기 때문이다.

17일 금융위원회에 이 사실을 아는지 물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알고 있는데 그게 왜 문제냐"고 되물었다. 대출을 틀어막아 투기 수요를 잡겠다는 정책 목표에 반하는 허점이니 보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재차 묻자, 그는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봐 일부러 열어뒀다"고 말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3시간여 지났을 무렵, 금융위는 돌연 보도자료를 냈다. '초고가(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해 임차보증금 반환목적 주담대도 금지한다'는 자료였다. 같은 날 밤 10시엔 언론 지적에 따라 정책을 보완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또다시 배포했다.

결과적으로 대출규제는 애초의 취지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의 감이 너무 떨어졌다"며 "시장을 우습게 본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달 4일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 복도로 직원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대출규제 결정 과정에서도 이 조항을 두고 금융당국 내에서 여러 의견이 오갔다고 한다. 내부에서도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 허용이 루프홀(규제 공백)이 될 거라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규제가 너무 강하면 민원이 빗발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숨통을 틔워주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금융당국조차 이번 대출규제가 지나치다는 점을 의식했던 셈이다.

무리하게 추진된 정책은 위헌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정희찬 안국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번 대책 핵심인 15억 초과 아파트 대출 금지 규제가 '헌법상 행복추구권·평등권·재산권·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은성수 금융위원장, 홍 부총리, 김현미 국토부장관, 김현준 국세청장 [뉴시스]
문제는 이 정책이 과연 시장을 움직여 집값 안정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느냐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에게 "수도권 내 2채 이상 집을 보유한 이는 이른 시일 안에 1채를 제외한 나머지를 처분하라"고 말하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청와대의 원칙을)정부 고위 공직자로 확산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지원사격에 나선 것을 보면서 의구심이 든다. 정부 대책이 시장은커녕 고위공무원들조차 유인하지 못해 강제로 등 떠미는 모양새라서다.

12·16 대책 발표 브리핑에서 한 기자가 홍 부총리에게 "이번 대책으로도 집값 상승을 막지 못하면 어떡할 거냐"고 물었다. 홍 부총리는 "이번에도 (집값 상승이) 계속된다면 내년 상반기에 더 강력한 걸 마련할 예정"이라고 힘줘 답했다. 정부의 의지를 볼 때 시장을 때려잡겠다는 부동산 대책은 되돌릴 수 없는'낙장불입'으로 보인다. 과연 정부는 시장을 꺾을 수 있을까.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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