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물된 공장, 세 집 건너 빈집..농촌 아닌 인천·부산의 현실

양길성/서민준/노경목 입력 2019. 12. 19. 17:34 수정 2019. 12. 20.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0 인구절벽 쇼크 <1부>
(2) 지방 소멸 시대 닥친다
저출산에 문 닫는 학교
지역산업 붕괴→인구 엑소더스
"이러다 노인과 바다만 남을듯"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빈집 밀집지역. 10년 전 재개발 구역(용현3구역)으로 지정됐으나 지난 10월 사업성 부족 등의 이유로 해제됐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2년 넘게 방치된 공장 부지, 폐교를 앞둔 중학교, 20년째 문을 걸어 잠근 산부인과 건물…. 농촌 얘기가 아니다. 서울과 맞닿은 인천, 대한민국 ‘넘버2’ 도시 부산, 호남의 거점 익산과 군산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이다. 부산 중심가였던 중구와 동구, 영도구의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은 25%를 넘어섰다. 인천 원도심의 중구 북성동 등 상당수 지역이 인구 감소세로 돌아섰다. 한때 전북에서 땅값과 임대료가 가장 높았던 익산 중앙동은 네 집 건너 한 집이 1년 이상 비어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부른 ‘지방 소멸’이 점차 ‘도심 소멸’로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이대로라면 부산 옛 도심에는 ‘노인과 바다’만 남을 것”(이재정 부산복지개발원 고령사회연구부장)이란 전망마저 나올 정도다.
붕괴되는 의료·교육
한때 전북에서 가장 땅값이 비쌌던 익산역 앞에는 산부인과 건물이 20년간 비어 있는 상태로 방치돼 있다. 10년 전 5억원에 팔렸던 건물 가격은 최근 3억원 안팎까지 떨어졌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도심 소멸의 징후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은 학교다. 학생 수 감소는 그 지역을 떠받칠 미래인구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부산 동구의 금성중학교가 그렇다. 5층짜리 건물에서 불이 켜진 곳은 딱 세 군데(3학년 3개 학급)다. 내년 2월 이들이 졸업하면 학교는 문을 닫는다. 전체 학생 수가 69명인 인근 좌성초교도 폐교 불안에 떨고 있다. 1980년대 이 학교 정원은 2000명에 달했다.

인천 송림2동도 비슷하다. 전체 주민 3287명 중 초등학교 취학연령 인구가 39명이다. 78년 동안 인천 동구를 지켜온 박문여중은 학생 수 감소를 이기지 못하고 2014년 송도로 이사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니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온전할 리 없다. 부산 영도구에 있는 소아과는 2009년 6개에서 현재 3개로 반토막이 됐다. 같은 기간 산부인과는 8개에서 5개로 줄어들었다. 손병득 인천시 주거관리팀장은 “인구 감소로 인해 도시 인프라 핵심인 교육과 의료가 밖으로 빠져나가고, 인프라 소멸이 슬럼화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저성장·지역산업 붕괴가 원인

이들 도심지역을 소멸 위기로 내몬 건 ‘지역산업 쇠퇴’였다. 부산 원도심은 조선업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였던 거청의 김청린 대표는 “한때 500여 명이던 직원이 7명만 남았다”고 했다.

인천 동구는 일진전기와 동일방직이 조업을 중단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각각 1000명에 달했던 근로자가 떠나면서 인구 감소가 본격화됐다. 2016년 동구 남구 등 원도심을 오가던 버스 노선은 9개 줄었다. 출퇴근 수요가 급감해서다.

군산과 익산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넘게 이어지는 산업공동화가 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인구 감소의 여파는 지역 소비시장에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좌천동(부산 동구) 가구거리가 대표적이다. 강선호 에이스침대 좌천동점 사장은 “젊은 사람이 줄어들면서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혼수 수요가 확 줄었다”며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부산 영도점의 1일 매출은 한진중공업 좌초 여파로 2005년 1억5000만원에서 최근 7000만~800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 판매직원은 “아이들이 줄면서 장난감과 학용품은 물론 크리스마스용품까지 잘 안 팔린다”고 설명했다.
늘어난 빈집, 멀어진 도심 재생
부산 영도구 봉래동5가의 빈집 밀집지역. 골목길 세 가구 중 한 가구가 녹슨 자물쇠로 잠겨 있다. 지난달에는 59세 남성 한 명이 홀로 사망해 열흘 만에 경찰에게 발견됐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줄어드는 인구는 빈집 증가로 이어진다. 주택은 노후화되고, 재개발 사업은 주저앉는다. 인천시는 212개에 달했던 재개발 지정 지역 중 73개를 풀었다. 주변 지역이 노후화되면서 재개발 아파트 분양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는 삼성공인의 김성덕 실장은 “토지 지분 기준으로 주변 주택 가격이 3.3㎡당 400만원 정도로 10년 전에 비해 반토막이 됐다”고 말했다.

전북 군산에서는 도심에 인접한 수송동의 단독주택 밀집지역 150여 가구 중 50가구가 버려져 있다. 2009년 금융위기 여파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개발을 포기한 이후 방치됐다. 군산시청 관계자는 “들어오는 사람은 없고 나가는 사람만 늘고 있다”고 했다.

부산 영도구에서는 재개발 지역 다섯 곳 가운데 세 곳이 사업성 미비 등의 이유로 해제됐다. 이들 지역의 빈집 비율은 3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원도심 리모델링 등 저성장 시대에 맞춘 새로운 도시 계획 패러다임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부산=양길성·서민준 기자/익산·군산=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네이버에서 한국경제 뉴스를 받아보세요
한경닷컴 바로가기모바일한경 구독신청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