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도떼기 법정'..검사는 왜 판사 향해 소리 질렀나

박진석 입력 2019. 12. 20. 00:05 수정 2019. 12. 20.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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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재판정서 전례없는 충돌
사법농단 수사 뒤 권위 흔들려
"사법부의 서글픈 현주소 보여줘"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을 보려는 방청객들이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줄 서 있다. [뉴스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송인권) 주재의 정경심 동양대 교수 재판에서 벌어진 법원·검찰 대립은 신성한 법정에서 벌어진 상황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고강도였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농단 사건과 이념 지향 판결 논란 등을 거치면서 추락한 사법부의 권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원은 사법 시스템의 정점에 있다. 헌법 101조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검찰이나 변호인이 법원을 비판하는 일이 드물지는 않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장외 논전이다. 이날처럼 법정에서 검찰이 재판부의 권위에 정면 도전하는 듯한 양태를 보인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표면적으로는 정 교수 재판 과정에서 누적돼 온 양측의 감정 대립이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소시효에 몰려 정 교수를 일단 기소했던 검찰은 이후 정 교수 딸의 표창장 조작일 등 세부적인 팩트들을 수정한 뒤 재판부에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재판부가 정 교수에 대한 무죄 예단을 갖고 재판을 진행 중이라고 의심했고, 기존 공소장에 대한 공소 취소 없이 세부 사실들을 수정해 추가 기소하면서 맞받아쳤다. 기존 공소장을 취소하지 않은 건 무죄 판결을 각오하고 항소해 1심 재판부의 판단이 옳지 않다는 상급심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의도 때문이다.

양측의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열린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작심한 듯 도발했고, 재판부도 정면으로 맞받아치면서 볼썽사나운 그림이 연출됐다. 한 재판 참관인이 “도떼기시장에 있는 것 같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정경심
일단 검찰의 항명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한 법원 관계자는 “악성 민원인도 그렇게 하진 않는다”고 검찰을 비판했다. 의정부지방법원장을 지냈던 이동명 변호사도 “검찰이 지나치게 과잉 대응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사법부의 서글픈 현주소를 보여준 사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법부가 검찰의 ‘공개 항명’을 자초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앞서 사법농단 사건으로 50여 명의 판사가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고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사법부의 권위는 크게 흔들렸다. 사법농단 사건 이후 출범한 ‘김명수 대법원’도 진보 성향 법관들의 요직 배치 등을 통해 이념 지향적 판결 및 결정을 주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를 지낸 이충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명수 대법원은 능력이 아니라 이념적인 측면을 더 중시해 인사를 단행했고, 이것이 사법부 신뢰 추락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의 방희선 변호사는 “들쑥날쑥 편차가 심한 판결이 많아지는 건 사회가 불안하고 법치가 미약해질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판사들이 사회적 시류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송 부장판사도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이날 재판 서두에 “재판부의 예단이나 중립성에 대해 지적한 부분은 그런 지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문제다. 재판부 중립에 대해 다시 되돌아볼 것”이라고 말했지만, 검찰 표현대로 ‘전대미문의 재판’을 겪어야 했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부가 권위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방 변호사는 “‘판사들이 소신껏 판결하면 된다’며 방치할 것이 아니라 판사 세미나 등을 통해 깊이 있는 토론을 한 뒤 여기서 모인 의견을 ‘가이드라인’처럼 일선에 배포하는 등 판사들을 교육해야 한다”며 “이념이나 성향이 아니라 법리에 철저히 복종하는 판사들이 많아져야 법원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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