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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폐지줍기 月20만원 준다 하니.. 거리 나선 노인 2년새 5배

이해인 기자 입력 2019.12.20. 03:11 수정 2019.12.2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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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일자리 사업에 포함.. 서울시에 올해 정부 예산 32억 들어가
"폐지수거, 위험하고 벌이적은데 일자리 사업에 넣는건 곤란" 지적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사는 박향자(가명·78)씨는 올해 초부터 남편(86)과 함께 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주우러 다닌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 중 폐지 수거 사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시작했다. 도봉구에서는 '손수레 어르신 사업단'으로 부른다. 폐지는 ㎏당 40원이다. 박씨는 "한 달에 8만원어치(폐지 기준 2000㎏)를 주우면 나라에서 20만원을 더해준다"며 "남편과 함께 월 40만원씩 받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세금을 들여 노인 일자리를 늘리면서 폐지 수거 노인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정부의 일자리 통계에 '취업자'로 포함된다. 서울의 경우 지난 2017년 폐지 수거 일자리 참여 노인은 281명이었으나 올해는 11월까지 1526명으로 5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이 사업에 들어간 정부 예산도 5억7800만원에서 31억8100만원으로 6배가량 증가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존에 폐지를 줍던 노인을 일자리 통계에 넣으면서 소득을 보전해주자는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폐지 수거를 일자리라며 지원해주자 박씨처럼 지원금을 받기 위해 나오는 사람도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봉구에서 6년째 고물상을 운영하는 전우곤 대표는 "요즘에는 겉으로 보기에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 노인들도 종종 폐지를 팔러 나온다"며 "정부에서 20만원을 보조해주니 용돈이라도 벌겠다고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국 지자체를 지원해 노인 일자리를 대폭 늘리고 있다. 지난 2017년 5200억원을 들여 50만 개를 만들었고 내년에는 1조2000억원을 들여 74만 개를 만든다. 정부 예산을 받는 각 지자체는 대한노인회나 시니어클럽 같은 사업 수행기관을 통해 일자리 참여자를 모집한다. 이 일자리 중에 폐지 수거도 포함된다. 이들은 '위풍당당 에코사업단'(서울 노원구) '행복마차'(서울 강동구) '희망그린자원'(경기도 안산시) '손수레 금수레'(광주광역시) '시니어재활용'(전북 전주시) '모아모아 고물상'(충북 충주시) 등의 이름으로 활동한다.

지원 방식은 지자체마다 다르다. 광주광역시는 한 달 기준 10일 이상 폐지를 주우면 매월 20만원을 지원한다. 서울 광진구는 한 달에 4만원 이상 폐지를 모으면 일정 시간 일했다고 간주하고 20만원을 준다. 송파구는 폐지 수거량에 따라 최소 3만5000원부터 최대 18만원까지 차등 지원한다. 예산은 국비 30%, 시비와 구비가 각 35%씩 들어간다.

서울시가 지난 6월 각 구의 대표 고물상 560여 곳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 정기적으로 폐지를 거래하는 노인은 2017년 2425명에서 517명 늘어난 2942명으로 파악됐다.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도봉구 시니어클럽 관계자는 "폐지를 줍지 않다가 사업을 알고 나오는 분들이 적지 않다"며 "일일이 수거하기 힘드니 파지(破紙)가 주기적으로 나오는 공장에서 일정량만 수거하고, 실제 벌이는 지원금으로 충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종로구 시니어클럽 관계자도 "기존에 폐지를 줍지 않던 어르신들도 지원금 때문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빈곤 노인이 많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지만 위험하고 소득이 낮은 폐지 수거를 정부가 일자리라고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오히려 기존 폐지 노인들을 교육해 다른 양질의 일자리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일자리 유형이 9000개가 넘어 세부적으로 들여다보지 못했다"며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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