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모병원 공약→좌초되면 좋음'.. '선거개입 의혹' 靑 정조준

김건호 입력 2019. 12. 2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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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기재부·KDI 압수수색 / 송철호 공공병원 공약 관련 / 청와대 지원 여부 확인 나서 / 예비타당성 조사 자료 등 확보 / 선거 보름여 앞두고 예타 불합격 통보 / 송병기 수첩엔 '산재병원→좌초' 적혀 / 송시장 與 단독 공천과정도 석연찮아 /임 前 최고위원이 밝힌 2017년 모임서 / 宋 당선 위한 사전정지작업 가능성 / 기재부 "예타발표 정치일정과 무관"
압수수색 자료 옮기는 검찰 검찰이 2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내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국 타당성심사과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자료를 옮기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산재병원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과정을 들여다보기 위해 이날 기재부와 함께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청와대와 경찰의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을 살펴보고 있는 검찰이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청와대를 정조준했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송철호 울산시장의 공공병원 공약 수립 등과 관련해 청와대의 지원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는 20일 오전 9시30분 정부세종청사 내 기재부 재정관리국 타당성심사과와 KDI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정부의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관련 업무자료와 PC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송 시장이 지난해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청와대의 도움으로 산업재해 특화병원 건립사업에 대한 정부의 예타 결과를 미리 인지했는지 확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업무수첩에서 청와대와 송 시장 측이 2017년 가을부터 공공병원 공약과 관련해 수차례 논의한 단서를 확보했다.
지방선거 당시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맞붙었던 김기현 전 울산시장과 송 시장은 각각 산재병원과 공공병원 건립 공약을 내걸고 경쟁했다. 하지만 선거 보름 전 정부가 산재병원에 대해 예타 불합격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 전 시장의 공약은 무산됐다. 선거 이후 정부는 다시 산재병원 건립으로 방향을 틀었고 송 시장의 공공병원 공약은 산재 전문 공공병원으로 이름이 바뀌고 규모가 줄어든 상태에서 올해 1월 예타 면제 사업으로 선정됐다. 지난달 KDI의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도 완료됐다. 송 시장의 공약 사항을 두고 일찌감치 청와대와 여권의 교감이 있었고 경쟁자였던 김 전 시장의 공약 사업에는 불이익을 주려고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상황이다.
송철호 울산시장. 연합뉴스
검찰은 당시 송 시장 측과 청와대가 사전 조율을 통해 김 전 시장의 산재병원 공약에 찬물을 끼얹는 등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자료에 대한 분석이 끝나는 대로 송 시장 측과 접촉한 청와대 참모진과 기재부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또한 검찰은 앞서 세 차례 소환조사한 송 부시장을 이날 울산지검 조사실로 다시 불러 청와대 관계자들과 접촉한 구체적 경위 등을 집중추궁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울산시장 선거개입사건' 수사와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김 전 시장은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재부와 KDI가 예비타당성 조사와 관련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라며 “예비 진행과 최종 탈락은 매우 작위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을 보면 산재 모병원을 좌초시키는 게 좋다는 내부 전략을 세운 것으로 돼 있다”며 “의료시설 확충 이슈를 좌초시켜 선거에 이용하겠다는 것은 잘못됐고, 분노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중앙지검 검사와 수사관들이 20일 정부세종청사 내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국 타당성심사과에서 울산 산업재해 특화병원 건립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 金 산재병원 백지화 경위 추적 … ‘송병기 수첩’ 검증한다
일명 ‘김기현 첩보’로 불거진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이 ‘불법 선거개입’ 의혹 사건으로 번지면서 판이 확 커졌다. 관련자들도 거물급이다. 이 사건 핵심 참고인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더불어민주당 임동호 전 최고위원은 자신의 울산시장 선거 불출마를 전제로 청와대 임종석 전 비서실장, 한병도 전 정무수석 등과 일종의 ‘논공행상’ 성격의 논의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모두 현 정권 핵심 실세다. 청와대와 정부 등 권력 핵심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절친’인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 전 울산시장은 6.13 선거 전 송철호 울산시장 측이 청와대와 공약을 논의했다고 주장해왔다. 뉴스1
◆경쟁후보 공약 무산에 영향력 행사?

검찰이 20일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것은 울산시장선거에서 송 시장의 경쟁자였던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공약사업이 무산되는 데 청와대 등 외부 입김이 작용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공병원 유치는 의료환경 개선을 위한 울산시의 숙원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박근혜정부 때부터 논의됐지만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 때문에 김 전 시장도 재선에 도전하며 ‘산재 모(母)병원’ 설립을 추진했으나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통과하지 못해 실패했다. 기재부는 6·13 지방선거를 보름여 앞둔 지난해 5월28일 김 전 시장의 산재 모병원에 대해 예타 불합격을 통보했다. 그러나 선거 후 상황은 뒤바뀌었다. 번번이 좌절되던 공공병원 사업이 송 시장 당선 후 현실화했다. 지난 1월 울산시가 산재 전문 공공병원을 유치했다. 울산 울주군 굴화 공공주택지구에 2025년 개원을 목표로 사업비 2059억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사업이다.
20일 오후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점심 식사를 마친 뒤 다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울산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의혹이 불거지는 이유는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업무수첩’에 선거 전부터 김 전 시장과 송 시장 공약이 언급돼 있기 때문이다. 송 부시장의 2017년 10월10일 업무수첩엔 ‘단체장 후보 출마 시, 공공병원(공약), 산재 모병원→좌초되면 좋음’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김 전 시장 공약인 산재 모병원은 수첩에 적힌 대로 ‘좌초됐다’는 점에서 정부 영향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만하다.
앞서 송 시장 측은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 송 부시장, 정몽주 울산시 정무특별보좌관과 민간인 신분으로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현 자치발전비서관실) 소속 장모 전 선임행정관을 만나 선거 공약 사항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철호 울산시장. 연합뉴스
기재부는 산재 모병원의 예타 불합격 등에 정치적 고려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2013년 11월 예타 사업으로 선정됐고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와 울산시가 여러 차례 사업계획을 변경해 다른 사업에 비해 오래 걸렸다”며 “발표 시점에 정치 일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불출마하고 고베 총영사 가시라”

송 시장이 민주당 후보로 단독 공천을 받은 과정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동호 더불어민주당 전 최고위원이 19일 오후 울산지검 앞에서 검찰 조사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임 전 최고위원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해 2월23일 한 전 수석을 청와대에서 만난 일화를 공개했다. 그 내용은 한 전 수석이 임 전 최고위원에게 불출마를 권유하며 ‘다른 자리’를 거론했고 임 전 최고위원이 오사카 총영사직을 요구하자 한 전 수석이 고베 총영사직을 역제안했다는 것이다. 또 임 전 비서실장이 임 전 최고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9일 울산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최고위원이 될 때부터 총영사 얘기는 있었고 2017년 7월쯤 임 실장, 한 수석,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과 사적으로 만날 때 그런 얘기가 오갔다”고 설명했다.
임 전 최고위원이 말한 2017년 7월 모임은 사진으로도 확인된다. 그가 2017년 12월11일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은 인물 일부가 반소매 셔츠 차림이어서 여름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임 전 실장, 정원오 성동구청장, 박완주 국회의원, 김 지사, 복기왕 당시 아산시장(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이 사진에 등장한다. 일각에선 이 멤버들이 임 전 최고위원 불출마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벌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청와대의 6.13.선거 민주당 공천 개입 의혹과 관련해 임종석 전 비서실장, 조국 전 민정수석, 한병도 전 정무수석, 이호철 전 노무현 정부 민정수석, 송철호 울산시장 등을 공직선거법위반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 혐의로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효상, 주광덕, 전희경, 곽상도, 정점식 의원. 뉴시스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에도 관련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 시장의 경선 경쟁자들 이름과 각종 공공기관, 금융단체도 병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시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당내 경선 시 송 시장이 임 전 최고위원보다 불리하다는 취지의 내용이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임 전 최고위원은 전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 중 일부를 처음 접했다고 밝힌 뒤 “‘임동호’ 이름이 40번 넘게 등장했다”, “청와대와 중앙당이 힘을 합쳐서 임동호를 제거해야 한다는 표현이 적혀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당초 울산시장 후보를 경선으로 결정하려 했으나 지난해 4월 갑자기 송 시장을 단독 후보로 공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관련 내용이 사실이면 ‘누군가’ 당내 경선에서 불리한 송 시장을 위해 경쟁자들에게 자리를 제안해 하차시킨 게 된다.

여러 의혹과 관련, 임 전 최고위원은 이날 공식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지만 취소했다.

김건호·배민영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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