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허풍인가 진짜인가?..'비례한국당'의 파괴력은?

조태흠 2019. 12. 2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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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형 비례제'가 반영된 선거법 개정을 추진 중인 4+1(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대안신당). 이를 저지하려는 자유한국당.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국회 내 정치세력의 구도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현재 구도로는 '숫자' 싸움에서 밀리는 한국당,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되면 위성정당인 '비례 한국당'(가칭)을 창당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연동형 비례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해서 각 정당이 얻은 지지에 가깝게 의석수를 얻는 형식으로 설계됩니다. 유권자로부터 10%의 지지를 얻는 정당이 있다면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해 10% 안팎의 의석을 얻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데 위성정당 얘기는, 원 정당은 지역구 후보만 내서 당선을 시키고 위성정당은 비례대표 후보만 내서 연동형 비례로만 10% 지지율에 해당하는 비례의석을 얻겠다는 겁니다. 이후 두 정당이 합당하면 [지역구 의석+연동형 비례]로 10% 지지율 몫의 의석을 얻어야 하는 정당이, 결과적으로는 [지역구 의석+10% 지지율 몫의 연동형 비례]의 의석을 얻게 되는 겁니다.

물론 이와 같은 사례는 단순한 '예시'일 뿐이기 때문에, 위성정당이 만들어질 경우 유권자의 선택 등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같은 방법 자체가 연동형 비례제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비례한국당TF 구성..실무적인 준비 하고 있다"

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그제(19일) "좌파세력이 연동형 비례제를 밀어붙이면 우리도 '비례한국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서 언급했습니다.

다음날(20일),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선거제도가 아주 나쁜 환경이 된다면 거기 맞춰서 준비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당내에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고요.

민주당 등 4+1이 선거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나온 이 같은 발언은 4+1을 흔들기 위한 '엄포용'으로 해석돼 왔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말'이 아니라 실제로 진지하게 '비례 한국당' 창당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당은 원영섭 당 조직부총장을 팀장으로 하는 '비례 한국당 TF 팀'을 꾸리고 기본적인 창당 계획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TF가 언제 꾸려졌는지 등 세부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면서도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누가 비례 한국당으로 출마할지 등에 대해 아이디어 차원의 여러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매우 구체적인 부분까지 거론돼 불출마자나 다선 의원을 비례 한국당으로 보내는 것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다른 한국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하거나 검토한 적은 전혀 없다. 의원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얘기하는 수준"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창당할지도 모르는 '비례 한국당'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기 위해 구체적 당명까지 당내에서 검토되고 있는 만큼, 한국당 입장에서는 "최악인 선거법 개정안을 막을 수 없다면, 차악의 방안이라도 필요하다"는 인식을 견지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헌법적 가치 무시..표의 등가성 훼손"

4+1 선거법 개정을 추진 중인 민주당은 '비례 한국당' 움직임을 두고 "헌법적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은 "'비례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제 도입의 이유가 된 표의 등가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국회 의석 배분 비율을 국민의 실질적 의사와 더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은 다만, 한국당의 이 같은 움직임을 4+1 협상의 '재료'로 활용할 뜻도 동시에 내비쳤습니다.

연동형 비례의석이 많을수록 '위성정당'의 파괴력도 커집니다. 동시에 연동형 비례의석이 많으면 군소정당에, 적으면 민주당 같은 거대정당에 유리합니다. 민주당 입장에선, 한국당의 위성정당 시도를 막기 위해서 연동형 비례의석을 제한하자(줄이자), 설득력 있는 논리가 됩니다.

4+1은 다음 총선에서 전체 비례의석을 50석으로 하고 이 가운데 30석만 연동형 비례의석으로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물론 추가 협상 과정에서 연동형 의석이 더 늘 수도, 줄어들 수도 있는데, 한국당의 위성정당 발언 때문에 늘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비례 한국당'은 허풍..영향 제한적"

'비례 한국당' 시도 자체가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말 그대로 '허풍'이라는 겁니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중앙선관위의 해석을 받았다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한국당이 '비례 한국당'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등록을 전면 포기해야 하고, 그렇다 해도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은 제한적"이라는 겁니다.


현행 공직선거법 88조는 후보자나 선거사무장, 사무원, 연설원, 대담 토론자 등이 다른 정당이나 선거구가 같거나 겹치는 다른 후보를 위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낸다면, 한국당의 비례대표 후보나 지역구 후보, 선거운동 관계자는 '비례 한국당'의 비례대표 후보 당선을 위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선관위가 해석했다고 합니다. 한국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따로 등록하면, '지역구 투표는 2번, 정당투표는 △번(비례 한국당)'과 같은 선거유세를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한국당이 지역구 후보만 내고 비례대표 후보는 '비례 한국당'에 몰아주기 위해 아예 등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선관위는 이에 대해 "선례가 없어 당장 답하기는 어렵지만, 지역구 후보자나 선거운동 관계자가 아닌, 해당 정당의 대표 등 간부가 다른 정당의 선거운동을 할 수 있을지는 세부적 법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이 의원은 "선관위가 선거운동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더라도, 선거운동이 가능한 사람은 지역구 후보나 지역 선거운동 관계자가 아닌 당 간부에 한할 수밖에 없어, 황교안 대표 등 주요 간부들은 지역구 후보 등록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비례 한국당'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한국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일체 출마시키지 않을 경우, 현재 4+1이 합의한 바 있는 연동형 비례 30석과 병립형 20석 가운데 병립형도 포기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위성정당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역구 투표는 2번, 정당투표는 △번(비례 한국당)'을 널리 알리려면 인지도 있는 지도부급이 유세를 나서야 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해당 지도부급 인사, 지역구 후보로 출마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쉽사리 택하기 어려운 선택지임에는 분명합니다.

전례 없는 '비례 한국당'..모든 게 안갯속

하지만 내년 총선에 불출마하는 한국당의 중진이 '비례 한국당'으로 옮겨 선거운동에 나선다면, 물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효과가 아예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정미 의원의 해석은 한편으로는 맞지만, 이를 빠져나갈 방법도 적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또 당장 선관위가 '전례가 없어 답하기 어렵다'고 한 것처럼, 전례가 없어 법 조항을 어떻게 적용하느냐를 두고도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국당이 정말 '비례 한국당'을 만들지, 한국당의 현역 의원들이 옮겨갈지, 이게 현행법 위반이 될지, 그에 앞서 공전 중인 4+1 선거법 협상은 가닥을 잡을 수 있을지, 국민은 어떤 선택을 할지. 내년 총선까지 불과 넉 달 남았지만, 국회 상황은 아직 모든 게 안갯속입니다.

조태흠 기자 (jote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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