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7조원 썼는데.. 미국 무기 또 산다는 軍 [박수찬의 軍]

박수찬 입력 2019. 12. 22. 05:01 수정 2019. 12. 22.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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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의 미국제 무기 의존도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7조3746억원. 2009~2018년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사들이면서 지출한 돈이다. 미국 달러로는 62억7900만달러에 달하는 거액이다. 인천과 한강을 연결하는 경인아라뱃길 건설비(2조7000억원)의 두 배가 넘는 외화가 미국에 넘어간 셈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을 같은 기간 일본(36억4000만달러), 이라크(약 41억7000만달러)보다 자국 무기를 더 많이 구입한 ‘큰 손’이라 여길만하다. 

이같은 경향은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협상 과정에서 미국 무기 구매가 거론됨에 따라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칫하면 큰손이 아닌, 호갱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미 공군 F-35A 스텔스 전투기가 시험비행을 실시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미국 무기 구매 ‘탑4’ 한국, 대미 수출은 ‘미미’

국방기술품질원이 16일 발간한 ‘2019 세계방산시장 연감’ 등에 따르면, 미국은 2009~2018년 931억달러 어치의 무기를 수출, 세계에서 무기를 가장 많이 수출한 나라로 기록됐다. 이 기간에 미국 무기를 구매한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134억7000만달러)가 가장 많았고, 호주(77억6900만달러), 아랍에미리트(69억2300만달러), 한국이 그 뒤를 이었다.

연감은 한국이 미국에서 도입한 무기의 종류는 밝히지 않았으나, 일각에서는 군용 항공기를 많이 구매했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스텔스 전투기 F-35A 40대.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4대, 대형 공격헬기인 AH-64E 36대, 해상초계기 P-8A, 각종 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 수백발 등을 구매했다. 현재 운용중인 KF-16 전투기의 성능을 높이는 사업도 미국 업체가 담당하고 있다. 

연감은 “2009~2018년 미국의 주요 무기 수출 가운데 항공기는 522억달러에 달한다”며 “현재 주문량으로 볼 때, 전투기는 앞으로도 미국의 핵심 무기수출품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지난해에 일본과 벨기에에 각각 105대와 35대의 F-35를 판매했고, 슬로바키아와는 F-16V 14대 판매에 합의했다. 대만은 F-16V 66대 도입을 결정했다. 인도네시아도 24대 도입을 추진중이며, 필리핀도 구매를 저울질하고 있다.

미 공군 KC-46A 공중급유기가 성능시험을 위한 비행을 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이같은 상황을 뒷받침하듯 글로벌 방산업체도 미국에 집중되어 있다. 2017년 기준으로 세계 10대 방위산업체 가운데 5개가 미국 기업이다. 록히드마틴은 F-35와 미사일방어체계, 정밀유도폭탄, 이지스 전투체계 판매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세계 최대 무기생산업체의 지위를 굳혔다. 보잉은 KC-46 공중급유기 납품 지체로 록히드마틴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레이시온과 노스롭 그루먼, 제너럴 다이나믹스 등은 판매액이 예년에 비해 큰 차이가 없었다.

미국은 2009∼2018년 76억7000만달러 상당의 무기를 독일, 영국, 캐나다, 프랑스,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위스, 호주,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 수입했다. ‘천조국’이지만 자국이 필요로 하는 무기를 100% 자체 조달하기는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한국은 같은 기간 수출 내역이 집계조차 되지 않아 한미 간 무기거래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다만 미국 민간총기시장에 공급되는 탄약은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실제 수출 규모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방산업체의 수출 감소세도 두드러졌다. 연감에 따르면, 세계 100대 방산업체 중 국내 업체는 4개(한국항공우주산업, 한화디펜스, 대우조선해양, LIG 넥스원). 이들 업체의 무기 판매액은 2017년 기준으로 55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16년에 비해 23% 감소한 것이다. 특히 한국항공우주산업은 53%나 줄어들어 한국 전체 무기수출 감소액의 60%를 차지했다. 연감은 “한국군을 위해 진행 중인 대형 사업들이 종료단계에 이르렀고, 신형 헬기 납품이 지연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0월 14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에어쇼에 타우러스(TAURUS)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비롯한 공군의 정밀유도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계속 사들여도 무기는 부족하다

지난 10년 동안 7조원이 넘는 규모의 미국제 무기를 구매했지만, 한국군의 쇼핑 목록에는 여전히 많은 무기들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것이 1조~2조원이 투입될 지상감시정찰기 사업이다. 정식 명칭은 ‘합동이동표적 감시통제기’ 사업으로 지난 1월 발표된 2019~2023 국방중기계획에 포함됐다. 레이시온은 비즈니스 제트기에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합성개구레이더(SAR) 등을 장착한 아이스타-케이(ISTAR-K)를 제안하고 있다. 미 공군 조인트 스타즈 제작사인 노스롭 그루먼과 E-737 조기경보통제기를 만든 보잉도 관심을 보이는 모양새다.

1조원을 투입해 신형 해상작전헬기 12대를 구매하는 해상작전헬기 2차 사업은 록히드마틴 MH-60R과 영국, 이탈리아 합작사인 레오나르도의 AW-159가 경쟁하고 있다. 공군은 F-35A 20대를, 육군은 대형 공격헬기 AH-64E 36대 이상을 추가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해군은 고도 수백㎞ 상공에서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SM-3 함대공미사일 구매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수조원의 예산이 소요될 전망이다.

기존 무기의 성능을 높이는 작업도 본격적인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F-15K 전투기에 AESA 레이더와 첨단 전자장비를 장착하는 사업, E-737 조기경보통제기 개량 사업 등이 포함된다. 2026년까지 완료할 예정인 2조5000억원 상당의 피아식별장치 개량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더욱 커진다. 여기에 미국의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대폭 인상 압박을 상쇄하고자 정부가 미국제 무기 구매를 앞세울 가능성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우선순위 조정 등을 통해 미국제 무기 도입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한국 공군 KF-16D 전투기가 훈련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수십조원 규모의 미국제 무기를 사고도 더 많은 무기를 구매하는 원인을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미국과의 동맹이다. 일본, 호주, 대만, 캐나다 등 미국과 안보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는 미군이 쓰는 무기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유사시 연합작전을 쉽게 진행하려는 조치다. 

미국과 정치적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의도도 있다. 수조원 규모의 무기를 구매하는 것은 국가간 전략적 유대관계를 구축한다는 의미다.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와 인도 같은 나라들이 이에 해당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군 당국은 ‘전방위 안보위협 대응 능력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전방위 안보위협’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점이다.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것을 위협으로 고려하는 것은 ‘주변국이 보유한 무기는 우리도 확보해야 대응할 수 있다’는 논리로 연결될 우려를 안고 있다. 여기에 한미 동맹이 결합되면 미국제 무기 도입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한국 공군 F-35A 스텔스 전투기가 청주기지에서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같은 악순환을 끊으려면 무엇이 진짜 위협인지, 무엇이 진짜 안보인지를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 안보위협은 무기 도입으로만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려의 서희 장군이 담판을 통해 거란군을 물리쳤듯, 안보위협에 대한 대책은 군사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막대한 돈을 들여 첨단 무기를 확보했지만, 북한이 신무기를 공개하면 “안보가 흔들린다”는 호들갑이 설득력을 얻는 게 현실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미국제 무기를 관성적으로 사들이는 것보다는 위협 분석의 타당성,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군사적 또는 비군사적 수단의 효과성, 전력증강 우선순위, 소요 비용에 대한 분석 등을 꼼꼼하게 진행해야 한다.

미국제 무기를 사들이는 것은 군사적으로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똑똑한 소비자’ 대신 ‘호갱’이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안보위협과 군사력 평가를 군 당국이 주도하는 현실에서는 안보위협 대응 수단이 군사분야 위주로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방법은 군인들에게 익숙한 미국제 무기로 귀결될 우려가 있다. 

주변국 위협이 존재한다면 이를 군비 증강으로 해결할지 대화와 협력으로 해결할 것인지를 따져보고 무기도입을 결정해야 한다. 전통적 의미의 군사 안보개념을 극복, 범정부 차원의 포괄적 안보전략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하는 이유다. 안보는 힘으로만 유지되지는 않는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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