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장 '후보 매수' 의혹.."유죄 받으면 정치생명 끝난다"

강광우 입력 2019. 12. 22. 05:01 수정 2019. 12. 22.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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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사건 중 1989년 '서석재 후보매수 사건'이 가장 유명
곽노현 교육감도 2010년 선거서 '사후매수죄'로 처벌 받아
"돈 아닌 자리 제안도 처벌 가능..대가성 부인도 안 통해"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6월 울산시장 선거와 관련한 청와대의 ‘하명수사, 선거개입 의혹’이 날로 커지고 있다.

송철호 현 울산시장(더불어민주당)과 관련한 의혹은 크게 두 갈래다. 먼저 상대 당 후보였던 김기현 전 울산시장(자유한국당)이 당선되지 못하도록 청와대가 경찰 수사를 활용해 방해했다는 의혹이다. 두 번째는 당내 쟁쟁한 경쟁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송 시장을 단독 공천한 과정에서 나온 석연치 않은 일들이다.

김 전 시장이 지난 20일 기자들과 만나 검찰 조사 과정에서 본 송병기 울산 부시장의 업무 수첩에 “당내 경선에서는 송철호가 임동호(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보다 불리하다”는 취지의 메모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최근 두 번째 의혹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임 전 최고위원은 불출마를 대가로 일본 총영사 등 주요 직책을 청와대로부터 제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또 임 전 최고위원의 친동생 A씨는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직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상임감사로 임명됐다. 이 같은 의혹들이 사실로 확인되면 관련자들은 공직선거법상 ‘후보 매수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민주당의 심규명(왼쪽), 임동호 울산시장 예비후보들이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중앙당 공관위가 송철호 후보를 시장 후보로 단수 선정한 것에 대해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석재, 곽노현, 이대엽 사건..."선거법 중 처벌 수위 높아"
동해시 재선거 후보매수 사건과 관련 검찰에 소환됐던 서석재의원이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과거 후보매수 사건 중 유명한 사건은 1989년 ‘서석재 후보매수 사건’이다. 당시 통일민주당 사무총장이었던 서 전 의원은 강원 동해시 보궐선거를 앞두고 같은 당 이관형 후보의 당선을 위해 공화당 이홍섭 후보에게 1억5000만원을 주고 후보 사퇴를 시킨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서 전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상도동계 이인자로 불렸던 데다 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만큼 파장이 상당했다. 이 사건 이후 김 전 대통령이 3당을 합당해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가깝게는 2010년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사건이 있다. 곽 전 교육감은 그 해 6·2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상대 후보였던 박명기 전 서울교대 교수에게 단일화를 대가로 2억 원을 건넨 ‘사후 매수죄’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았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이대엽 전 성남시장도 같은 혐의로 당선무효형이 확정됐다.

후보매수죄는 선거법 중 처벌 수위가 가장 강력하고 법원도 엄격하게 적용한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선거법 처벌은 보통 10년간의 피선거권 박탈 조항이 따라와 벌금형이 많이 나오는데, 후보매수죄는 징역형이 나오기 때문에 상당히 강력한 법”이라며 “정치인들이 이 죄목으로 처벌을 받으면 정치 인생은 사실상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곽노현 전 교육감이 지난 2012년9월27일 대법원에서 사후매수죄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서울시 교육청을 떠나며 자신의 카니발 승용차에 오르고 있다.


금품 대신 자리 제안받아도 처벌..."입증은 어려워"
지난해 울산시장 민주당 후보 공천과정에서 나오는 후보매수 의혹도 법적으로 따져봤다. 쟁점이 될 수 있는 건 불출마 대가로 돈이 아닌 주요 직책을 제안받은 것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느냐다. 공직선거법 230조(매수 및 이해유도죄)에는 재산상의 이익뿐만 아니라 공사의 직을 제공한다는 것도 처벌 대상이라고 명시돼 있다. 후보자 본인이 아닌 가족이 대가성 직책을 받아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다만 금전과 달리 직책 제안은 관련성 입증이 어렵다는 점에서 수사가 쉽지 않다고 한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금전 제공은 계좌 추적으로 증명할 수 있지만, 직책을 받은 것은 정상적인 채용 절차였다고 주장하면 입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확약서, 녹취록 같은 증거가 나와야 하지만 시기가 지나서 검찰이 증거물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쟁점이 될 수 있는 건 대가성 여부다. 대가성을 부인해도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 서석재 사건 판결문을 보면 서 전 의원은 “사퇴를 결심하고 선거 운동을 중단한 상대 후보를 인간적으로 동정해 그의 빚을 갚아 주고자 돈을 건넸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대가성을 부인하지만, 금품 제공은 후보 사퇴와 직접적 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유죄를 인정했다.

당선인이 해당 사실을 인지했느냐 여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곽 전 교육감의 사례에 비춰보면 당사자가 대가를 받은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해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공직선거법 제230조 제1항 제1호는 “후보자를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같은 법 제2호는 “‘후보자 사퇴한 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라고 명시하고 있다. 곽 교육감은 당시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바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캠프 실무진과 상대 후보자 사이에 금전 제공의 약속과 대가 지급이 실제 이뤄져 유죄로 결론 났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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