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 민원 1만 건..임산부 혐오까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승곤 2019. 12. 2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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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배려석 '자리 갈등' 관련 민원 1만건
여성 혐오, 임산부 혐오 등 극단 갈등 치닫기도
전문가 "임산부 배려하고 보호하는 문화 필요"
지난 2월17일 서울지하철 4호선 임산부 배려석에 '엑스자' 모양의 낙서가 발견됐다. 사진=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임산부 배려석 앉을 수도 있지" , "배려를 강요하지 마세요"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하고 있다. 남성 혐오, 임산부 혐오 등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다. 한 임산부 배려석에는 누군가 '엑스(X)'로 낙서를 하기도 했다. 임산부 전용 자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임산부 배려석 갈등이 불거지는 사이 관련 민원 건수는 1만 건을 넘어섰다. 전문가는 임산부를 배려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 문화를 촉구했다.

서울 지하철의 임산부석은 2013년 11월 생겼다. '임산부를 위해 자리를 비워두자'라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2015년 이후 지금의 분홍색으로 디자인이 바뀌었다.

문제는 임산부면 무조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데 있다. 임산부 배려석은 말 그대로 '배려석'이다. 누군가는 임산부를 보고도 계속 앉아, 임산부를 배려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어떻게 임산부를 보고도 자리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있냐는 지적도 있다.

임산부 배려석 관련 민원은 지속해서 늘고 있다. 20일 서울교통공사(공사)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10월까지 임산부 배려석 관련 민원 건수는 1만814건으로 2019년 7312건에 비해 1.5배 가까이 늘었다.

민원은 대부분 '자리 갈등'에 대한 내용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의 임산부석 관련 민원은 하루 평균 75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13건에서 2018년 2만7555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대부분의 민원이 "임산부석에 임산부가 아닌, 일반 승객이 앉아 있으니 '자리를 비워달라’는 안내방송을 해달라"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은 배려가 아닌 자리에 왜 배려를 강요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공사 측이 지난 6월 서울 지하철 이용 시민 6179명(임산부 12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임산부석에 앉은 이유에 81.50%가 '비워져 있어서'와 '강제가 아닌 배려석이라서'라고 답했다.

평소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30대 중반 직장인 A 씨는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들을 위한 자리가 맞다"면서도 "그러나 배려석이다. 임산부들에 대한 배려 여부는 각각 개인이 판단해야 할 부분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배려를 강요하는 순간, 그건 배려가 아닌 강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20대 후반 여성 직장인 B 씨는 "임산부 배려석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면서 "자리 자체가 임산부를 위한 배려석이다. 그럼 임산부에게 그 자리를 배려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이어 "배려를 하는 것이 자유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그 정도는 지켜줄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거듭 강조했다.

2호선 임산부 배려석.사진=아시아경제

관련해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산부 10명 중 4명은 임산부 입장에서 자리 양보를 포함한 배려를 체감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17년 8월22일부터 9월8일까지 총 10,613명(임산부 3,212명, 일반인 7,401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임산부의 60.2%가 '임산부로 배려받은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일반인은 임산부인지 몰라서(41%), 주변에 임산부가 없어서(27.5%), 방법을 몰라서(13.6%) 등의 이유로 임산부를 배려하지 못한 것으로 응답했다.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갈등은 온라인으로도 번진다. 한 여성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남성의 사진과 함께 조롱이 섞인 댓글이 올라왔다. 대부분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남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가 하면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비난도 이어졌다. 지난 2월18일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전날(17일) 오후 11시께 지하철 4호선 한 전동차의 객실에서 임산부 배려석 위에 붙은 앰블럼에 '엑스(X)'자로 된 낙서가 발견됐다.

이 사진은 온라인 커뮤니티로 퍼지면서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다. 한 SNS 계정에는 "오늘 찍은 4호선 지하철. 모든 칸이 이렇게 돼 있었다. #임산부혐오"라는 글과 함께 사진들이 게재됐다.

누리꾼들은 이 낙서는 여성 혐오이자 임산부 혐오를 나타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 혐오, 약자 혐오다", "임산부 배에서 안 태어나신 분 찾는다" 등이라는 댓글이 올라왔다.

전문가는 성숙한 사회 문화를 촉구했다. 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장은 '임신경험으로 본 배려문화와 지원정책' 토론회에서 "임산부 입장에서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배려를 체감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산부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문화가 조성되어 우리사회에 만연돼 있는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몫이라는 관점을 버리고 남성과 기업, 사회가 이에 대한 책임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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