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받아도 월 45만원 적자..日퇴직자들 "죽을때까지 일해야"

이승훈,김강래,정주원,이새하 2019. 12. 2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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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에 고달픈 은퇴자들
금융자산 재테크는 '그림의 떡'
연금수령액도 날이 갈수록 '뚝'
재취업 안하면 빈털터리 신세
살길 막막해 자진 교도소行도
복지천국 유럽사정도 마찬가지
생활고에 노숙자 전락 사례많아

◆ 2020신년기획 / 지구촌 제로금리 공습 ① ◆

`제로금리의 공습`을 겪고 있는 일본 도쿄 내 한 지하상가에 위치한 미즈호은행 자동화기기 (ATM)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제공 = 블룸버그]
일본 나고야 인근 중소도시 노인합숙소에 거주하는 오카모토 씨(69). 60대 초반에 은퇴한 그는 이후 삶의 절반가량을 철창 속에서 지냈다. 한때 도요타 계열 부품회사에서 일하면서 중산층 삶을 누렸던 오카모토 씨는 집을 포함한 대부분 은퇴자금을 아내 간병비로 날린 뒤 사실상 빈털터리가 됐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경범죄. 경찰 앞에서 일부러 자전거를 훔치는 시늉을 하다 현장에서 체포돼 6개월간 징역형을 산 것이 그의 첫 번째 교도소 생활이다.

오카모토 씨는 "일본은 작은 범죄도 실형을 내리는 일이 많아 이후에도 비슷한 건으로 2~3차례 더 교도소를 들락거렸다"며 "당장 살기는 힘든데 모아둔 돈은 없으니 먹고살게 해주는 교도소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일본 내 만 65세 이상 고령자 범죄는 최근 20년 새 4배 가까이 급증했다.

20년 이상 저금리가 지속되다 급기야 2016년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0.025%를 기록하면서 마이너스 금리로 떨어진 일본은 금융자산을 운용해 노후를 대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은행 이자는 1년을 맡겨도 고작 0.01%를 준다. 1억원을 정기예금에 넣어도 이자가 1만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은퇴를 앞둔 사람들은 투자보다 연금에 목숨을 건다.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3층 구조인 우리처럼 일본도 '공적·기업·개인' 3층 구조 연금체계를 갖추고 있다. 제로금리 탓에 일본 국민연금과 기업연금의 수익률이 좋지 않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개인형 퇴직연금이나 자산 형성 지원 제도 가입 등을 장려하고 있다. 개인이 넣는 돈에 세제 혜택 등을 줘서 수령액을 최대한 늘릴 수 있게 해주는 정책이다.

그러나 연금 수령액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연금을 받는 사람도 퇴직 후 재취업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사실상 죽을 때까지 일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일본 도쿄 시나가와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미타라이 히사미 씨(72)는 '9년차 퇴직자'다. 그는 "연금소득은 적지 않지만 제로금리 때문에 자산을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병원에 입원하거나 뜻하지 않은 지출에 대비해서 일을 놓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미타라이 씨는 현재 리쓰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와 시가대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다. 한 달에 6만엔 정도 벌지만 이마저도 언제 잘릴지 몰라서 전전긍긍이다.

제로금리가 지속되고 있는 유럽에서도 은퇴자들의 삶은 고단하다. 상대적으로 사회복지제도가 잘 발달돼 있지만 치솟는 부동산 가격이 취약 계층을 노숙자로 내모는 것이다. 네덜란드 통계청(CBS)에 따르면 지난해 만 18~65세 노숙자 추정치는 3만9300명으로 2009년 1만7800명보다 두 배나 늘었다. 유럽에서는 특히 아프리카 등에서 온 이주자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노숙자 숫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외곽의 한 쉼터 시설에서 만난 30대 노숙자 델가도 씨도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길가로 내몰린 경우다. 그는 "불과 4~5년 만에 월세가 3배 가까이 치솟아 이 지역에 살 만한 집은 최소 월 1200유로(약 155만원)가 넘는다"며 "감당할 수 없어 더 싼 집을 전전하다 쉼터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의 올해 3분기 평균 집값은 50만7475유로(약 6억6000만원)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평균 집값이 바닥을 찍었던 2013년 2분기 25만2982유로(약 3억2800만원)보다 200%나 뛰었다. 이 기간 임금 상승률은 1.2~2.0%에 그쳤다.

복지제도가 가장 잘 발달된 스웨덴 은퇴자의 삶은 그나마 낫다. 개인이 노력해서 받는 연금 외에도 정부 차원의 연금이 최소 생활은 가능할 정도로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스웨덴 연금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공적연금을 받는 사람은 22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달한다. 세금을 내기 전 받는 평균 공적연금은 올해 7월 기준 한 달에 1만2600크로나(약 159만원)다.

스웨덴 서남부에 위치한 스코네주 도시 룬드에서 만난 클라스 닐슨 씨(71)도 2012년 직장에서 퇴직해 7년째 아내와 은퇴 생활을 보내고 있다. 공적연금과 퇴직연금에서 받는 돈이 5만크로나(약 632만원)에 달하지만 이들 부부 생활은 기본적인 소비 이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매달 대출이자와 관리비로 나가는 돈에 북유럽의 비싼 생활비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제로금리 탓에 있는 조금 남아 있는 은행 예금을 불리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오히려 매달 계좌 이용료로 4000원을 내야 한다. 닐슨 씨는 "과거에는 여행도 다니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꿈은 꾸지도 못한 채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기 바쁘다"며 "제로금리 때문에 은행 이자수입이 없다 보니 최대한 생활비를 아껴 쓰려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이승훈 차장(샌프란시스코·LA) / 김강래 기자(도쿄) / 정주원 기자(런던·암스테르담·바우트쇼텐) / 이새하 기자(스톡홀름·코펜하겐·헬싱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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