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세계 경제 전망] 포퓰리즘으로 재정 탕진하고 젊은 세대 착취한다

김동호 입력 2019. 12. 23. 00:27 수정 2019. 12. 23.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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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들이면 마약처럼 빠르게 번져
확산 배경은 고질적 부의 양극화
재정 퍼부어도 빈곤 수렁 깊어져
프랑스·스웨덴은 복지 축소 가속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의 좌파 정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환호에 호응하고 있다. 그 뒤로 이번에 부통령에 취임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의 대형 사진이 보인다. 페르난데스는 2015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한 뒤 보수 우파 정부에 정권을 내줬었다. [EPA=연합뉴스]
포퓰리즘(populism), 우리 말로는 ‘대중영합주의’.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정치가 제공한다는 뜻이다. 정치인은 이 틈을 파고든다. 대중을 위한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은 대중을 기만해 정치적 입지를 넓힌다. 여기에 군중심리까지 가세하면서 대중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요구는 포퓰리즘을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만든다.

안타깝게도 포퓰리즘은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도 어렵다.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현금성 수당을 비롯한 나랏돈 퍼주기와 재정 악화가 국가에 대한 국민 의존도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지속한다. 자본주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포퓰리즘은 극성을 부리고 있다. 희생양은 미래세대다. 당장은 충격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동안 행복감이 확산한다. 일하지 않아도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누군가 반드시 비용을 치른다.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그리스가 대표적으로 그런 길을 걸었다. 특히 남미 국가들은 ‘국민이 원하는 건 다 준다’는 슬로건 아래 포퓰리즘이 확산했다. 사회주의가 내건 ‘지상낙원 건설’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한번 빠져들면 출구를 찾기 쉽지 않다.

최근 대통령 선거를 치른 아르헨티나가 대표적 사례다. 만성적 재정 적자와 경제 불안에도 국민은 우파 정권을 내치고 다시 좌파 정권을 불러들였다. 아르헨티나에서 좌파 포퓰리즘이 거듭 등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46~55년 집권한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은 73~74년 2차 집권했다. 취임 후 10개월 만에 지병으로 사망하지 않았으면 그의 포퓰리즘 정치는 더 길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이 원하는 건 다 준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한 시민이 음식을 찾아 쓰레기 통을 뒤지고 있다. [ 연합뉴스]
한마디로 포퓰리즘은 달콤하다. 그래서 금단현상을 참기 어렵다. 일하지 않아도 당장 굶어 죽을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17세기 근대국가 개념이 성립될 무렵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Leviathan, 성서에 나오는 거대한 바다 괴물에 비유한 국가)의 출현을 예고한 것처럼 개인의 기업가 정신은 위축되고 국가의 역할은 비대해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는 개인의 노력과 부(富)의 축적을 존중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 정책이 전형적이다. 외국 자본 배제, 산업 국유화, 복지 확대와 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수입 증대가 시행된다.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볼 점들이 있다. 왜 ‘거듭 실패로 끝나는 포퓰리즘이 횡행하고 있는가’다. 이런 흐름의 근저에는 고질적인 부의 양극화가 자리 잡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포퓰리즘이 자본주의의 발달 정도는 물론이고 글로벌 기업의 존재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글로벌 기업이 없다. 그런데도 자연 발생적으로 빈부 격차가 발생한다. 애덤 스미스가 고전적으로 말한 대로 빵집은 빵을 굽고 구두점은 구두를 만들어내다 보면 개인 간에는 저절로 부의 격차가 벌어진다. 부의 대물림도 빈부 격차의 원인이지만, 개인의 노력과 근로 의지가 이 같은 빈부 격차를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이런 인간 세계의 섭리와 본성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면서 반(反)시장·반기업적으로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고 기업과 부유층의 세금 부담을 늘려 복지를 확대한다. 규제를 통해 민간 자율을 억제하고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려 큰 정부를 만들어간다. 이런 정책의 정당성은 평등·공정·정의 같은 사회 규범 제시로 뒷받침된다. 정치 구호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고 기업가정신은 쇠퇴한다.

이렇게 ‘정의로운’ 포퓰리즘의 허점은 재원 마련에서 드러난다.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는 산업을 국유화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이윤을 남김없이 국민에게 배분했다. 모순은 여기서 발생한다. 생산성을 간과하면서다. 산업을 국유화하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에서는 선의의 경쟁이 사라지고 기업가 정신이 말살된다. 자원이 있어도 소용없다.

‘경제 악화는 기득권 세력에 책임’ 호도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의 원유매장량을 자랑하던 나라였다. 그러나 1999년 우고 차베스가 집권하면서 외국 석유 메이저를 쫓아내고 유전을 국유화했다. 정부 재정은 무상복지·최저임금·노동시간 단축·공무원 증원에 투입했다. 문재인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의 기본 방침으로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선언하면서 추진한 소득주도 성장과 비슷한 방향이다. 이런 정책의 결과는 참담하다. 생산성은 그대로인데 무상으로 돈을 퍼주니 투자와 생산, 일자리로 연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베스가 죽은 뒤 같은 노선으로 정권을 창출한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도 같은 길을 걸었다. 2013년 권력에 오른 마두로는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으로 저유가가 지속하자 석유 수입원이 말라 더는 국민에게 뿌릴 돈이 없었다. 세금 중독에 걸린 정부, 공짜 보조에 맛 들인 국민은 금단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자 차베스에게 배운 대로 화폐를 찍어 내고 국채를 남발했다. 이로 인해 물가가 오르면 시장가격을 억누르고 민간 기업이 파산하면 국유화를 거듭했다.

베네수엘라는 500만명이 국경을 탈출했고, 시민 몸무게는 지난해 평균 11㎏ 줄었다. 쓰레기통을 앞다퉈 뒤져도 건질 게 없다. 일본 공영방송 NHK 현장르포는 냉장고를 열자 귀하게 얻은 물 한 바가지가 전부라며 흐느끼는 여성을 중계했다. 생지옥이 따로 없다. 그런데도 마두로는 “경제 악화는 미국과 자본가, 기득권 세력의 책임”이라며 이분법 논리로 좌파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2010년 본격화한 그리스 재정위기 역시 포퓰리즘의 결과였다. 공공부문에서는 40대 후반만 되면 퇴직 바람이 불었다. 퇴직해도 현역 시절 못지않은 연금이 평생 지급되면서다. 누가 일하려 들겠나. 지금은 유럽연합(EU)의 재정개혁 요구를 받아들여 위기 수습에 나섰지만, 복지 축소에 따른 고통은 지속하고 있다.

■ 한국도 안심 못 한다

「 현 정부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생산성을 무시한 주 52시간제 강제, 최고세율 인상(법인세 22→25%, 소득세 40→42%)은 포퓰리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정부 현금지원 늘고
문제는 재정이다. 재정만 건전하면 당연히 복지를 늘려야 한다. 하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라면 재정을 탕진하고 국가 의존도만 높아져 경제가 멍든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재정 투입 남발에 대해 “마약 맛 붙이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현 정부는 야당을 배제한 채 512조원 규모의 2020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헌법과 국회법은 무시됐다. 예산 심사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고 초법적으로 만들어진 예산이다. 여기에는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발상 그대로다.

올해 누적 재정적자가 벌써 45조5000억원에 달했는데도 정부는 내년에 60조원에 달하는 적자 국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각종 수당으로 지급하는 현금성 예산 55조원을 충당하게 될 금액이다.

조세부담률 가파르게 늘어나
그 부담은 고스란히 지금의 30·40세대와 그 자녀들이 짊어지게 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올해 37.1%에서 이들이 50·60세대가 되면 100%에 달하게 된다. 그리스·스페인에서도 국가부채 비율이 40%에서 100%에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이 10년도 되지 않았다.

마침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복지 확대를 위해 법인세율·부가가치세율을 올려 조세부담률을 지난해 20.0%에서 2045년 25%까지 높이자는 보편적 증세 방안을 공개했다. 저출산·고령화의 수렁에 빠져들고 1%대 저성장으로 기업이 생존 자체를 확신하기 어려운 시점에 나온 복지 확대 정책이다.

프랑스에서도 연금 개혁으로 진통을 겪고, 스웨덴조차 법인세를 30%에서 21.4%로 낮추고 복지를 줄이는 마당에 한국은 포퓰리즘의 그림자를 좇고 있다. 미래 세대의 착취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그 대신 규제·노동 개혁으로 미래 세대가 먹고살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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