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교실에 들어오다' 저자 이혜정·이신애 씨 "학교가 '쓸모'만 따지니 쓸모없는 '혐오'가 생겨"

박채영 기자 2019. 12. 2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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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현직교사 등 7명의 저자가 중2 학생들과 면담한 기록
ㆍ대안 없이 혐오를 말하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 회피’
ㆍ학생 간의 연대·성폭력 예방교육·교사 재교육 절실

<혐오, 교실에 들어오다>의 공동저자인 이혜정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왼쪽)과 이신애 교사가 지난 22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만약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와, 진짜 엄마 없다’ 그래요. 그러니까 자식이 부모가 없으면 약간 좀 모자라고 못 배운 티가 나잖아요.”

현장 교사와 교육 연구자 7명이 함께 펴낸 <혐오, 교실에 들어오다>(살림터)에 담긴 한 중학생의 면담 내용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혐오현상을 연구하고자 3개월간 너른중학교(가명) 2학년 1반 학생들을 관찰하면서 심층면담을 진행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근처에 위치한 너른중학교는 학부모 대부분이 중산층이며 자녀 성적에 관심이 높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이 쓰는 혐오표현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병신’이었다. 저자들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고, 성적 중심의 ‘경쟁’을 학습시키는 학교 문화가 협력과 연대보다 차별과 배제를 하게 했다”며 “학생들은 대상의 열등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혐오표현을 주로 쓰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이혜정 경기도교육원 연구위원과 이신애 초등성평등연구회 교사는 지난 22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교에서 혐오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학교의 구조와 질서에서 비롯된 것인데, 원인과 결과의 진단 없이 ‘어떻게 학생들이 그렇게 나쁜 짓을…’이라며 악마화하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을 지워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 ‘시궁창’ ‘돼지새끼’ ‘밥도둑’

- 교실 안으로 들어온 혐오표현의 원인은 뭘까.

이신애 = 교사들도 학교에서 일어나는 혐오현상을 다 알기 어렵다. 나도 전에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자기들끼리 ‘밥도둑, 밥도둑’ 하길래 ‘간장게장을 말하나?’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얼굴이 밥맛 떨어지게 생겨서 밥도둑’이라더라. 교사만 모르는 혐오표현을 아이들끼리 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고등학교에 가면 또래집단의 영향력은 커지는 반면, 교사와 함께하는 시간은 초등학교에 비해 적어져서 아이들끼리 쓰는 은어를 따라잡기도 어렵다.

이혜정 = 교사들 중에는 학교가 이렇게까지 이상한 곳은 아니라고 얘기하는 분도 있다. 본인들은 학생들과 여성이나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의 실제 질서는 다르다. 아이들은 잠재적 교육과정 속에서 연대보다 경쟁을 배운다. 민주시민 교육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학교 자체가 민주적인 공간이 돼야 한다.

이신애 = 학교 자체가 ‘쓸모 투쟁’의 공간이 됐다. 교사의 역할 또한 아이들을 쓸모 있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쓸모를 평가하고 쓸모없음을 상정하는 것이 약자에 대한 혐오를 만든다.

이 책의 저자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학생들 간에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여성혐오였다. 여학생들은 외모가 예쁘지 않거나 살집이 많다는 이유로 ‘시궁창’ ‘돼지새끼’와 같은 혐오표현의 대상이 됐다. 저자들은 이 같은 현상이 여성의 외모를 둘러싸고 남성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사회적 성별 정치학의 반영이라고 봤다. 심지어 여학생들 스스로도 여성의 외모가 대상화되는 교실 안 질서를 내면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신애 = 학생들과 자신의 신체 부위를 설명하는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성별에 따라 자신의 신체부위를 서술하는 방식이 달랐다. 여학생의 경우 ‘나는 쌍꺼풀이 없어서 엄마가 스무 살이 되면 성형수술을 해준다고 했다’ ‘속눈썹이 짧다’ 이런 이야기를 쓴다. 반면 남학생은 ‘내 눈은 1.5다’라고 시력에 대해 썼다.

이혜정 = 남학생도 똑같이 외모에 대한 억압을 받는데 이건 그냥 외모 혐오지 왜 여성 혐오냐고 묻는 교사도 있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은 외모에 대한 압박의 정도와 결이 다르다. 여성의 경우 허리는 날씬해도 가슴은 커야 하는 등 신체 부위별로 압박을 받는다.

이신애 = 미디어의 영향도 크다. 시상식만 봐도 나이 많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함께 나온다. 아이들은 <겨울왕국 2>에서 엘사가 ‘쫄쫄이’ 입고 뛰어가는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선망하고 자신을 투사한다. 예쁜 여자 말고는 롤모델이 없다. 요즘도 남학생들이 여학생들 외모를 평가해 순위를 낸다. 그럼 그 틀 자체를 깨야 하는데 여학생들은 거기서 순위를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혜정 = 혐오표현에 있어서 학교의 안과 밖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학교 밖 세상이 학교 안에 반영되기도 하고, 학교에서 혐오표현을 배우기도 한다. 그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 교육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 피해자 입장에서의 교육이 중요

저자들은 혐오현상에 대응하는 한 방법으로 ‘연대’를 꼽는다. 너른중학교 남학생들은 ‘느금마’ 같은 여성 비하적 표현을 대놓고 쓰면 여학생들이 단체로 자신을 ‘뒷담’할 것이 두려워 자기들끼리 있을 때만 쓴다. 저자들은 “특정 혐오표현에 대한 집단적 거부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남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학생들 간의 ‘연대’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혜정 = 현재 교육은 대부분 당사자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장애인의날에는 ‘옆 친구가 장애인일 때 잘 도와줘야 한다’고 수업을 한다. 그 수업을 듣는 아이 중에 장애인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이신애 = 교과과정이 바뀌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도 든다. 문제의식이 없는 교사가 수업해도 괜찮은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초등학교 교과서는 이미 많이 바뀌었다, 몇 년 전부터 성평등 관점으로 모니터링을 한 덕에 더 이상 핑크색 치마를 입힌 여자아이 삽화가 나오지 않는다.

이혜정 = 교육의 목적이 공부를 잘하는 애들을 키워내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민주시민을 길러내야 한다고 하는데, 학교 안에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면 그런 목적은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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