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시진핑 '선물' 받은 아베, 빈손 문 대통령

유상철 2019. 12. 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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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일본산 쇠고기 금수 해제
한국이 원한 한한령 해제 외면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3일 각각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그 결과는 ‘의전은 대등, 실리는 완패’ 아닐까.

우선 의전을 보자. 한·중과 중·일 정상회담을 전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24일자 1면 사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민일보는 이날 1면 오른쪽 상단에 한·중 정상회담, 하단엔 중·일 정상회담을 다뤘다. 문 대통령이 시 주석과 악수하며 웃는 모습이 아베 총리 위에 있으니 한국을 더 중시한 모양새다. 한데 신문을 가만히 보면 아래 사진을 키워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보다 크게 보이게 했다. 중국식 ‘균형 잡기’라 할 수 있다.

시 주석과 문 대통령은 오찬을, 아베 총리는 만찬을 했다. 외교 의전상 속 깊은 말을 할 수 있는 만찬이 더 중요하긴 하지만 이는 아베 총리의 방중 일정이 2박3일로, 1박2일의 문 대통령보다 긴 점을 고려하면 굳이 따질 건 아니다.

문제는 실리다. 우리는 손에 잡히는 게 없다. 반면에 일본은 선물을 받았다. 아베 총리 방중에 맞춰 23일 중국 언론은 중국이 18년 만에 일본산 쇠고기 수입 금지령을 해제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중국은 2001년 일본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쇠고기 수입을 금지했다. 2010년엔 구제역을 이유로 일본산 우제류(발굽이 2개인 가축류) 제품도 수입 금지했다. 한데 이 두 가지 금지령을 아베 총리가 시 주석을 만나는 날에 맞춰 푼다고 발표했다.

반면 우리는 기대했던 관광·한류 부문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한류 제한령) 해제를 겨냥해 문화 협력을 강조했지만 시 주석은 외면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실리를 챙기기는커녕 중국의 언론 플레이에 이용당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홍콩 사무든, 신장 문제든 모두 중국의 내정”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중국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청와대는 “시 주석의 홍콩, 신장 언급에 대해 문 대통령이 잘 들었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지만 늦었다. 인민일보가 문 대통령 발언을 속보로 내보내고 나머지 언론은 이를 제목으로 뽑는 등 시쳇말로 중국은 장사를 크게 벌여 재미를 톡톡히 봤다.

반면에 아베 총리는 홍콩과 신장 사태에 대한 중국의 대응방안 개선을 요구하고 시 주석이 이를 반박하는 등 신경전을 펼친 것으로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중국의 일방적 보도는 한국을 가벼이 여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거 문 대통령 특사가 시 주석을 만날 때 대등하게 앉지 못하고 지방 성장을 만날 때와 같은 자리에 앉아 ‘하대 논란’이 인 적이 있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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