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민주 국가에 이런 '법'은 없다

김광일 논설위원 2019. 12. 2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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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공수처법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검경이 인지한 고위공직자 범죄를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공수처법 24조2 때문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있는 대검찰청은 입장문을 내고 이 조항을 "수사 검열이자 중대한 독소 조항"이라고 했다. 지난 4월 발의됐던 당초 법안에는 없던 내용으로 민주당과 군소 정당들이 막판에 끼워 넣었다. 윤 총장은 격노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 조항 때문에 공수처에 입맛대로 사건을 처리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혼내주고 싶은 야당 인사나 정부 비판적 인사가 관련됐을 때는 검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아서 ‘과잉 수사’를 하고, 반대로 여당 사람이나 친정부 사람이 관련돼 있을 때는 사건을 가로채서 ‘뭉개기 부실 수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의 사개특위 위원장인 권성동 의원은 "이는 공수처가 게슈타포로 대통령 친위 기구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그대로 증명해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도 "밀실 야합 세력이 국민 몰래 청와대 비리는 덮고, 대통령 정적(政敵)은 손쉽게 제거하는 괴물 공수처를 탄생시켰다"고 했다.

자, 그렇다면 법안 상정을 앞두고 있는, 수정된 공수처법이 왜 문제인지, 검찰 입장에서가 아니라 국민들 입장에서 따져보기로 하자. 먼저 ‘공위공직자 범죄 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헌법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법률이다. 왜냐하면 공수처는 헌법에 근거가 없다. 반면 검찰은 헌법에 적시된 수사기구다. 그런데 공수처가 검찰을 조사하고 보고 받는 상위 기구가 되면 공수처는 태어날 때부터 위헌 소지를 안게 되는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보자. 처음엔 왜 상당수 국민들이 검찰 개혁, 사법 개혁에 찬성했을까. 그것은 검찰 폐습 3가지, 즉 ‘하명수사’, ‘강압수사’, ‘별건수사’ 때문이었다. 대한변협이 해마다 발간하고 있는 ‘검사평가 사례집’에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먼저 강압수사―. 수사 도중에 자살하는 피의자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은 검사의 압박과 회유와 모욕주기가 여전하다는 증거다. 이것은 명백한 인권침해 수사다. 다음, 별건수사―. 수사를 해도 애초에 생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다른 혐의를 들이대고 캐내면서 피의자를 압박하는 것이다. 별건수사는 ‘먼지떨이 수사’라고도 하며, 이것은 명백한 권한남용이다.

이런 수사는 당연히 개선돼야 한다. 별건수사는 형사소송법을 만들어 그것을 금지하고, 그때 수집한 혐의들은 전혀 증거 능력이 없다는 것을 못 박아 두면 된다. 강압수사 역시 해당 검사를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을 고치면 된다. 문제는 하명수사다. 이것이 개혁하기가 가장 어렵다. 왜냐하면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검찰을 부하처럼 부려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에 여러 번 지시를 했다. 기무사·장자연·김학의·버닝썬 등등을 엄정히 처리하라고 지시했고, 또 앞선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국민들이 검찰을 걱정했던 것은 강·절도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모두가 정권 관련 수사 때문이었다. 과거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는 덮어버리고, 지나간 권력만 털었다. 여권 비리는 덮고 야권 비리만 털었다. 그 원한이 쌓이고 쌓여 검찰은 ‘대통령의 충견(忠犬)’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지시는 검찰 개혁은커녕 과거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상정될 공수처법에 따르면 7명의 추천위원회가 2명의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 중 한 명을 임명하게 돼 있다. 7명의 추천위원은 여당 몫 2명, 법무장관, 법원행정처장 등 여권 인사가 절반이 넘는 4명이다. 한마디로 공수처장은 대통령의 심복을 앉힐 수 있는 자리다. 만약 지난 봄 이미 공수처가 출범했다면 아마 조국 같은 사람을 앉혔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조국 본인의 일가족 비리’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감찰중단 의혹’ ‘청와대의 울산 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문 정권의 3대 비리 의혹은 그대로 땅에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권은 공수처를 만드는 것이 검찰 개혁인 것처럼 국민에게 선전하고 있다. 하창우 전 대한변협 회장은 공수처가 상설기구란 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했다. "(공수처는 법관을 수사할 수 있는데,) 권력의 의중에 어긋난 재판을 한 판사를 시민단체가 고발하면 공수처가 그 판사를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로 조사할 수 있다. 판사마저 권력의 입맛에 길들게 될 것이다. 사법부를 장악하는 것은 시간문제다."라는 것이다. 현직 대법원장을 비롯해서 법원 요직, 그리고 헌법재판소까지도 진보 성향 인사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하창우 전 변협 회장은 여기에 공수처까지 생기면 "대통령이 모든 사법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과거 어느 정부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재정권이 등장할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는 결론처럼 말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공수처를 둔 민주 국가는 없다. 검찰 개혁을 내걸고 공수처가 필요하다고 하는 건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수사경찰관 출신으로 지난 4월 공수처 설치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마저도 이번에 수정된 공수처 법안에 반대했다. 당초 ‘권은희 안(案)’에는 공수처장은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또 기소심의위원회를 구성해서 공수처의 기소권 오남용을 견제하도록 했다. 그러나 수정안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빠져버렸다.

결국 국민이 깨어있는 수밖에 없다. 공수처법이 ‘사법 개혁’인지, 아니면 ‘국민을 속이는 독재법’인지 알아야 한다. 그건 선거로 심판할 수 있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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