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선] 김의겸의 세 번째 베팅

안혜리 2019. 12. 27.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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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용 '부동산 차익 기부' 꼼수
없는 법 내세워 실행도 안 해
펜으로 권력 탐한 게 더 나빠
안혜리 논설위원
아무리 몰염치·몰상식이 이 정권의 전매 특허라지만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좀 심했다. 문재인 정부가 연일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며 대출을 옥죄던 지난해 여름, 10억 원의 은행 대출을 레버리지 삼아 전 재산을 올인한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지 8개월 만에 “쓰임새가 있길 바라는 마음” 운운하며 국회의원 욕심을 부리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부동산 광풍 속 그의 돌연한 정치적 컴백도 비상식적이지만 부동산 차익 기부라는 셀프 면죄부 방식의 밑밥 깔기는 더욱 기이하다. 지난 3월 대변인을 관두기 바로 전날만 해도 그는 “시세 차익을 보고 되팔아야 투기인데 청와대 나가면 살 집이라 투기가 아니다”고 강변했다. 또 “혼자 사는 팔순 노모를 전세 아닌 넓은 집에서 편하게 모시려 샀다”며 감성에 호소했다. 그런데 고작 1년 반 버텨 8억 8000만원의 차익을 실현하고는 “정부 정책의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 매각한다”는 누가 봐도 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꼼수를 내년 총선 출마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번에도 역시 “무주택자로 돌아가지만 초조해하지 않겠다”는 특유의 감성팔이는 잊지 않았다. 하지만 노모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청와대를 떠날 땐 효심 지극한 장남인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노모의 안녕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다.

이상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라디오며 TV에 나와 그렇게 열심히 기부 홍보를 해놓곤 “법에 저촉된다”며 여태 10원 한장 기부하지 않았다. 언론이 친절하게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며 법 조항을 적시하고 선관위의 유권해석까지 알려줘도 묵묵부답 요지부동이다. 장관 자리에 욕심이 나 펀드와 재단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장관직에서 물러나자마자 기부는커녕 쏜살같이 복직 신청을 해서 강의 한 번 없이 서울대 월급을 타간 조국 전 법무부 장관급의 뻔뻔함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보통 사람들 사고방식과 한참 달라 보이는 조 전 장관 가족은 그렇다 치고,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처럼 정도를 한참 벗어난 기자 출신의 행보를 지켜보기가 참 민망하다. 권력에 질문하던 자가 옷을 바꿔 입고 권력의 편에서 답변한다(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비판을 받았던 언론인은 꽤 있었어도 김 전 대변인처럼 권력과 돈과 명예 모두를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탐한 언론인은 기억에 없어서다.

짧게 맛본 권력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기자였는지 궁금해 그의 옛 칼럼을 하나하나 훑어봤다. 읽어보면 누구라도 쉽게 간파하겠지만 그는 문재인 청와대에 들어간 2018년 1월 한참 이전부터 이미 오래도록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의 대변인이었다. 그가 현직 기자 시절에 지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열린우리당 당적을 가졌다는 걸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문 대통령과 그 주변에 관해 쓴 글은 기자로서의 정당한 지지나 견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정파성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특히 2015년부터 2017년 문 대통령 당선 직전까지는 그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라면 반기문(‘반기문, 떳떳하다면 고소하라’ ‘반기문의 민낯’)이든 안철수(‘(보수 언론의) 안철수 띄우기’ ‘안철수, 끝내 분열의 길을 가다’ ‘안철수가 부산에 출마해야 하는 이유’)든, 심지어 같은 당 대표(‘김종인에게 더민주 대선주자들은 얼라들인가’)든 비주류 의원(‘비주류도 옥상 올라가 문재인과 맞짱을 떠라’ ‘더 이상 호남을 팔지 마라’)이든 가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비판하며 문재인을 엄호했다. 호남의 낮은 지지율이 걱정된 나머지 ‘호남이 그만한 여유(문재인 버리기)를 부릴 수 있는 처지냐’며 노골적으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세간에 알려진 대로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보도 때문이 아니라 지난 수년간 지속적으로 쓴 ‘문비어천가’ 칼럼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 청와대에 입성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부동산 올인 전에 이미 정치적으로 올인해 성공했고, 그 첫 번째 베팅이 성공한 덕분에 그의 두 번째 베팅인 부동산 올인도 성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는 이제 막 국회의원 출마라는 세 번째 베팅을 하려는 참이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올바르게 살아오려 노력했는데 투기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건 대단히 치욕적”이라며 명예 회복 차원에서 출마한다고 했다. 그의 세 번째 베팅이 성공해 금배지를 달지 실패로 끝날지 모르겠다. 다만 결과가 무엇이든 그의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하려고 한다. 고작 부동산 투기를 한 인물이 아니라 펜을 권력과 사리사욕의 수단으로 쓴, 지켜야 할 선을 넘은 언론인으로 말이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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