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검·경 수사 外傳

양은경 사회부 법조전문기자 2019. 12. 27.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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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경 사회부 법조전문기자

지난 3월 여주경찰서에 60대 남성 홍모씨의 사망 사건이 접수됐다. 부검 결과 사인(死因)은 '비장파열'이었고, 시신에도 멍과 상처가 발견됐다. 누군가에게 맞아 죽은 정황이었다. 함께 사는 50대 남성 박모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가족도, 직업도 없었으며 박씨가 홍씨 쪽방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다.

박씨는 "증거를 대라"며 범행을 부인했다. 의심은 가지만 증거가 없었다. 경찰은 '내사 종결'로 지휘해 줄 것을 검찰에 건의했다. 검찰이 도장을 찍으면 그대로 끝날 사건이었다.

검찰은 최초 신고자를 접촉해 두 사람이 사건 전날 치고받고 싸운 사실을 알아냈다. 경찰에는 박씨 행적을 조사하고 그의 휴대폰을 포렌식할 것을 지휘했다. 그 결과 박씨가 사건 직전 지인에게 "홍씨를 죽이겠다"고 하고, 사건 직후 "홍씨 배를 때렸다"고 한 통화 녹음이 발견됐다. 범행을 자백한 셈이었다. 홍씨를 쫓아내고 방을 차지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사람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은 검경의 협력으로 진상이 드러날 수 있었다. 검찰이 휴대폰 포렌식을 지시하기는 했지만 그에 따라 수백 개의 통화 녹음을 일일이 들어 본 경찰의 노력이 없었으면 사건은 묻혔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여권이 '국민을 위한 검찰 개혁'이라며 밀어붙이는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따르면 더 이상 이런 협력은 불가능해졌다. 수사 지휘가 폐지돼 검찰은 경찰이 무혐의 결론을 낸 후에야 사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것도 지금처럼 사건 자체가 검찰로 송치되는 게 아니라 무혐의로 판단한 근거 기록만 검찰에 오고, 변사(變死) 사건은 내사 종결하면 기록조차 안 온다. 기록이 올 경우 검찰은 90일 내로 검토해 경찰 수사의 위법 혹은 부당성을 지적해야 재수사 요구가 가능하다. 경찰이 '위법 부당하지 않다'고 하면 다툼이 시작된다. 재수사가 이뤄지더라도 경찰이 또다시 '혐의 없음' 결론을 내면 계속 핑퐁 게임을 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검찰이 추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보완 수사 요구를 하면 경찰은 '정당한 이유'를 내세워 거부할 수 있다. 경찰 수사 결과를 검찰이 한 번 더 점검할 수 있게 한 지금의 단순한 시스템 대신 점검이 가능한지를 두고 양측이 끊임없이 싸우게 만들어 놨다. 정권에 칼을 겨누는 검찰 대신 경찰에 막강한 권한을 주면서 이런 갈등 요소들이 생겨난 것이다.

홍씨 사건 수사팀은 "검경이 합동으로 무연고자 장례를 치러준 기분"이라고 했다. 이처럼 검경이 협력해야 진상을 밝힐 수 있는 사건들에서 앞으로는 복잡한 법체계와 모호한 개념들을 두고 계속 다투게 생겼다. 그 틈바구니에 홍씨 같은 무연고자나 변호사 선임비가 없는 서민들이 억울함을 풀기는 더 어려워졌다. '국민을 위한 검찰 개혁'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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