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가 지고 삼성이 뜨자 한일관계가 변했다

도쿄=공동취재단, 권다희 기자 2019. 12. 27. 04: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the300][일본에서 본 한국]①일본의 반한기류가 2010년대 부터 깊어진 이유

[편집자주] 15~22일 외교부 기자단 일원으로 '한일 기자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해 도쿄 등에서 다수의 일본 내 학자·언론인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이 한일관계에 대해 내놓은 분석 등을 추려 일본에서 본 한일관계에 대한 시각과 한일 현안 등을 소개합니다.

“한·일 월드컵(2002년), 겨울연가(2003년)가 있던 2000년대초는 (한일 관계가) 정점이었다. 2010년대 들어 비판적으로 변했다. 지금도 계속 내리막 길인 것 같다. 마찰이 많이 생긴다.”

일본에서 37년간 체류한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학대학원 교수(아시아태평양연구과)는 한일 관계 흐름을 이렇게 정리했다. ‘한일 기자교류 프로그램’으로 도쿄를 찾은 외교부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다. 일본 내 반한(反韓) 기류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전부터 서서히 심화해 왔다는 설명이다.

◇반한 기류는 2010년부터 본격화

일본 현지에서 만난 다른 전문가들의 진단도 유사했다. 사와다 가츠미 마이니치신문 외신부장은 현재 일본내 반한 기류가 ‘최악’이라고 평했다. “1999~2004년 서울 특파원으로 근무한 뒤 일본으로 돌아올 때만 해도 일본내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상당했다. 하지만 2010~2015년 서울 체류 후 다시 일본에 왔을 땐 안 좋은 쪽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일본내 여론이 급변한 배경엔 ‘흔들리는 일본의 위상’이 있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1980년대 미국까지 위협했던 경제대국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후 1990년대초 버블붕괴에 따른 장기 불황과 함께 중국의 부상을 경험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G2(미국·중국) 체제가 공고화된다. 2010년엔 일본이 중국에 세계 2위 경제국(국내총생산 기준) 자리를 내준다. 한국에 추격당한 시점이기도 하다.

2000년대말 스마트폰 보급이 본격화하며 삼성전자 영향력이 커진다. 반면 세계적 명성을 자랑했던 일본 IT(정보기술) 기업들은 쇠퇴한다. 소니도 2010년대 중반께 사업재편으로 ‘부활’하기 전까지 긴 적자의 늪을 헤맨다.

이종원 교수는 “삼성이 소니를 압도하는 게 화제였다”며 “일본 사람들이 방어적이 됐고 그때부터 ‘혐한’이라는 게 본격화했다”고 말했다.

◇한일관계 ‘상호보완’→‘상호경쟁’

더 오랜 구조적 변화도 있다. 한일 관계가 ‘상호보완’에서 ‘상호경쟁’으로 변했다는 진단이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학대학원 교수(종합문화연구과)는 1990년대 한일관계를 ‘비대칭적·상호보완적’으로 규정했다. 한일간 경제력 차이가 분명했고 공통과제(북한)가 있어 협력점이 뚜렷했던 시기다.

그러다 일본의 장기 불황, 한국의 고속성장·민주화가 겹치며 한일 관계는 ‘대칭적·상호경쟁’으로 바뀌었다. 기미야 교수는 “대칭적 관계가 됐다는 건 서로의 이해를 촉진 시키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너무 가까워지면 경쟁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구조적 변화가 1965년 이후 반세기간 형성된 한일관계의 균형을 흔드는 수준까지 왔다. 지난 7월 일본이 3개 반도체 소재의 대(對)한 수출관리강화 결정을 내린 게 대표적이다. 한일은 그간 역사 문제와 경제·안보를 분리해 대응해왔는데 이 불문율을 일본인 깬 것이다.

이종원 교수는 “우월한 일본의 경제력을 징용문제에 대한 카드로 공개 사용한 첫 경우”라며 “첨단기술에 대한 일종의 견제일 수 있다”고 했다. 한일간 경제에서 경합하는 부분이 늘어나며 생기는 균열의 한 단면이란 얘기다.

19일 와세다대 캠퍼스 내에서 기자단과 인터뷰를 진행 중인 이종원 와세다 대학 교수/사진=외교부 공동취재단



◇달라진 위상…민감해진 반응

위상이 달라지자 말한마디에 반응하는 일본 내 기류도 변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내 반한기류가 급격히 확산된 구체적인 계기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2012년 8월 10일)·천황사과 요구발언(같은 해 8월14일)을 꼽았다.

기미야 교수는 “일본은 1980년대까지는 한국이 뭐라 해도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그 이후엔 한국이 일본에 뭔가를 하면 무시하지 않고 대항하려고 한다. 일본의 심리가 좀 바뀌었다”고 했다.

이종원 교수도 “일본이 크고 강했던 1990년대 초까지는 여유가 있었다”며 “2010년대부터 일본이 약해졌다는 흐름이 있어서 방어기제가 작용하는 게 있다”고 했다.

고노 담화(1993년), 무라야마 담화(1995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1998년) 등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전향적 태도가 2000년대 이후 나오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이런 흐름 속 2012년 말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을 되찾겠다’는 구호로 선거 캠페인에 나서자 일본 유권자들은 환호했다. 이종원 교수는 “혐한론이 2000년대엔 일본사회 외곽에 있었지만 아베 총리가 이를 반영하고 주류 미디어마저 다루자 혐한론이 증폭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일본 내에도 세대간 격차가 존재한다. 일본 경제가 세계를 호령하던 ‘80년대 일본’을 기억하는 옛 세대와 ‘한국과 경쟁하는 일본’을 사는 젊은 세대간 차이다.

기미야 교수는 “젊은 사람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한국을 좋은 경쟁 상대방이라고 봐 거부감이 없다”며 “반면 어르신들은 ‘이젠 한국에 좀 밀리고 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등의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관련기사]☞생활고 알려진 뒤 슬리피가 BTS 진에게 받은 문자목에 걸린 ‘누런 가래’ 삼켜도 괜찮을까?양준일 "한국 도착 후 부인과 박수…매일이 꿈같아"박연수, 정주천에 이별 통보…"아직은 아이들 엄마"'감찰무마' 조국 전 장관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종합)
도쿄=공동취재단, 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