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부대서 3개월만에 숨진 아들들, 두 어머니의 절규

CBS노컷뉴스 박하얀 기자 2019. 12. 27.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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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만에 같은 부대에서 군인 2명 극단적 선택
유가족 "억울한 마음에 靑 국민청원에 글 올릴 것"..군에 진상조사·가해자 처벌 요구
공군본부, 가해 군인들 징계위에 회부조차 하지 않아

서산 공군 20전투비행단(20전비)에서는 지난해 11월과 올 2월 병사와 부사관이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아들을 잃은 두 어머니는 진상 규명과 가해 군인들의 징계에 소극적인 군에 맞서 손을 맞잡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 강제 야근시킨 중사 '무혐의'에 검사의 '무항소'까지

입대한 지 6개월만에 20전비 병사였던 최현진씨가 목숨을 끊은 것은 지난해 11월. 같은 부대에서 생활했던 병사들과 최씨의 학교 동기들에 따르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상사의 모욕과 협박 등으로 추정된다.

유가족은 초기에 부대 군인 3명을 가해자로 지목했다. 군 검사는 이들 중 2명을 법정에 회부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협박 등의 혐의를 받는 A소위는 벌금 20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A소위는 최씨에게 30~40차례 "고려대인데 실망이다", "너 또 찐빠 냈냐"며 무시하는 말투로 말한 혐의를 받는다. 또 최씨를 비롯한 병사들에게 "일을 한 게 있어야 휴가를 나가지", "휴가 자르겠다"고 말하며 협박하고, 최씨 등에게 매주 풋살장 예약을 지시하는 등 병사들 담당이 아닌 일을 시킨 혐의를 받는다.

고 최현진씨가 군 복무 당시 메신저를 통해 지인과 대화한 내용. 최씨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고 호소했다. (사진='고 최현진 학우 사건 공론화 TF')
최씨와 같은 운영통제실에서 근무한 B중사는 최씨 등 병사들에게 "야근 거부권이 없다"고 말하며 9차례 시간 외 근무를 시킨 혐의를 받는다. B중사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사는 항소를 하지 않았다. 당시 군 검사는 유족 측에 "선고 이후 새로운 판례가 나왔다"고 설명하며 항소 자체를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가족은 '가혹행위' 혐의로 소위와 중사를 추가 고소했지만, 검사는 또 불기소 처분했다. 이유는 '증거 불충분'이었다. 당시 검사는 "정확한 워딩이 없다, 비꼬는 말투나 심한 욕을 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아 가혹행위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증언을 할 수 있는 병사들은 가해 군인들과 여전히 같은 부대에 있다. A소위는 다른 부대로 옮겼을 뿐 여전히 같은 부대에서 복무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B중사도 해당 부대에서 계속 복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군본부 관계자는 "규정상 형사재판이 모두 끝난 뒤 징계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혐의가 있는 군인들과 병사들을 분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가해 군인들과 일반 병사들은 피해자-가해자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A소위를 다른 부서로 옮긴 것 자체가 어느 정도 분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항소'라는 군의 충격적인 대응에 최씨의 어머니는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충남 계룡대에 있는 공군 본부를 수차례 찾아가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아들이 다닌 고려대 앞과 광화문, 강남의 서점 앞에서도 1인 시위를 이어갔다. 지난 23일엔 공군본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나서야 담당 법무실장을 만날 수 있었다.

상황이 진척되지 않자 어머니는 지난 24일 A소위, B중사 등에 대한 재정신청을 하고 국방부에 민원을 넣었다. 유가족 측은 "공군본부도, 부대도 믿을 수 없으니 이번엔 이첩하지 말고 국방부가 직접 조사하라"며 유가족이 중요 증거자료라고 주장하는 업무분장서가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이유, 검사가 1심에서 항소하지 않은 이유 등을 국방부에 질의했다.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는 헌병대 수사관의 말을 처음에는 믿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군부대를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최씨 어머니는 "믿었던 군검사마저도 단장의 지시를 받는 일개 부하에 지나지 않았으며 군 부대의 수사는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고 있다"며 군을 비판했다. A소위 항소심은 오는 1월 9일 군사고등법원에서 진행된다. 공군본부는 "불기소 처분과 관계없이 재판이 끝나는 대로 가해 군인들에 대한 징계 처분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해 군인들 징계마저 '깜깜이'…억울함에 눈물짓는 유가족

최씨가 숨지고 불과 3개월 뒤인 지난 2월 같은 부대의 김모 부사관도 목숨을 끊었다. 김씨의 유가족은 김씨가 부대에서의 부당한 지시와 업무 부담에 압박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의 유가족은 지난 9일 20전비 소속 군인 2명을 고소하고, 군무관 1명에 대해선 진정을 냈다.

C준위는 연초에 하사들에게 생활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분기별로 한 번 하게 돼 있는 관제사례 발표를 임의로 시킨 혐의를 받는다. 최씨는 자아 비판 형식으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잘못한 것들을 10여 차례 발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C준위는 관제사례 발표를 시킬 권한조차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D준위는 휴가 제한 권한이 없음에도 김씨에게 후배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며 김씨의 보상 휴가를 세 달 동안 제한한 혐의를 받는다. E군무관은 김씨가 관제탑에서 근무할 때 "네가 군인이냐" 등의 발언을 하며 김씨를 질책한 혐의를 받는다. E군무관의 혐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아 진정서를 제출한 유가족은 관제실에 설치돼 있는 녹음 감청기에 주목하고 있다. 유가족은 "감청기를 분석하면 군무관이 어느 정도로, 얼마나 질책했는지 알 수 있는데 군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F상사는 김씨에게 "왜 이렇게 억울하게 생겼냐"며 '억울한 김00'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의 어머니는 취재진과의 전화 도중 가슴이 미어진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전화를 넘겨받은 김씨의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가해 군인들에 대한 징계가 아예 이뤄지지 않아 화가 난다"고 말했다.

당시 헌병대가 혐의가 있는 3명에 대한 징계를 의뢰했지만 검사는 징계 사유가 없다며 모두 '불요구 처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가족이 공군본부에 징계 상황을 문의할 때 관계자는 "오는 1월 초에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이라며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공군본부는 지난 11월 징계위에 회부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 가족들 만나 아픔 나누고 국민청원 준비, 전문가들 "'시스템 개혁' 필요"

최 병사와 김 부사관의 가족들은 지난 23일 대전에서 만나 서로의 아픔을 나눴다.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릴 글도 공유했다. 이들은 진상 규명과 가해 군인들에 대한 엄정한 처벌 등을 군사당국에 촉구하는 내용의 글을 조만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릴 계획이다.

가족들은 "기본적으로 잘못돼 있는 이 나라의 군 부대 시스템은 아직도 80년대에 머물러있다"며 "서산20전투비행단의 증거인멸과 수사축소, 은폐와 관련해 철저한 재수사를 요청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 아버지는 "너무 억울해서 청원이라도 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씨 어머니는 "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개인의 부적응과 나약함으로만 몰고간다"며 "수사 또한 가해자들이 속해 있는 군부대에서 이뤄지는 가혹한 현실에 피해자를 두 번, 세 번 죽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영문과 학생들로 구성된 '고 최현진 학우 사건 공론화 TF'가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에 군을 규탄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사진='고 최현진 학우 사건 공론화 TF')

두 군인의 안타까운 죽음에 학생들과 시민단체도 힘을 보태고 있다.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휴학생인 최씨의 대학 동기들은 '고 최현진 학우 사건 공론화 TF'를 만들고 학교 게시판에 군을 규탄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학생들은 대자보에서 "고인의 죽음 뒤에는 군 간부의 협박과 폭언이 있었지만 가해자는 벌금 200만원 만을 선고받았다"고 비판하며 "한 간부는 "결국 어디 가도 죽었을 애"라며 고인을 모욕했다. 군인이라고 인간의 기본적 권리와 존엄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2천여명이 연서명을 했다.

군 검찰 출신인 김정민 변호사는 "사건이 터졌을 때 군은 원인 규명을 하지 않은 채 간부들을 보호하며 사건을 덮기 급급하다"며 "군 조사기관은 망인이 (혐의자들에게)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추적해야 하는데, 물증이 없다며 무혐의 처분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또 "군이 수사할 때는 망인이 겪은 정신적 고통이 사람으로서 견디지 못할 정도인지 따지는 경우가 많다"며 "유족들에게는 '살인 사건'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평정, 병사 복무적응도 검사 등 군에서 만든 시스템이 최 병사와 김 부사관 사건 모두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가해 군인 소속 부대에서 사건 수사와 기소가 이뤄지는 시스템의 한계도 있다. 김 변호사는 "군 검사는 당해부대 소속으로 초급 계급이 배정되는 경우가 많고, 헌병대장은 당해부대 소속 사단장에게 평정을 받아야 한다"며 "부대 지휘관의 이익에 반하거나 심기를 건드리는 식의 공무집행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故최현진씨의 어머니는 2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계획이다. 군대 폭력 피해자 부모들과 만난 어머니는 "그래도 저 부모들은 아들을 지켜주고 있구나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계속 피켓을 드는 이유에 어머니는 "이렇게라도 우리 아들의 명예를 찾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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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하얀 기자] thewhit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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