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위해 세상 바꾼 엄마'.. 아직 끝내지 않았다

김재희 기자 2019. 12. 2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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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체인지메이커' 상 받은 김미영 한국1형당뇨환우회 대표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20일 베이비뉴스는 김미영 한국1형당뇨환우회 대표를 만나 그동안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일이 알려지면서 힘들었지만, 사회적인 관심도 받았죠. 환우회 안에서 결속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된 데는 혈당 관리 환경이 개선된 게 가장 커요. 삶의 질이 개선되니까 고발을 당했어도 결속하게 되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모여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자동주입기가 급여에 포함되는 등 좋은 방향으로 해결됐죠. 그분들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지난 20일 경기 수원시 하동의 한 카페에서 베이비뉴스와 만난 김미영 한국1형당뇨환우회 대표는 환한 얼굴이었다. 김 대표는 '아들을 위해 의료기기를 개조하다 범법자 된 엄마'라는 사연으로 지난해 여름 세상에 알려졌다. 국내 대기업 엔지니어 출신인 김 대표는 1형당뇨(소아당뇨) 투병 중인 자녀와 다른 1형당뇨 가족들을 위해 의료기기를 해외에서 직접 구입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무허가 의료기기 제조 혐의로 김 대표를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이 건에 대해 지난해 6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김 대표가 개인적인 이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을 참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19일 경기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현장을 방문해서 "소명이 어머니(김 대표)의 이야기는 의료기기의 규제에 대해 우리에게 깊은 반성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그 후 1년 반이 지났다. '지난 1년 반 동안 어떤 성과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가장 먼저 '내부 결속'을 꼽았다. 그러면서 "큰일을 혼자 겪었다면 안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인터뷰 전날인 19일 '2019 대한민국 사회혁신 체인지메이커'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다. 한국서부발전이 주최하고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주관하는 이 상은 사회혁신 활동을 통해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 발전에 기여한 개인에게 수여한다.

주최 측은 김 대표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1형당뇨 환아를 위한 영유아보육법 개정, 학교보건법 개정, 1형당뇨인들이 사용하는 혈당 측정기기 도입과 보험 급여를 추진하여 환우들의 걱정을 덜어주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 육상 방안' 발표 행사에 문재인 대통령은 김미영 대표와 아들 정소명 군을 만났다. ⓒ청와대

◇ '적극 소통' 식약처의 놀라운 변화… 교육부는 아직 '꽁꽁'

"식약처가 가장 많이 바뀌었죠."

김 대표는 '사건 이후 정부 변화를 체감하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언급했다. 지난해 조사과정이 김 대표를 힘들게 한 이유 중 하나는 식약처의 태도 때문이었다. 지난해 3월 서울지방식약청이 기자회견 이후 민원인 대기실에 입장하려던 김 대표와 취재진을 막고, 대기실 담당 부서를 찾는 이들에게 충청북도 오송에 위치한 식약처 본부에 허가를 받으라고 한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고발 사건을 계기로 김 대표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서 만성질환과 의료기기 분야를 대응하는 업무를 맡았다. 김 대표는 "식약처는 소통에 적극적"이라며 식약처장, 소통협력과 등과 간담회를 가졌음을 밝혔다. 최근 당뇨병 치료제 '메트포르민'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된 사건 때도 식약처가 환자단체와 소통해 빠르게 대처했다고 귀띔했다.

국무조정실의 적극적인 태도도 1형당뇨 환경 개선에 큰 몫을 했다. 국무총리실은 지난 6일 하반기 국무총리실 적극행정 최우수 직원 선발에 이흥권 정부업무평가실 과장을 선정했다. 소아당뇨 어린이 보호대책 후속조치와 함께, 연속혈당측정기·인슐린자동주입기 건강보험 적용에 힘썼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아직도 어려움을 느낀다.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확대 바람을 타고 변화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굳게 닫힌 문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 중 한 곳으로 '교육부'를 지목했다. 

한국1형당뇨환우회는 6월 국무조정실과의 간담회에서 '소아당뇨 어린이 보호대책'에 국공립 유치원 우선입학 정책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후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에 사실 여부를 공문으로 확인해달라고 유선과 민원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는 공문 발급 요청을 거절하고 '정보공개 청구를 하라'고 답했다. 공문은 교육부 장관 앞으로 민원을 넣고 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김 대표는 "담당자는 계속 바뀌고, 그때마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아시아·태평양 의료기기 콘퍼런스 메드테크 포럼에서 연사로 소개된 김미영 대표. ⓒMedTech Forum 2019

그런데도 해외 1형당뇨인 모임에게 김 대표는 희망의 증거다. 그가 바꾸는 한국 의료기기 정책환경을 해외에서 주목하고 있다. 사회 이슈가 됐다고 해서 정책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글로벌 커뮤니티에 우리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환자들과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곳을 연결해줄 수 있어 뜻깊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난 10월 7일부터 9일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의료기기 콘퍼런스인 메드테크 포럼(The Asia Pacific MedTech Forum 2019)에 환자단체 대표로 초대받아, 정부와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가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국제당뇨병연맹(IDF, International Diabetes Federation)의 콘퍼런스에서 인도의 1형당뇨인 청년 연합(DIYA, Diabete India Youth in Action)을 소개받는 일도 있었다.

◇ "1형당뇨 아이 돌보는 기관, 당연하지 않아… 장려책 마련됐으면"

김 대표와 한국1형당뇨환우회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의 기관과 이들 부모 사이를 중재하는 일도 한다. 김 대표는 "입소할 때뿐 아니라 아이가 재원 중일 때 부모와 기관 간에 갈등이 발생하는 사례는 여럿 있다"며 "기관도 낯설고 부모도 낯선 상황이지만, '처음엔 부모가 직접 가서 챙겨주다가 선생님이 익숙해지면 인수인계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면 조율이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 어린이가 1형당뇨 발병 후,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입소 거부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김 대표를 비롯한 운영위원들은 해당 어린이집에 이견 조율을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대화를 거부당했다. 

이번 사건으로 김 대표는 보건복지부에 ▲어린이집 간호사·간호조무사 겸임 현황 파악 ▲1형당뇨 아동 보육거부 어린이집 대상 사유 제출 의무화 ▲1형당뇨 아동 보육 어린이집 대상 장려책 마련 등을 요청할 계획이다. 어린이집 재원 중인 1형당뇨 아동이 안정적인 보육을 받게 하기 위해서다. 

김미영 대표는 20일 베이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형당뇨 아동 보육 어린이집 대상 장려책 마련'을 강조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원장이나 선생님들이 의지나 소명감이 없으면 아이들을 돌볼 수 없어요. 그분들이 당연히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저희가 외면하고, 보육하지 않는 분들께 화살을 돌리면 안 돼요. 환우회 부모님들을 만나면 '기관에서 아이를 봐주는 것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해요. 선생님이 책임 관련해서 문제가 된다고 하면 각서도 써주고, 공증도 받고,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려야 한다'고 말하죠." 

이 중에서도 김 대표는 '1형당뇨 아동 보육 기관 장려책 마련'을 강조했다. 환한 얼굴을 유지하던 김 대표가 눈시울을 붉힌 것은, 자녀 소명 군을 5년간 보살펴준 보육교사를 언급하면서였다.

"어린이집을 졸업할 때, 선생님이 '제가 조금 더 잘 돌봤어야 했는데 죄송하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소명이를 돌봐보니까 많은 보육이 필요하지 않았다'면서 '소아당뇨 아이를 다음에 만나면 더 잘 돌봐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한번 해보시니까 어렵지 않다는 걸, 다른 아이와 소아당뇨 아이들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소아당뇨 아이들을 보살펴줄 수 있는 분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김 대표는 "만약에 1형당뇨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연대할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더 들어줄 것'을 당부했다. 수요자 중심이 아닌 의사 결정권자 중심으로 만들어진 제도와 정책이 약자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저희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올해 슬로건이 '아파도 걱정 없는 세상'이었어요. 제도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사실은 정서적인 부분에서 아픔을 느끼는 게 많아요. 사회에서 거부당해서 우울증을 겪는 분이 많죠. 주변의 잘못된 인식에서 상처를 받은 거 때문이에요. 누구나 환자도 될 수 있어요. 병이라는 건 갖고 싶어서 갖는 건 아니잖아요. 아파도 걱정 없이 모든 사람이 똑같은 사람으로 대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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