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방향을 튼 박형철의 입

2019. 12. 2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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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조 전 장관이 전화가 많이 와서 힘들다고 했다” 조국 전 장관을 궁지로 내몬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왼쪽)이 2017년 7월1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차를 마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자신의 가족을 겨냥한 검찰 수사를 잘 버티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형사처벌 위기를 맞았다. 그가 청와대 민정수석일 때 현 정권 실세와 친분 있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을 중단시킨 것과 관련해서다. 12월2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이 청구한 조 전 장관의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지만, 권덕진 영장전담판사가 “범죄 혐의는 소명됐다”고 밝혀 재판에서 검찰의 공세를 방어하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동부지검의 영장 청구 의미

검찰은 조 전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일 때 유 전 부시장의 비리를 확인하고도 감찰 중단을 지시한 것으로 본다. 또 유 전 부시장의 사표를 수리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정한 뒤, 당시 유 전 부시장이 일하던 금융위원회가 이 결정을 따르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판단한다. 이런 행위는 청와대 특별감찰반과 금융위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고 의무에 없는 일을 따르도록 강요한 것으로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조 전 장관 쪽은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 중단은 정무적 판단이었다”고 반박한다. 조 전 장관은 12월16일과 18일 두 차례 있었던 동부지검 소환 조사에서 “정무적 최종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이 참여한 회의에서 감찰 중단을 결정했다. 이는 정무적 판단이기 때문에 형사책임을 질 일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청와대도 조 전 장관을 지원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검찰 영장 청구 직후 서면 브리핑에서 “당시 상황에서 검찰 수사를 의뢰할지 소속 기관에 통보해 인사 조치를 할지는 민정수석실의 판단 권한이며, 청와대가 이러한 정무적 판단과 결정을 일일이 검찰의 허락을 받고 일하는 기관이 아니다”라고 했다.

동부지검의 영장 청구는 역설적으로 서울중앙지검의 조 전 장관 ‘가족사건’ 수사가 검찰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검찰은 10월23일 부인 정경심 교수를 구속한 뒤에도 수사를 마무리하지 않고 조 전 장관 수사를 계속 진행했다. 부부 중 한 사람을 구속 기소하면 나머지 한 사람은 불구속 기소하던 관행을 따르지 않았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라는 명분 앞에 관행은 가볍게 무시됐다.

하지만 수사가 길어지면서 뒷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장관 수사가 무작정 길어지는 것은 그만큼 조 전 장관을 엮을 만한 게 없기 때문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장관 사퇴를 겨냥한 정치적 목적의 수사’라는 검찰의 수사 의도를 의심하는 말도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조 전 장관이 세 차례 소환 조사 때 모두 묵비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더는 수사 진도를 나갈 수도 없게 됐다.

궁지에 몰린 수사 숨통을 틔워준 호재

사모펀드 수사에서 조 전 장관을 부인의 공범으로 엮지 못한다면 검찰이 입을 타격은 만만치 않다. 사모펀드 의혹은 검찰이 ‘무리한 수사’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조 전 장관 수사에 착수한 가장 큰 이유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 전 장관 부부의 사모펀드 투자 의혹을 보고받고 수사를 지시했다는 것은 정설에 가깝다. 따라서 ‘가족사건’ 수사의 본류에 해당하는 사모펀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수사를 결심한 윤 총장의 능력과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감찰 무마 의혹은 궁지에 몰릴 수도 있는 ‘가족사건’ 수사의 숨통을 틔워줄 호재였다.

조 전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일단 구속하면 사모펀드 수사에서도 승부를 걸어볼 수 있다. 구속된 피의자는 방어권에 일정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 특감반 출신의 김태우 수사관이 2019년 1월에 고발했으나 열 달 가까이 캐비닛에 처박아뒀던 이 사건을 검찰이 부랴부랴 꺼낸 이유다. 명백한 ‘별건 수사’였지만 검찰이 살기 위해선 물불을 가릴 이유가 없다. 검찰 출신의 한 법조인은 “검찰이 피의자를 별건으로 구속한 뒤 본안 수사에서 승부를 거는 것은 오랜 수사 기법이다. 조 전 장관 수사도 전통적인 수사 기법을 따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감찰 무마 의혹 수사는 조 전 장관이 이끌던 민정수석실이 와해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발단은 김태우 수사관의 고발이었지만, 수사가 탄력받은 것은 민정수석실 간부들의 진술이었다. 조 전 장관을 궁지로 내몬 결정적 진술은 그의 직속 부하였던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과 이인걸 전 특감반장의 입에서 나왔다.

특히 “조 전 장관이 (유 전 부시장 감찰 관련) 전화가 많이 와서 힘들다고 했다”는 박 전 비서관의 진술은 ‘정무적 판단’이라는 조 전 장관 쪽의 해명을 무색하게 한다. 제3자의 청탁에 따른 감찰 중단을 정무적 판단으로 보는 건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진술은 검찰 수사의 양상도 바꿨다. 조 전 장관이 유 전 부시장의 비위 의혹을 어느 정도 파악했느냐에 집중됐던 검찰 수사는 이 진술을 계기로 누가 감찰 무마를 청탁했는지 밝히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박 전 비서관의 진술은 조 전 장관뿐 아니라 청와대까지 타격을 줄 수 있는 진술인 셈이다.

박 전 비서관의 사례는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민정2비서관을 지낸 김진모 전 비서관과 비교된다. 김 전 비서관은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 수사에서 자신이 형사처벌될 것을 감수하고 윗선에 대한 진술을 거부했다. 그의 묵비권 행사로 직속 상관이던 권재진 전 청와대 민정수석(법무부 장관까지 지냄)은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김 전 비서관은 국정원 특활비 5천만원을 받아 쓴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그는 구속된 뒤에도 윗선 지시와 개입 여부를 전혀 진술하지 않았다. 김 전 비서관은 2018년 6월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2013년 6월 윤석열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오른쪽)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박형철 부팀장과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고인 출석 알리지 않고, 조사 뒤 휴가

박 전 비서관은 진술 내용뿐 아니라 석연치 않은 행동으로 구설에 올랐다. 그는 동부지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할 때 청와대 민정수석실 직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는 검찰 조사를 마친 뒤 곧바로 휴가를 냈다. 직원들은 그의 검찰 소환과 진술 내용을 언론 보도로 알게 됐다. 박 전 비서관은 사표를 제출한 뒤 직원들에게 ‘내가 형사책임 질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12월16일 박 전 비서관의 사표를 수리한 뒤 그의 후임으로 이명신 전 김앤장 변호사를 임명했다.

청와대는 박 전 비서관의 행동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검찰을 견제해야 하는 민정수석실이 검찰 수사 앞에서 적전 분열 양상을 보인 것은 청와대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특히 박 전 비서관은 조 전 장관을 도와 검찰개혁을 추진할 적임자로 꼽혀 법무부 차관 발탁설이 나올 정도로 청와대의 신임이 두터웠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상관뿐 아니라 청와대 전체를 곤경에 빠트린 ‘배신자’ 신세가 됐다.

물론 박 전 비서관을 옹호하는 시각도 있다. 그와 윤석열 총장의 남다른 인연을 고려하면 그의 행동은 이해할 만하다는 것이다. 윤 총장과 박 전 비서관은 박근혜 정권 초기인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수사팀에서 팀장(윤 총장)과 부팀장(박 전 비서관)으로 함께 일했다. 국정원 댓글 수사가 박근혜 정권의 외압으로 좌초 위기를 맞았을 때 두 사람은 외압에 저항했다. 윤 총장은 당시 국정원 직원들의 체포영장 집행을 두고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갈등을 빚었다.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말라는 압력을 수사팀에 가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수사는 제대로 진행되기 힘들었다. 하지만 부팀장을 맡던 박 전 비서관은 수사 실무를 지휘하며 수사팀의 동요를 막았다. 윤 총장이 수사팀에서 쫓겨난 뒤에도 국정원 댓글 수사가 좌초되지 않은 데는 박 전 비서관의 역할이 컸다. 두 사람은 이후 검찰 정기 인사에서 좌천당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생사고락을 함께한 두 사람은 이후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댓글수사팀 팀장·부팀장… ‘윤 사단’의 의리

윤 총장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을 때 박 전 비서관이 느꼈을 기분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는 2017년 5월19일 당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브리핑했던 윤 총장의 프로필과 인사 배경을 직접 작성했다. 그는 몇몇 기자에게 당시의 소감을 “짜릿했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후 검찰 인사에서 ‘윤석열 사단’이 검찰 수뇌부를 장악하는 데 일조했다.

박 전 비서관은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가속되면서 주변에 괴로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조 전 장관의 신임과 윤 총장과의 인연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는 처지를 한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동부지검 소환 조사에서 검찰 선배와의 인연을 택했다. 그만큼 ‘윤석열 사단’의 의리는 끈끈하다. 조 전 장관은 박 전 비서관의 선택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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