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중앙SUNDAY

300만원으로 홀로 서라, 18세가 무서운 보호종료 아동

김홍준 입력 2019.12.28. 00:03 수정 2019.12.2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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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500명꼴 양육시설 등 떠나
정부선 3년간 월 30만원 자립수당
36%는 "치료비 없어 병원 못 가"
최소한의 품위 유지할 지원 절실
고대생들 아동 교육 위한 펀딩도

아이에게 물어봤다.

“요새 속상한 일이 뭐니?”

대답을 망설이던 아이의 목에 힘이 들어갔다.

“수능을 마치고 나오는데, 부모님이 안 계시는 것이요. 다른 애들은 부모님 손 잡고 집에 가는데….”

『이럴 때, 연극』을 쓴 최여정 작가가 전해준 이야기다. 그는 보호종료 아동의 멘토다. 최 작가는 “홀트아동복지회의 면접을 거쳐 2년 프로그램의 멘토가 됐다”며 “한번 잡은 손을 놓아버리면 더 큰 상처가 될 것”이라고 했다. 2년 뒤에도 멘토로 남겠다는 말이다. 그는 “애가 마음이, 몸이 아플 때 전화할 사람도 없다면 얼마나 막막하겠나”라고 덧붙였다.

아동복지법에는 아동 양육시설이나 공동생활가정의 보호에서 벗어나야 하는 나이를 정해 놨다. 18세다. 이런 보호종료 아동들은 이 나이에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한다.

고려대 학생 5명이 벌인 보호종료 아동을 위한 ‘보담 프로젝트’ 크라우드 펀딩 화면. 목표액의 2000%인 1000만원을 모았다.
#지난 21일 고려대. 사회학과 4학년 한경희(25)씨는 휴대폰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펀딩 목표액이 50만원인데, 1000만원이 넘었다”며 기뻐했다. 한씨를 비롯한 고려대생 5명은 보호종료를 앞둔 아동을 위한 ‘보담 프로젝트’를 꾸리고 있다. 목도리·커피·팔찌 등을 주는 대신 크라우드 펀딩을 했다. 3차례 펀딩에서 2500만원 가까이 모았다. 수익금은 자립과 교육에 쓰인다. 교육에는 장래희망 설계, 사회문제 해결 전문가가 나선다. 한씨는 “우리는 부모라는 울타리가 있는데, ‘친구’들에게 어른이라는 울타리가 없다”며 “위기나 재도약 시점에 기회를 갖도록 도움을 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펀딩에 참여한 최하영(24)씨는 “기부를 해도 되지만 확산성이 큰 펀딩을 택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보호종료 아동은 해마다 2500명 안팎이 생긴다. 2014~2018년 조사 대상 6254명 중 1637명(26.1%)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다. 정부는 지난 4월부터 자립수당으로 월 30만원을 지급해 왔다. 보호종료 2년 차 이내에서 3년 차 이내로 대상을 확대한다. 지자체별로 정착금 300만~500만원을 지원한다. 공공임대주택 우선 입주, 전세자금 대출 등도 있다. 하지만 지원금이 부족한 데다, 준비 없는 자립은 위험하다는 의견이 많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년 취업이 미뤄지며 자립 시기도 늦춰지는 추세인데, 법을 개정하거나특례법을 만들어 보호종료 연령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심 숭실사이버대학교 아동학과 교수는 “경제관념도 명확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지원금만 줘선 안 된다”며 “경제적, 심리적 자립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보호종료 연령은 한국과 비슷하다. 주별로 정책이 조금씩 다르지만, 퇴소 전인 10대 중반부터 자립계획을 세우도록 한다. 대학이나 기술학교 등에 진학하면 연 5000달러씩 지원한다.

#보호종료 아동은 곳곳이 사각지대다. 미성년자인 A(18)씨는 자신 명의로 휴대폰을 구입할 수 없다. 보육원 친구인 B(19)씨의 이름을 빌렸다. A씨는 매달 7만원인 통신비를 감당하지 못했다. B씨가 고스란히 갚아야 했다. 지원금이 담긴 ‘디딤씨앗통장’을 해지할지 고민이다. ‘보호종료 아동도 휴대폰을 개통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200명이 동의했다.

복지부가 지난 1년간 아픈데도 병원에 못 간 보호종료 아동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35.8%가 “치료비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보호종료 아동들이 노숙생활을 할 가능성이 2.7배 높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보호종료 아동의 대학 진학률은 40%가 채 안 된다. 전국 평균은 80% 선이다. 돈이 모자라니 교육보다 취업을 택한다는 말이다. 한 아동복지 전문가는 “자립이란 개념을 재정의해야 한다”며 “최저 생계를 이어나가는 자립이 아니라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자립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호종료 아동의 존재와 현실에 대해서 잘 모르는 국민도 많다. 보호종료 아동 스스로가 숨기도 한다. 기관에서 퇴소한 아동 10명 중 4명은 연락이 안 된다. 사회적 편견이 주된 이유다.

오는 28·29일에 보호종료 아동을 소재로 한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편견을 깨고 자립을 도와주는 아름다운재단의 ‘열여덟 어른’ 캠페인 중 하나다. 연극 초반, 보호종료 아동이 퇴소를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한다. 보육원 친구들이 그의 죽음을 추적하는데…. 이 연극의 대본을 쓴 박도령(27)씨는 보호종료 아동이다. 그는 “자립한 형들이 시설에 있을 때가 좋다고 말했는데,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며 “지금은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기분”이라고 밝혔다.

이 ‘아이들’과 ‘친구들’은 준비가 돼 있을까. 준비 후에도 사회가 품어줄 수 있을까. 한 보호종료 아동은 이렇게 말했다. “18세가 되기 싫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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