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나라" "못 믿을 나라" 등 돌린 이웃

입력 2019. 12. 28.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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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내년 수교 55주년, 거리 좁힐까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4일 중국 청두 샹그릴라 호텔의 회담장에 들어서고 있다.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한·일은) 잠시 불편함이 있어도 결코 멀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9년 최악의 한 해를 보낸 한·일 관계가 양국 수교 55주년인 2020년에 과연 정상화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24일 15개월 만에 정상회담을 가졌다. 또 양국 통상 당국 사이에서 3년 넘게 중단됐던 국장급 수출관리 정책대화가 재개되는 등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 국회에서는 한·일 기업 및 국민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이른바 ‘문희상 안’이 발의돼 양국 갈등의 뿌리인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일본 측은 ‘문희상 안’을 환영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의 반발과 국회 통과 등 넘어야 할 암초가 많다. 일본 내에서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인식에 따른 반한 감정이 커진 상황이어서 완전한 관계 회복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고, 내년에도 현재의 불편한 관계가 획기적으로 전환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수렁에 빠진 양국 관계

올해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 나온 데 이어 그해 12월 일본 초계기의 위협비행과 한국 구축함의 레이더 조사(照射) 논란이 불거져 올해 초부터 양국 관계가 얼어붙었다.

지난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어색한 짧은 악수만 나누고 정상회담 없이 헤어졌다. 이후 7월에 일본은 한국을 대상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종(고순도 불화수소, 포토 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수출 규제를 대폭 강화했고, 얼마 후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한국 정부는 8월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이라는 강수로 맞대응했다. 양국 갈등이 격화되면서 한국 내에선 반일 감정이 불붙었다. 일본 제품 구매와 일본 여행을 자제하자는 일본 불매운동이 활발히 벌어졌다.

그러다 지난달 22일 양국 간 막판 협의를 통해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 연기했다. 양국이 갈등 해소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을 최소한의 명분을 확보한 것이다. 그러나 강제징용이라는 역사 문제를 경제와 안보 분야로 확전시키면서 양국 관계가 파국에 가까운 상처를 입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울특파원으로 8년간 근무하는 등 지한파 언론인으로 잘 알려진 사와다 가쓰미 마이니치신문 외신부장은 “한·일 관계가 바닥”이라는 비관적인 진단을 내놨다. 사와다 부장은 지난 19일 한·일 기자 교류 프로그램으로 도쿄를 방문한 한국 외교부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자 선배가 몇 년 전에 ‘한·일 관계가 바닥인 것 같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다”며 “더 바닥이다. 건물은 지상은 알 수 있는데 지하는 모른다”고 말했다. 양국 관계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고,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냉정한 분석이다.

일본 내 반한 감정 팽배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커진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반한 감정이 우려할 수준에 이르렀다. 박근혜정부 때(2015년 12월)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가 문재인정부 출범 후 사실상 파기된 데 이어 강제징용 배상 판결까지 나오자 일본에선 한국을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로 보는 프레임(인식 틀)이 고착화됐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징용 문제가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와 대법원 판결을 준수해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인식 차는 여전히 큰 상황이다.

일본의 대표적 한국 연구자인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지난 17일 “일단 일본에서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 자체가 ‘국가 간 약속인 청구권협정을 어기는 게 아닌가’라고 본다”며 “일본 전범이 나쁜 짓을 했지만 그건 일단 1965년에 서로가 합의해서 해결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내) 많은 사람이 ‘한국은 약속을 어기는 나라, 골대를 움직이는 나라’라는 비판을 한다”고 덧붙였다.

남관표 주일대사는 “일본 내 혐한·반한이랄까 하는 분위기가 있다. 서점에 관련 베스트셀러 코너가 생길 정도”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 내 반일, 일본 내 반한 감정이 심각해질수록 정치적으로도 서로 양보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아져 갈등 해소는 더욱 어렵게 된다.

“아베 없어도 관계 회복 어려워”

국회 앞에서 지난 19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문희상 안’(강제징용 배상 해법)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법제화 배경과 선의를 오해하고 곡해하는 부분이 안타깝다”고 했다. 연합뉴스


국회에서 문희상 안이 발의됨에 따라 징용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왔지만, 통과까지는 암초가 산적해 있다. 일본에선 문희상 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30년 넘게 일본에서 한·일 관계를 연구해온 이종원 와세다대 대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과 교수는 “문희상 안은 외교적으로는 어떻게 좀 봉합할 수 있는 안”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징용 배상 판결로 압류된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를 해도 일본은 판결에 불복하고 받아들일 기미가 전혀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문희상 안에 대한 소송 당사자(징용 피해자)들의 비판은 ‘일본의 사죄가 없다, 판결을 무효화하는 것이다’라는 것인데 그런 부분은 사실 있다”고 말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를 둘러싼 국회의 혼란 때문에 아직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문희상 안은 사실상 국내 문제가 될 전망이다. 일부 피해자들이 “위안부 합의와 다를 바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불투명한 것이다.

사와다 부장은 “내년에도 한·일 관계는 아마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아베 총리가 물러나면 (양국 관계가)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오해다. 아베 총리가 없어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헌 기자, 도쿄=외교부 공동취재단 kmpap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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