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남' 이어 '절식남'..비혼 선택하는 남성 증가세

염유섭 2019. 12. 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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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업계에서 종사하는 직장인 남성 A(40)씨는 비혼주의자다. 약 8년 전 오랜 기간 교제한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그와 헤어진 뒤 비혼을 선언했다. A씨는 평일 퇴근 후와 주말마다 혼자 책과 영화 등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소득의 절반 가량을 저축했고, 최근엔 대출을 받아 서울에 작은 아파트도 샀다. A씨는 “부모님이 자녀 3명을 키우며 생계를 위해 많이 희생했다”며 “내가 일해서 번 돈을 오로지 나를 위해 쓰면서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정보통신(IT) 회사에 근무하는 남성 B(32)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는 20대 중반부터 비혼을 결심했다. 비혼을 선택한 B씨는 주말마다 서울 근교로 사진을 찍으러 다닌다. 월소득 300만원 가량인 그는 노후를 위해 절반 정도의 저축도 잊지 않는다. B씨는 “연애와 결혼을 하지 않아 돈과 시간을 오직 나만을 위해 쓰고 있다. 요즘은 카메라 장비를 수집하는데 돈을 많이 쓴다”며 “결혼을 해 자식을 낳으면 상당한 돈이 들고, 경제적으로 힘든 만큼 혼자 살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비혼을 선언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최근 본인 커리어를 위해 비혼을 선택하는 여성이 증가하는 가운데, 비혼을 택하는 남성들도 높아지고 있다. 연애와 결혼에 소극적인 ‘초식남’(草食男)이란 개념에서 이제는 무관심한 ‘절식남’(絶食男) 개념도 일본으로부터 건너와 한국 사회에 점차 번지고 있다.

◆한국 男 45.8% “꼭 결혼할 필요 없다”…3년 전엔 36.9%

2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결혼에 비긍정적인 국내 미혼 남성(20∼44세)의 비율은 점차 늘고 있다. 지난해 연구원이 미혼 남성 1140명에게 결혼에 대한 입장을 물은 결과, △반드시 해야 한다 14.1% △하는 편이 좋다 36.4%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39.2% △하지 않는 게 낫다 6.6%를 기록했다.  결혼에 비긍정적인 태도(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하지 않는 게 낫다)를 가진 남성 비율은 45.8%에 달했다. 2015년 연구원이 실시한 동일한 여론조사(2015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에서 결혼에 비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남성의 비율은 36.9%를 기록했다. 3년 만에 8.9%포인트나 증가한 것이다.
2017년 10월 통계청이 장래 가구 추계의 ‘혼인 상태 인구 구성비’를 통해 발표한 남성의 생애미혼율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은 남성의 생애미혼율이 2015년 10.9%에서 2025년엔 20.7%, 2035년 29.3%로 높아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생애미혼율이란 전체 인구 가운데 50세 전후까지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의 비율이다. 같은 기간 여성 추계율은 5%, 12.3%, 19.5%에 불과했다.

특히 남성 생애미혼율은 2035년쯤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됐다. 앞서 일본 국립인구문제연구소는 일본의 남성 생애미혼율이 2015년 23.4%에서 2025년 27.4%, 2035년 29%를 기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반면 같은 기간 여성은 14.1%, 18.9%, 19.2%로 증가할 것을 추계됐다. 즉 2035년쯤 한국 남녀의 생애미혼율은 일본을 근소하게 앞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 남성 미혼율, 일부 연령대에선 이미 일본 추월

한국 남성 미혼율의 경우 일부 연령대에선 이미 일본을 추월했다는 보고서도 있다. 지난 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청년층의 경제적 자립과 이성교제에 관한 한일 비교연구'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미혼인구 비율은 지난 20년간 급속히 증가했다. 특히 25∼29세 남성의 미혼율은 이미 일본을 넘었다.

우선 국내 남성 미혼율은 25∼29세의 경우 1995년 64%에서 2015년 90%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30∼34세(19%→56%) △35∼39세(7%→33%) △40∼44세(3%→23%) 연령층에서도 크게 올랐다. 각종 사회문화 현상이 한국보다 먼저 발생하는 일본의 경우, 1995년과 2005년엔 남성 대부분 연령대에서 미혼율이 한국보다 높았다. 그러나 2015년 일본의 남성 미혼율은 25∼29세 73%, 30∼34세 47%를 기록하는 등 한국보다 되레 낮아졌다. 특히 남성 25∼29세 미혼율은 한국보다 17%포인트나 낮았다.
이성교제 비율도 매우 낮았다. 이번 '청년층의 경제적 자립과 이성교제에 관한 한일 비교연구'에 따르면, 2012년 이성교제를 하는 비율은 남성 33%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일본 남성이 이성교제를 하는 비율은 29%였다. 또 연구원이 진행한 2018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미혼 남녀(20∼44세)의 이성교제 비율은 남성이 25.8%로 여성 31.8%보다 낮았다.

‘청년층의 경제적 자립과 이성교제에 관한 한일 비교연구’ 보고서는 “미혼인구 비율이 일본을 쫓아가고 있고, 결혼의 선행조건이라 할 수 있는 이성교제 비율이 일본과 비슷해진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혼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개연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 “한국 남성, 경제적 어려움과 가장으로서 부담감 직면” 

일각에선 비혼을 선언하는 남성 비율 증가는 가장으로서 남성에게 바라는 전통적인 기대감과 최근 한국 사회의 경제적 어려움 등이 맞물린 결과라고 지적한다. 즉 남성들이 가장으로서 부담감과 취업난과 집값 상승, 40대 명예퇴직 등 경제적 어려움이 맞물리면서 비혼을 선택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청년층의 경제적 자립과 이성교제에 관한 한일 비교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조성호 부연구위원은 “최근엔 다른 추세가 나타날 수 있지만 여성보다 남성이 직장과 소득 등 경제적 문제가 이성교제 여부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아직 우리나라에선 신혼집 마련 등 경제적인 안정을 찾기 전까지는 남성이 결혼하기 힘든 사회 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애는 결혼 전 단계인데 결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면 연애도 지금 상황에선 시기상조란 생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과)도 “남성들이 갖는 가장으로서 ‘일 중심’ 삶의 방식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남성은 여성들에게 (과거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했던) 정서적 지지를 원하지만, 여성들은 사회진출 등 삶의 방식 변화로 더 이상 그것을 해줄 수 없다”며 “결국 이로 인해 충돌하고 결혼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집 마련 등 결혼제도 안에서 남성에 대한 기대는 크게 변하지 않아 비혼을 선택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성 못지 않게 남성 미혼율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남녀 미혼율이 높아지면서) 출산율이 0.8%까지 떨어지고, 출산율이 낮은 일본과도 두 배 차이가 난다”며 “여성만큼 남성의 높은 미혼율에 대한 조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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