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생각하며 공인중개사 도전" 세월호 그 아버지의 부정

채혜선 2019. 12. 3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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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B씨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장례식장. [사진 세월호 유가족 측]
“아버지는 책임감이 남다르셨어요. 가장으로서 무게가 남다르셨던 분이셨습니다.”

30일 낮 12시쯤 경기도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장남 A씨(24)는 아버지를 이렇게 기억했다. A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4년 세월호 참사로 둘째 동생을 잃었고, 지난 27일엔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의연한 장남"이라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를 소개했지만 "생전 아버지를 소개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엔 잠시 목이 메는 듯했다.

B씨는 세월호 참사로 둘째 아들을 떠나보낸 뒤 남은 가족을 돌보기 위해 2017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했다. 부동산 관련 유튜버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A씨는 “아버지가 동생을 보내고 많이 힘들어하셨던 것 같다”며 “하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 사무실에 가보니 ‘아버지가 참 열심히 사셨구나’ 싶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수능 못 본 아들 위해 자격증 도전한 아버지
A씨는 세월호 참사 후 직장을 그만뒀던 아버지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에 도전하게 된 사연도 전했다. “동생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앞두고 그렇게 돼서 아버지 마음이 안 좋으셨던 것 같아요. 동생 대신 수능에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공인중개사 시험을 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수능을 앞두고 변을 당한 아들을 생각해 시험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A씨에 따르면 B씨는 2년 동안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해 2017년 제28회 시험에 합격했다. A씨는 아버지 권유로 공인중개사에 도전해 최근 제30회 시험에 합격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공인중개사 합격에 2년이 걸렸다는 그는 “아버지가 진로 얘기를 해주셨다”고 말했다. 장례식장에 모인 이들은 부자(父子)가 나란히 공인중개사에 합격했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참사 이후 힘들어했다”
지난 4월 16일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5주기 기억식' [중앙포토]
세월호 유가족들은 B씨가 세월호 참사 이후 힘들어했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상철 0416 단원고 가족협의회 트라우마분과장은 “B씨가 사망 전날까지 매물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면서도 “불면증약도 먹고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고 전했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 오랜 기간 힘들어했다는 것이다. B씨 휴대전화엔 참사로 떠난 아들 사진이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B씨 빈소엔 뉴스를 보고 전국 곳곳에서 찾아온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날 오전부터 이어졌다. 김병권 전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시민들에게 감사함을 나타내면서도 정치권을 향해서는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시민들이 세월호를 잊지 않아 주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하죠. 그런데 정치권은…. 세월호 참사 때 제가 느낀 건요. 이 나라는 1000명이, 1만명이 죽어도 그 누구도 책임지질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지금도 보세요. 청와대나 국회나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고…”


유서 대신 동영상으로 “미안하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지난 27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의 한 도로에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B씨 휴대전화에서 “갈 때가 된 것 같다.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동영상이 발견됐다.

경찰은 극단적 선택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B씨의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부검을 의뢰했다. 그 결과는 한 달 뒤 나온다.

안산=채혜선·최모란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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