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할머니 숫자가 '0'이 된대도..일본이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

글·사진 이준헌 기자 2019. 12. 3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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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전국의 소녀상들

“끝까지 싸워 달라.” 2019년 1월에 세상을 떠난 김복동 할머니의 유언이다. 여성인권운동가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 할머니는 이마에 송골송골 진땀이 맺히면서 온 사력을 다해 그렇게 말했다. 2011년 12월 1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현재 전국 360여 곳에 우뚝 서 있다. 전국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과 세상을 떠난 위안부 할머니 흉상을 사진으로 모았다. 내년에도 우리는 잊지 않고 기억하겠지만 피해 할머니들의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8월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수출 우대국 리스트인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시켰다. 이에 한국 정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결정했다. 국민들은 자발적인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이어갔다. 국가, 기업, 국민 등 모든 차원의 한일관계가 갈등으로 얼룩진 한해였던 것이다. 지난 1992년 1월 8일 시작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올해 말 1,419회째를 맞았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앞에 놓여있는 이미 만들어져 있던 할머니들의 흉상(왼쪽)과 지난 15일 새로 도착한 할머니들의 흉상이 마주보고 있다. 올해 5명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겨우 20명이다.

1천번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던 지난 2011년 12월 14일, 치마저고리를 입은 단발머리의 한 소녀가 일본대사관을 야무진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첫 평화의 소녀상 눈빛이었다. 혼자였던 소녀상은 2,940일이 지난 오늘(31일)까지 전국에 약 120여 개로 늘어났다.

10월 2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407차 정기 수요 시위’에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이옥순 할머니가 노래 ‘바위처럼’을 따라부르고 있다.
2018년 1월 1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정기수요집회 26주년 기념 집회가 열리고 있다.

매년 평화의 소녀상 지도를 제작하고 있는 <KBS데이터저널리즘팀>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세워진 소녀상은 2019년 8월 9일 기준으로 124곳이다.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세워졌던 소녀상은 2017년 이후 건립이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경기도에만 31곳에 소녀상이 있어 가장 많고, 권역별로는 전남이 14곳, 전북이 10곳, 광주 6곳으로 호남권에만 30곳에 소녀상이 건립됐다. 경상도는 22곳으로 집계됐다. 2년 전 일본 총영사관 앞에 놓인 소녀상과 강제징용 노동자상으로 한일 간 팽팽한 긴장 관계를 일으켰던 부산에는 2곳에 소녀상이 있다.(경기 31개, 서울 16개, 전남 14개, 경남 10개, 충남 10개, 전북 10개, 경북 7개, 광주 6개, 충북 6개, 강원 5개, 대구 2개, 부산 2개, 대전, 울산, 세종, 제주, 인천 각 1개).

경남 통영에 있는 소녀상은 바다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해있다.

개인과 학교, 각 지자체 등에서 추가 건립과 건립 예정 발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소녀상의 정확한 개수 파악은 쉽지않다. 전남 함평에서 지난 22일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고, 전북 장수군에선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20일 울산광역시 울주군의회 본회의에선 “시민 모금운동을 통해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해 살아있는 역사교육 학습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광주광역시 | 강원도 강릉 | 충남 보령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30cm 크기로 줄여 만든 작은 소녀상도 있다. 2016년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도끼’가 제안해 시작된 ‘작은 소녀상 설치 프로젝트’는 현재까지 240여곳의 전국·해외 중·고등학교에 설치됐고 확산 중이다. 지난 20일 경남 진주 진양고 교내에선 ‘작은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다.

충남 당진 시외버스터미널 앞 광장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강원도 속초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은 늘어나고 있지만 생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 올해에만 다섯 분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제 고작 스무분의 할머니만 남아계신 것이다. 그마저 고령으로 인한 건강문제가 염려되고 있다. 고 김복동 할머니는 생전에 “아직 우리에게 해방은 오지 않았다. 억울하고 원통해 죽을 수도 없다”고 했다. “언젠가 일본 정부가 사과하는 날이 오면, 그때 마음껏 웃겠다”며 미소를 아꼈다는 할머니도 결국 올해 1월 세상을 떠났다.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는 고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에서 “언젠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숫자가 0이 될 때, 일본 정부는 안심할지 모르겠지만 수백만의 나비들이 전쟁범죄자인 당신들을 향해 외칠 것이며, 그 목소리를 통해 할머니는 마침내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 익산역 앞 광장에 놓인 평화의 소녀상은 지난 2015년 졸속으로 맺어진 한일 협정문을 밟고 서있다.

전국 평화의 소녀상 중 16곳의 소녀상을 사진에 담았다. 서울에서 발뒤꿈치를 든 채 의자에 앉아 일본대사관을 응시하던 소녀는 부산에선 주먹을 꽉 쥐고 정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전북 익산에선 박근혜 정부 당시 졸속으로 만들어진 한일 일본군 ‘위안부’ 관련 협상문을 밟고 서 있었다. 비를 맞고 있던 광주의 손에는 누군가 잘 마른 깨끗한 낙엽을 올려두었다. 소녀상들은 시간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을뿐 하나같이 깨끗했다. 누군가 씌워줬을 때타지 않은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둘렀으며 장갑을 끼고 버선을 신고 있었다. 공간의 한구석에 방치되어 낡고 닳아있는 소녀상은 없었다.

글·사진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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