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이승만과 박정희의 말로를 보다

김대중 칼럼니스트 2019. 12. 31.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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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과 흥국의 대통령
장기 집권의 욕심과 민주주의 일탈로 허무하게 스러져
일방 독주 문 정권에 독재자 末路의 그림자가
김대중 고문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세운 초대 대통령이다. 그의 건국의 업적에도 그는 장기 집권의 권력욕에 집착하다가 국민 저항에 부딪혀 물러났다. 이승만의 말로(末路)를 재촉한 것은 단임으로 돼있는 대통령의 임기를 초대 대통령에 한해 3선을 할 수 있게 한 사사오입 개헌(1954년)이었고 대통령을 욕하면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의 날치기 통과(1960년)도 한몫했다. 마침내 이승만의 장기 집권 기반을 마련한 3·15 부정선거가 자행됐고 이에 분노한 4·19 국민 항쟁이 폭발했다.

박정희는 대한민국 삶의 기틀을 닦은 경제 부흥의 챔피언이다. 그는 비록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지만 전후 피폐한 국민 생활을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으로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그런 위대한 공(功)도 3선 개헌이라는 장기 집권의 욕심과 권력 독점에 따른 민주주의 일탈 등으로 허무하게 스러졌고 목숨마저 잃었다.

미국식 교육을 받은 이승만이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민주의 원리와 원칙을 어기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 역시 이승만이 어떻게 망했는가를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이승만이 갔던 장기 집권의 길을 답습해 독재의 전철을 밟다가 부하의 총탄에 쓰러진 것이다.

선지자들은 역사는 우연이 아니라고 했다. 역사는 지나간 것에서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치사는 앞의 것을 지우면서 지나간 것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의 기록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필연(必然)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류의 반목은 끊이지 않고 전쟁은 아무리 참혹해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정권 역시 그 '어리석음의 기록'에서 예외가 아닌 것 같다. 그들도 이승만 정권의 종말이 어떠했는가, 무엇이 박정희를 총탄의 제물로 만들었는가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전임자들의 원죄(原罪)가 권력에의 욕심이며 그 죄(罪)의 값이 파멸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 정권이 2019년 세밑에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법 제정을 강행하는 것은 역사의 무지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들은 달라서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자만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고서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이나 조국 구하기 따위를 감행할 수 없다.

이승만은 건국의 공이 있고 박정희는 흥국의 업적이 있다. 문 대통령은 그들에 비해 무엇을 내세울 수 있나? 오히려 문 정권은 정권 초기부터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경제는 포퓰리즘으로 멍들어가고 있다. 안보는 위태롭기 짝이 없다. 머지않아 미국은 떠나고 일본과는 등지고 이 나라는 중국권에 예속될 처지에 놓여있다. 평화 통일과 연방이라는 허울 아래 북한에 굴종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붙잡고 있는 가치관은 (북한과의) 평화뿐이다. 하지만 이념적 대결과 군사적 대치의 극을 달리는 한반도 상황에서 평화라는 구두선이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일 수 있는가? 인간다운 삶, 자유로운 삶은 맹목적인 평화보다 귀중할 수 있다. 진정한 인본주의자는 굴욕적인 평화보다는 전쟁을 택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문 정권은 나라를 완전히 두 동강 내고 있다. 어느 대통령이건 어느 정권이건 찬반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세상이 극렬하게 대립했던 기억이 없다. 박근혜 정부 때도 좌파 세력이 오늘의 보수 우파 세력이 느끼는 정도의 절망감, 분노, 허탈감을 가졌을까? 지금처럼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자괴감과 수치심을 느꼈을까? 자고 깨면 우리나라의 기본 구조와 삶의 기틀이 깨지는 것 같은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살았을까?

일부 논자는 여권의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 설치로 이제 한국은 망했다고 비관적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의회정치에서 의석수가 모자라 표결에서 패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산술적 해석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이승만이나 박정희가 국회의 의석수가 모자라 그런 최후를 맞은 것이 아니다. 그들을 권좌에서 몰아낸 것은 국회에서의 의석수가 아니라 권력자의 장기 집권 야욕이고 권력 비리이며 권력 내부의 불협화음이고 공직 사회의 이완이다. 지금 문 정권에서 그런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전임 대통령과 그들 정권이 겪은 불행한 역사를 되밟지 않는 순리의 길을 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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