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매장 대신 옷 가게 찾은 중국인들..휠라·MLB 'K패션' 돌풍

2019. 12. 31. 09: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국 관광객 필수 쇼핑 리스트로…시내 면세점 K패션 매출 최대 3배 증가


명동에 자리한 휠라 서울점/이승재 기자



#누가 명동이 한물갔다고 말했을까. 크리스마스 당일 방문한 명동은 거리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대부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하지만 상가마다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 관광객이 줄을 잇던 화장품 매장은 텅텅 비어 있었고 패션 브랜드 매장은 방문객으로 넘쳐났다. 면세점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화장품과 럭셔리 매장으로 모이던 관광객들이 휠라·MLB 등 토종 패션 브랜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K패션이 K뷰티의 후계자로 떠오르고 있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해외에 진출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몇 년 전과는 다르다.

‘스트리트 패션’이 전 세계 패션 시장을 주도하는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휠라와 MLB 등 국내 스포츠 웨어 브랜드와 오아이오아이(oioi)·널디 등 온라인부터 시작한 디자이너 브랜드가 주축이 되고 있다.

패션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며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에게 통하는 브랜드가 해외 소비자들에게도 호응을 받고 있는 셈이다.

국내 패션 브랜드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필수 쇼핑 리스트로 자리 잡았다. 현지보다 저렴한 가격과 부가세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이 있어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명동에 자리한 휠라 서울점은 최근 명동에서 가장 붐비는 매장이다. 1층과 2층을 가득 채운 중국인 관광객들은 미리 캡처해 온 상품을 직원들에게 보여주며 맞는 사이즈를 요구했다.
“사이즈는 모르지만 키는 이 정도”라며 중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선물할 제품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항저우사범대에 재학 중인 리우야오 씨는 “인스타그램·샤오홍슈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휠라 제품이 많이 보여 예쁘다고 생각했다”며 “중국보다 한국 매장에 제품이 더 많고 3만원 이상 구매하면 바로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어 중국인들에게 한국 여행 필수 코스로 꼽히고 있다”고 말했다.

◆‘어글리’ 트렌드 저격한 휠라

중국인들이 K패션 브랜드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트렌드에 부합하는 디자인과 가성비다. 휠라·MLB·널디 등 최근 떠오르고 있는 K패션 브랜드는 5만~30만원대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진입 장벽을 낮췄고 독특한 디자인을 내세우며 개성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을 사로잡고 있다.

뷰티와 패션 정보를 공유하는 중국 SNS ‘샤오홍슈’에도 ‘디자인’과 ‘가성비’에 대한 칭찬이 가장 많다. 샤오홍슈에 휠라를 검색하자 4만 개가 넘는 게시 글이 떴다. 대부분이 “발렌시아가 어글리슈즈 느낌이 나는 세련된 디자인이다”, “운동화 굽이 높아 키가 커 보이고 다리가 길어 보인다”며 디자인에 대한 글이 가장 많았다.

외국인들로 북적이는 휠라 서울점/이승재 기자



휠라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휠라는 2016년부터 젊은 층을 겨냥한 과감한 브랜드 리뉴얼로 승부수를 띄웠다.

1990년대 휠라 로고를 활용한 ‘헤리티지 라인’이 휠라의 부흥을 이끌었고 어글리슈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단일 브랜드로 휠라의 2019년 글로벌 실질 매출액은 약 5조원에 달하고 2020년 6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 역시 상승하고 있다. 휠라는 스포츠 브랜드로서는 이례적으로 밀라노 패션위크에 참여해 단독 쇼를 개최했고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와 협업했다. 펜디는 컬렉션 아이템 중 일부 디자인에 휠라 고유의 ‘F’ 로고를 접목했다. 휠라가 가진 젊은 이미지로 시너지를 내기 위해 펜디에서 먼저 제안한 프로젝트였다.

휠라가 체계적으로 구축해 온 글로벌 운영 전략은 가장 큰 경쟁력이다. 휠라코리아는 2007년 휠라 글로벌 본사 인수 당시 글로벌 운영 전략을 새로 짰다. 자회사인 휠라 USA를 제외하고 전 세계 주요 시장에 가장 적합한 파트너를 발굴해 라이선스 계약을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이 때 휠라는 합리적인 로열티 수준과 긴 계약기간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현지 파트너사가 각 시장 상황에 적합한 전략을 펼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부여하고 나라별 안정적인 비즈니스 운영과 글로벌 시너지를 도모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글로벌 운영 전략은 브랜드 인수 10여 년이 지난 지금 뚜렷한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자회사 휠라USA로, 중국은 현지 스포츠기업인 안타스포츠(ANTA Sports)와 합작 투자해 설립한 조인트벤처인 풀 프로스펙트(Full Prospect)를 통해 현지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외 국가에 라이선스 모델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각 나라마다 현지 상황에 맞는 유통망을 구축하고 마케팅 전략을 짤 수 있던 비결이다.

휠라코리아 관계자는 “보통 라이선싱 계약 기간이 짧게는 1년에서 3~5년인데 비해, 휠라는 5년에서 10년의 기간을 제공하고 있다”며 “장기 파트너십 계약은 현지 상황에 따른 전략적인 운영으로 브랜드 위상을 높이고, 이는 자연스레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면세점 평당 매출 1위 MLB



휠라와 함께 최근 K패션 중심에 서 있는  브랜드는 MLB다. MLB는 중국 소비자들의 수요가 증가하자 2019년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2019년 8월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현지 최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박람회인 ‘요후드(YOHOOD)’에 참가했다.

MLB 측은 “2일 동안 약 6만 명 이상의 중국 밀레니얼 세대들이 MLB 라운지를 방문했고 중국의 주요 대리상들 역시 지역별 사업 계획서를 제출하고 MLB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보였다”고 밝혔다.

MLB는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롯데 소공점, 두타, 신라 장충점, 신세계 명동점 등 주요 면세점에서 럭셔리 브랜드를 포함한 패션·액세서리 카테고리에서 평당 매출 1위를 기록해 무서운 성장세를 자랑했다. 또 중국 대표 SNS 채널인 위챗에서 MLB의 하루 검색량만 150만 건을 기록했다. 이는 나이키와 비슷한 수치이며 아디다스·휠라보다 2~4배 높은 기록이다.

MLB는 2018년 홍콩·마카오·대만·태국의 성공적인 진출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마케팅을 추진해 왔다. 2019년엔 글로벌 e커머스 기업인 중국 알리바바그룹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중국 진출을 가속화했다.

특히 2019년 6월부터 약 2개월간 알리바바 온라인 쇼핑 플랫폼인 티몰에서 MLB 플래그십 스토어 소프트 오픈 기간 동안 총 방문자 수는 355만 명 이상을 기록해 높은 인기를 얻었다. 800개가 넘는 브랜드들이 입점해 치열하게 경쟁 중인 스포츠 캐주얼 의류 카테고리에서 총결제 금액 순위 13위로 급부상했다.

MLB 명동 매장에서 만난 쉬판판 씨는 “MLB는 처음에 판빙빙, 안젤라 베이비 등 연예인들이 쓰고 나오면서 유명해졌다”며 “똑같은 디자인인데 중국에서는 400위안(약 6만6000원)에 판매하는 제품이 한국에서는 반값”이라고 말했다.

면세점에서도 K패션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2019년 1~11월 롯데·신라·신세계 등 서울 시내 주요 면세점 내 K패션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최대 세 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패션 대기업 브랜드뿐만 아니라 아크메드라비·널디·오아이오아이 등 국내에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성장한 디자이너 브랜드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신세계 시내 면세점은 2019년 1~11월 ‘K패션’ 누계 매출액이 전년 대비 175% 증가했다. 브랜드별로 살펴보면 2019년 1월부터 11월까지 MLB가 151%, 널디가 365%, 파인드카푸어가 146% 성장했다.

오아이오아이는 국내 면세점 매출이 전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했고 롯데·신세계·신라 등 3개 온라인 면세점에서 월 25만 달러(약 2억9000만원)의 매출을 기록 중이다. 아크메드라비는 2019년 매출이 전년 대비 10배 이상 늘어났다. 2019년 500억원 중반의 매출을 올린 아크메드라비는 면세점 매출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한국 화장품의 위상을 한국 패션브랜드가 이어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은채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화장품에서 나타났던 한국 소비재 브랜드 파워가 최근 패션에서 감지되고 있다”며 “로컬 브랜드가 강한 여성복이나 남성복보다 해외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스포츠’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7호(2019.12.30 ~ 2020.01.05) 기사입니다.]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