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침묵, 조응천의 유감..민주주의 걷어찬 민주당의 압박
#1. “당분간 조용히 지낼 생각입니다.” 기권표를 낸 밤 A가 말했다.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자’가 삶의 철칙이라던 A다. 같은 집단에 속한 120여명 중 그만큼 공개 발언을 많이 하는 이도 드물었다.
침묵의 뒤에는 내적 고민도 있는 듯싶었다. 사정을 잘 아는 내부인은 “A가 기권표를 내기 전 지도부를 만나 ‘반대는 하지 않겠다. 결과에 영향을 준다면 기권 대신 찬성하겠다’고 사전에 알렸다”고 전했다.
#2. 같은 날 밤 B는 “무거운 마음”을 고백했다. 그는 기명 투표에서 찬성을 눌렀다. 4시간 뒤 “무거운 마음은 찬성한 내용이 내 생각과 달랐기 때문”이라며 “유감스럽게도 오늘 찬성한 안은 몇 가지 우려가 있다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는 공개 글을 썼다.
B는 “다시 한번 우려를 표했지만 치열한 논쟁 끝에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의 찬성표를 “결론 승복”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 지도부 접촉이 포착됐다. 투표 세 시간 전 B의 사무실에서 한 지도부 인사가 나와 “분위기 좋았다”고 말했다.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통과 전후 장면들이다. A와 B는 민주당 내 공수처 반대자였던 금태섭·조응천 의원이다. 두 반대론자 중 금 의원은 ‘기권 후 침묵’을, 조 의원은 ‘찬성 후 유감’을 택했다. (전후 사정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등장인물과 법안 이름을 뺐다.)
금 의원은 평소 “익명 멘트는 안 한다”고 말하는 소신파다.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를 주장하다 당에서 유일하게 기권표를 던지고 입을 닫았다. 민주당이 주도한 '4+1' 수정안의 공수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갖는다. 조 의원은 두어 달 전 “수사권, 기소권을 다 가진 기관이 (검찰) 하나로도 삼엄한데, 둘씩 생기면 나라가 어찌 되냐”고 했다.
검사 출신인 두 의원 주장을 편들 생각은 없다. 결과 대신, 과정을 얘기하고 싶다. 민주당 지도부는 공수처법을 당론으로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검찰 개혁이라는 '그들만의 명분'에 집착해 다양성이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걷어찼다. 소수 의견을 이탈표로 규정해 압박했다.
“명시적 공천 위협은 없었다”, “충분히 존중했고 선택은 본인들이 했다”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원내대표와 총선기획단장이 총선을 3개월여 앞두고 초선 의원에게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무엇인지는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지난 10월 기자들과 만나 “튀는 목소리를 가진 의원들이 있는 게 우리 당에 나쁘지 않다. 건강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강행과 독주는 더불어(공존)와 민주의 반대말 아닌가.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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