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게임·여행도 수행..'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죠

허연 2019. 12. 31. 16:18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PC게임 즐기는 원제스님
'나'는 극복해야할 대상 아니고
고민 해법 밖에서 찾으면 안돼
대학 졸업식날 해인사로 출가
'질문이 멈춰지면..' 출간
"대학 졸업식에 안 가고 해인사로 출가했죠. 홍대 앞에서 여자친구에게 엄청 혼났어요."

경북 김천 수도암에서 수행 중인 원제 스님(40)이 요즘 신선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PC게임을 하는 스님으로 유명하다. '몽크원제'라는 게임 닉네임으로 유명하다. 초짜 스님 시절 세계 일주도 수행이라며 2년여에 걸쳐 세계 45개국을 여행한 배낭여행가이기도 하다.

언뜻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그는 한국불교 대표 선지식인 법전 스님 제자로 선방수좌 생활을 시작했다.

"서강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했어요. 워낙 진리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수천 년 수행의 역사와 수많은 선사가 있는 불교에 끌렸어요."

스님은 "게임도 곧 수행"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지만 그 안에 시간과 공간, 존재와 기억 같은 요소가 숨겨져 있다는 것.

스님은 이른바 '자유'를 가장 중시한다.

"영어 사전에서 'freedom'을 찾으면 열 몇 번째 설명에 '공짜'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자유는 공짜인 거죠. 원래 공짜로 주어져 있던 건데 우리가 제대로 쓰지를 못하고 있는 거죠. 고정관념이나 욕망 같은 것이 자유를 방해하고 있어요."

그는 성철 스님을 보면서 "수행을 하면 자유로워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보통 어디에 걸리지 않는 걸 자유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어디에 걸리는 게 자유라고 생각해요. 어디에 걸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그것이 결국 궁극의 자유예요. 저는 인연에 걸리면 걸리는 대로 살고 싶어요. 진정한 자유를 얻으면, 살면서 얻은 상처도 자연스럽게 사라져요."

스님은 최근 책을 냈다.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불광출판사)라는 책이다. 그는 2006년 출가한 이후 2011년부터 틈틈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됐고 그 글들을 모아 이번에 책으로 냈다.

"대학 때 소설을 썼어요. 중단편을 10여 편 썼죠. 그런데 출가를 하고 나니까 소설을 못 쓰겠더라고요. 소설은 허구잖아요. 그 자체로 진실일 수 없는 거죠. 그래서 그냥 산문을 쓰기 시작했어요."

책에는 그가 독창적으로 발견한 지혜롭고 평화로운 삶을 사는 비결이 담겨 있다. 그의 말은 종종 '힐링(healing) 법문이 아니라 킬링(killing) 법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만큼 정공법이고 직설적이다.

"선(禪)은 의심의 수행입니다. 눈앞에 있는 감각 대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 내부에 있는 마음의 눈으로 의심해야 해요. 선은 속지 않는 거예요."

그는 불교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불교가 세상을 좀 늦게 인식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겸손하지는 않지만 솔직해요. 스님이면 무조건 존경하는 분위기도 인정하지 못하겠어요. 그리고 불교도 바뀌어야 해요. 세상의 흐름과 함께 가야죠. 스님이면 '차(茶)'를 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스님이 커피를 하면 안 되나요."

스님은 "단 한 번도 출가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지금 사는 삶이 너무 좋은 이유는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고민을 들고 저를 찾아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제가 하는 역할은 화살표를 돌려 주는 거예요. 밖을 향하거나 남을 향해 있는 화살표를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거죠. 모든 문제는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예요. 밖에서 찾으면 답이 없죠. 화살표를 자신에게 돌리면 흔들림이 없어져요. 나는 이기거나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예요. 바꿔야 할 대상도 아니고요.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죠."

[허연 문화전문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