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공수처 '사건 뭉개기'땐 강제 수사..이첩요구 거부할 수도

조권형 기자 입력 2019. 12. 31. 16:53 수정 2019. 12. 3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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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법 통과 이후-검찰의 대응 카드는]
檢, 사건 이해관계자 고소땐 수사 치고 들어갈 명분 생겨
범죄사실 공수처에 통보하며 즉시 수사 착수할 가능성도
막강 권한 가진 두기관 갈등땐 형사사법시스템 파국 불보듯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이 지난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검찰의 기소독점권이 창설 71년 만에 깨지게 됐지만 양 기관이 수사·기소권한을 내세워 갈등을 빚을 개연성이 높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3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국기게양대에 태극기와 검찰기가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검찰 고위간부에 대한 수사계획을 밝힌다. 그러자 검찰이 공수처장을 살인교사, 차장을 직권남용·뇌물수수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이에 공수처의 업무가 한동안 마비된다. 이후 공수처가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를 비리 수사 대상으로 지목한다. 이에 검찰이 공수처 차장을 위증 혐의로 체포하고 처장에 대한 수사에도 착수한다. 두 기관 간 갈등이 심화하자 대통령이 공수처 지휘부를 교체한다.
위의 사례는 지난 2009년과 2015년 인도네시아 부패근절위원회(KPK)와 경찰 사이에 발생한 일이다. 공수처를 부패근절위원회로, 검찰을 경찰로 바꾸면 된다. 인도네시아의 부패전담 수사기관인 부패근절위원회는 독립기관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 오는 2020년 7월 출범이 예정된 우리나라의 공수처와 지위와 권한이 유사하다. 따라서 인도네시아와 같은 수사기관 간 갈등 상황이 우리나라에서도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1일 법조계에서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공수처와 그에 대응할 권한을 역시 가진 검찰이 갈등 관계로 치달으면 파국적인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만약 두 기관이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며 협조한다면 형사사법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겠지만 특정 사건을 두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상대가 권한을 남용한다고 판단한다면 언제든 수사로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가장 검찰이 강경하게 나올 것으로 예측되는 부분은 공수처의 ‘사건 뭉개기’에 대한 견제라는 분석이다. 전날 통과된 ‘4+1 협의체’의 공수처법안에 따르면 수사기관들은 고위공직자 범죄사실을 인지하면 공수처에 즉각 통보해야 하며 이에 대해 공수처는 수사개시를 할지 말지 판단할 수 있다. 또 공수처는 수사기관이 이미 착수한 사건에 대해서도 이첩을 요구할 수 있다.

만약 공수처가 이러한 권한을 통해 범죄정보나 사건을 이전해가서는 수사를 한없이 지연시키거나 하면 검찰이 공수처에 대한 수사에 나서 견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수사가 지연되는 사건과 관련해 공수처장이나 공수처 검사에 대한 직무유기·직권남용 혐의 고소·고발이 검찰에 들어오면 압수수색, 소환조사 통보 등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사건 고소·고발 당사자나 수사에 이해관계자 있는 사람이 검찰에 고발하면 얼마든지 수사로 치고 들어갈 명분이 생긴다”고 말했다.

또 공수처가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할 것이라는 신뢰가 애초부터 없다면 수사기관들은 고위공직자의 범죄사실을 인지했을 때 공수처에 통보하는 것과 동시에 수사에 착수할 수도 있다. 압수수색이나 소환조사 등 강제·임의수사를 함으로써 공중에 ‘이런 사건이 있다’고 알리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공수처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사건을 고스란히 가져가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한 차장검사는 “공수처가 계속해서 잡음을 일으킨다면 기업의 횡령·배임 수사를 하던 도중 고위공직자 범죄 단서가 나오더라도 인지 자체를 안 하는 식으로 행동양식이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공수처가 검찰에 기존에 수사가 진행 중이던 사건의 이첩을 요구할 때 검찰에서 아예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장은 사건 이첩 요구 시 ‘수사의 진행 정도 및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춰’ 판단하도록 돼 있는데 검찰 측에서 ‘해당 조항에 비춰 볼 때 적절하지 않다’며 거부의사를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법안에서는 수사기관이 이첩을 거부하더라도 이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직 검찰 간부가 나서서 공수처법을 예리하게 파고들어 헌법소원을 낼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를 사실상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 ‘컨트롤타워’로 만든 이번 법안이 검찰을 종속시킨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다면 솔선수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7년 ‘검찰총장은 퇴임 뒤 2년 동안 공직에 임명될 수 없다’는 검찰청법 조항에 대해 전직 검찰총장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 위헌 결정을 받은 바 있다. 한 검찰 간부는 “사상 초유의 권한을 가진 공수처는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기구”라며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기관이 온 나라의 범죄정보를 전수 통보받도록 한 것은 반드시 바로 잡혀야 한다는 게 검사들의 중론”이라고 지적했다./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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