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총사퇴도 못하는 한국당

최승현 정치부 차장 2020. 1. 1.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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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정치부 차장

더불어민주당과 범여(汎與) 군소 정당의 불법 협의체 '4+1'이 지난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을 일방 통과시키면서 자유한국당이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했지만 도리어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총선을 4개월여 앞둔 임기 말 의원직 총사퇴가 별다른 의미가 없을뿐더러 절차상 현실화될 가능성도 희박하기 때문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의원직 사퇴가 확정되려면 회기 중에는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과반(過半)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 등이 이런 표결에 참여해 공연한 정치적 논란을 만들 이유가 없다. 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31일 "한국당이 할 일은 의원직 사퇴 결의가 아니라 조속히 민생 법안 처리에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회기가 아닌 경우 문희상 국회의장이 의원직 사퇴를 허가할 수 있지만 문 의장 또한 그런 결정을 할 리 없어 보인다. 의장실 관계자는 "의장이 한국당의 '정치적 쇼'를 거들어주는 일을 할 리가 있겠냐"고 했다. 우리 헌정사에서 의원직 집단 사퇴가 실제로 이뤄진 것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 당시 민중당 소속 의원 8명 사퇴가 유일하다.

이런 상황인데도 지난 30일 한국당 의원 상당수는 의총에서 "문 의장과 민주당이 공조해 진짜 의원직 총사퇴가 이뤄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 "여당의 폭주를 막기 위해 원내 투쟁이 계속돼야 하는데 함부로 의원직을 그만둘 수 없다"며 총사퇴 제안에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총선을 앞두고 현직 의원 신분을 유지해야 공천 국면이나 선거운동 과정에서 유리하다는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지도부의 느닷없는 '의원직 총사퇴' 제안도 우스운 일이었지만 이를 두고 '정말 사퇴가 받아들여지면 어쩔 거냐'고 따지는 의원들의 항변은 '웰빙'과 '보신(保身)'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한국당의 현주소 그 자체였다.

황교안 대표는 공수처법과 선거법 개정안을 막기 위해 수십 차례 "죽기를 각오하겠다" "목숨을 걸고자 한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국회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되는 동안 한국당 의원들은 무기력하기만 했다. 심지어 30일 공수처법 통과 과정에서는 '육탄저지'마저 하지 않고 구호 몇 번 외치고는 슬그머니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며칠 전부터 '4+1' 내부의 균열이 표면화됐지만 한국당 원내 지도부는 물밑 협상을 통해 이런 틈새를 파고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투쟁도, 전략도 완벽한 패배였다. 뒤늦은 '총사퇴' 쇼로는 더욱 싸늘해진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 '집단 불출마'를 선언할 게 아니라면 냉정하고 차분하게 총선 준비에 전력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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