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시시각각] 이제 윤석열 하나 남았다
국회는 슬그머니 '여대야소'가 돼
윤 총장이 권력 견제, 균형의 보루
두 책에 공통으로 노무현 정부가 하지 못해 가슴 아픈 일로 기술된 게 있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운명이다』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수사권 조정도, 공수처 설치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공수처 수사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시킨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면, 국회의원을 빼고서라도 제도 개혁을 했어야 옳았다.’ 『운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사법개혁 틀 속에 넣어서 추진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 (중략)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도 마찬가지다. 검찰에 대한 견제 방안이 될 수 있었으나 국회의 벽에 막혀 입법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한(恨)을 풀게 됐다. 공수처는 지난달 30일에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의결돼 만드는 일만 남았다. 경찰의 권한을 대폭 늘리는 수사권 조정안도 이변이 없는 한 곧 국회를 통과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4개 군소정당의 집합체인 이른바 ‘4+1’이 그렇게 합의했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생각한 이 두 가지 사안의 해결책과 실제 경과는 싱크로율 100%다. 공수처 수사 대상에서 국회의원을 뺐고, 수사권 조정도 국회 사법개혁추진위에서 다뤄졌다. 가히 『경국대전』이라고 부를 만하다.
『운명』에 공수처 설치·수사권 조정의 불발보다 ‘더 뼈아팠던 것’으로 문 대통령이 서술한 게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 실패다. ‘그 시기에 진보·개혁진영의 전체적인 역량 부족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여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에 나서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미 사문화됐기 때문에 쓸데없이 분란을 조성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남북의 평화로운 공존은 이미 한쪽에선 완성됐다. 북한 핵탄두가 한반도의 재앙을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내용의 영화가, 북한 총정치국장의 아들이 사고로 월북한 한국 재벌가 여인을 극진히 보호하는 매력남으로 묘사되는 드라마가 등장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 이상이다.
『운명』에 문 대통령은 ‘지나고 보니 역시 아쉬운 게 남북 정상회담이 좀 더 빨리 이뤄졌어야 했다’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종료 4개월 전인 2007년 10월에 방북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 첫해에 김정은과의 1차 정상회담을 했다.
이렇게 문 대통령의 꿈은 차례차례 성사됐다. 게다가 2012년 총선 때 ‘소원’이라고 했던 송철호의 선출직 진출은 울산시장 당선으로 실현됐다. 국회 청문회에서 동의를 얻지 못한 경우에도 아끼는 사람들을 원하는 자리에 거의 다 앉혔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지형도 바라던 대로 됐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인식 틀 안에서는 경제도, 부동산값도 안정적이다. 태평성대가 따로 없다. 정권 출범 때만 해도 국회가 ‘여소야대’ 구도였는데, 선거도 안 치렀는데 어느새 ‘여대야소’가 됐다. ‘선거법 개정’이라는 당근으로 의원 수십 명을 정권 편으로 만들었다. 이제 헌법 말고는 못 고칠, 못 만들 법이 없다.
586 정치인들이 목놓아 외치던 ‘민주적 통제’는 이렇게 허망하게 붕괴했다. 권력 남용에 대한 견제 장치가 거의 다 사라졌다. 서너 개 신문과 특이한 인물 하나가 남았을 뿐이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문 대통령이 “우리 윤 총장”이라고 애정을 표현했으나 지금은 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된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정권엔 마지막 걸림돌이고, 권력의 균형과 절제를 바라는 쪽엔 최후의 보루다. 그마저 허물어진다면 정말 "이니 마음대로 해”의 세상이 된다. 큰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만이라도 꿋꿋이 버텨 주기 바란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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