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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에 그루브를 담았다..'힙한 판소리' 들려주는 이날치

장병호 입력 2020. 01. 02. 05:30 수정 2020. 02. 1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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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스터'에게 소문난 판소리 밴드
다섯 소리꾼×장영규·이철희·정중엽
유튜브 영상, 홍보 없이 조회수 70만건
"지금 시대의 소리, 곧 우리의 음악"
내년 5월까지 매달 2곡씩 음원 발표
밴드 이날치. 왼쪽부터 박수범, 정주엽, 신유진, 이철희, 이나래, 안이호, 권송희, 장영규(사진=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살짝 전통이라는 옷고름을 풀었을 뿐인데 세계를 와락 껴안았다.”

밴드 ‘이날치’의 유튜브 영상 ‘범 내려온다’에 달린 댓글이다. 이날치는 소위 ‘힙하다’는 젊은이들 사이에 소문날 대로 소문난 밴드다.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함께 찍은 이 영상은 별다른 홍보 활동 없이 유튜브 조회수 70만 건을 훌쩍 넘어섰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음악이 ‘판소리’라는 점이다. 5명의 소리꾼 권송희, 박수범, 신유진, 안이호, 이나래가 보컬로 나서고, 민요 록 밴드 ‘씽씽’에서 활동했던 장영규 음악감독과 이철희가 베이스와 드럼을, 지난해 해체한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 정중엽이 또 하나의 베이스를 맡아 국악과 만난 독특한 ‘그루브’를 만들어낸다. 공연을 제외한 대외 활동은 좀처럼 하지 않았던 이날치 멤버들을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어렵게 만났다.

밴드 이날치. 왼쪽부터 이나래, 안이호, 신유진, 장영규, 박수범, 권송희, 정중엽, 이철희(사진=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국악도 밴드도 다 같은 ‘음악’

이날치의 시작은 2018년 11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선보인 애니메이션 음악극 ‘드라곤 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영규 음악감독과 다섯 소리꾼은 ‘수궁가’를 재해석한 이 공연으로 함께 만났다. “음악극과 상관없이 소리꾼들과 함께 하는 음악만으로도 재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장영규 음악감독의 뜻과 함께 이철희, 정중엽이 밴드로 들어오면서 2019년 초부터 이날치 활동이 시작됐다.

밴드 이름은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 이날치(1820~1892)의 이름에서 따왔다. 멤버들이 각자 이름을 내고 투표를 해서 정한 이름으로 장영규 음악감독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특별한 의미에서 제안한 이름은 아니었다”며 “과거의 인물이지만 단어가 주는 어감이 좋았고 과거·현재·미래를 담고 있는 느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소리꾼들에게 밴드 음악은 새로운 도전이다. 판소리는 고수의 북 장단에 소리꾼 한 명이 오롯이 사설을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솔로’ 공연에 가깝다. 그러나 이날치에서는 다섯 소리꾼이 서로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합을 맞춘다. 이나래는 “소리꾼들 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개인 활동을 하고 있기에 밴드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며 “다섯 명 모두 개성이 뚜렷한데다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어 재미있다”고 말했다.

판소리와 밴드 음악이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하나로 녹여낼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날치 멤버들은 판소리도 밴드 음악도 다 같은 ‘음악’이라고 말했다. 소리꾼들은 평소 하던대로 소리를 하고, 연주자들은 이들의 소리에 맞춰 음악을 연주하며 전통에 그루브를 담는다. 이철희는 “보통 퓨전국악을 하면 밴드 음악을 국악에 맞추려고 하지만 나는 반대로 드럼에 있어선 국악 특유의 요소를 배제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주관 ‘문밖의 사람들: 문외한’ 중 이날치의 ‘들썩들썩 수궁가’ 공연 장면(사진=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공연장에는 20~30대 압도적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이날치의 단독 공연은 이들의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관하는 ‘문밖의 사람들: 문외한’ 시리즈로 선보인 공연으로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했다. 예매처인 인터파크에 따르면 예매 관객 중 20대가 49.8%, 30대가 33%로 젊은 관객층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무대는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한복 대신 비니 모자, 재킷 등을 입고 무대에 오른 다섯 소리꾼은 마치 래퍼가 된 듯 무대를 누비며 ‘우리 소리’를 들려줬다.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를 부를 때는 무대에서 너무 열심히 뛴 나머지 공연장 측으로부터 “오래된 건물이니 조심해달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소리꾼들은 전주대사습놀이, KBS 국악대경연,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국악계 대표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실력자들이다. ‘전통의 현대화’는 국악계의 깊은 고민 중 하나지만 이들은 전통과 현대 사이에 특별한 구분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권송희는 “지금 시대의 ‘소리’가 곧 우리의 음악이다”라고 말했다. 신유진도 “밴드와 판소리를 맞추는 과정에서 큰 괴리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치를 통해 판소리에 관심을 갖게 된 젊은 관객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이나래는 “우리 공연을 본 뒤 소리꾼들의 개인 공연도 보러 왔다는 후기를 많이 접했다”며 “얼마 전에는 한 관객이 안숙선 명창의 ‘완창판소리’를 예매했다고 해서 신기했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이날치의 공연은 당분간 만나기 힘들 것 같다. 대신 팬들이 기다려온 음원을 순차적으로 발표한다. 지난달 23일 ‘어류도감’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의 음원을 공개했고 앞으로 매달 2곡씩 음원을 발표할 계획이다. 오는 6월 음원을 모은 정규앨범 발매와 함께 이를 기념하는 무대로 공연을 재개한다. 장영규 음악감독은 “이날치는 음원 발표 이후 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주관 ‘문밖의 사람들: 문외한’ 중 이날치의 ‘들썩들썩 수궁가’ 공연 장면. 소리꾼 안이호(사진=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주관 ‘문밖의 사람들: 문외한’ 중 이날치의 ‘들썩들썩 수궁가’ 공연 장면. 소리꾼 박수범(사진=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주관 ‘문밖의 사람들: 문외한’ 중 이날치의 ‘들썩들썩 수궁가’ 공연 장면. 소리꾼 신유진(사진=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주관 ‘문밖의 사람들: 문외한’ 중 이날치의 ‘들썩들썩 수궁가’ 공연 장면. 왼쪽부터 소리꾼 이나래, 권송희(사진=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주관 ‘문밖의 사람들: 문외한’ 중 이날치의 ‘들썩들썩 수궁가’ 공연 장면(사진=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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